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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꽃이 피었습니다

월동준비는 됐나요.

by 시인의 정원

시월이면 월동 준비에 야산을 뒤졌다. 푸른 수의를 입었던 시절이었다. 꽃이고 뭐고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더 많은 양을 빨리 채우고 잠시 쉴 짬을 얻을 요량이었다. 분홍꽃다발은 작업목표를 알려주는 과녁일 뿐. 싸리나무를 베고 넉넉히 묶은 다음 앉아서 쉬던, 지지리도 가지 않던 가을 자리는 아득한 안갯속에 퇴적하였다.


싸리비는 마르면 가볍고 탄력이 있어서 잘 부러지지 않는다. 한 다발만 묶어도 싸리비 한 개가 나온다. 싸리비는 포장된 시멘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포장길 보다 흙마당에 제격이다. 쓱쓱 쓸 때마다 휘어지는 빗자루가 가려운 땅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흙먼지가 일기는 하지만 빗질하듯이 자국이 나면서 말끔한 맨얼굴을 보여주는 마당은 흙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 떨어진 낙엽도 잘 쓸린다. 한 군데 모아 태우기라도 하면 낙엽 타는 냄새가 구수하다. 첫눈은 늘 싸리 눈이다. 오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맛보기만 보여주고 그친다. 이제 겨울맞이 준비는 했냐고 묻는다. 함박눈이 쌓여 두툼해지면 가래로 밀어야 할 테지만 얕은 눈 쓸기에는 싸리비만한 게 없다.


시월 중순에 접어드니 야트막한 구릉에는 진분홍 물결이 일렁인다.


낫을 갈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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