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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ilit Feb 18. 2019

실패한 성공, 성공한 실패 (2)

했다, 실패: 세 번째 인터뷰: 김가영 #2

*했다, 실패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실패담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 형식의 글입니다.


사랑과 영혼에서 도자기를 빚는 아름다운 모습 이면에는, 잠시만 힘을 잘 못주어도 휘어버리는 흙의 얄궂은 변덕이 있었다. 인터뷰 전 잠시 체험했던 도예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과정을 10년간 반복하며 겪었던 실패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도예 작가 김가영이 반복된 성공과 실패 속에서 배운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들어보자.




1부에 이어


3장. 물결의 편안함을 위해 선택한 실패의 치열함


한없이 차분할 것 같던 도예. 하지만, 작업 시작 전, 그녀는 온 힘을 다해 흙을 다듬는다.

학교를 졸업하실 때, 도예를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작업이 재미 있었어요. 졸업작품덕분인데, 당시에는 단순히 형상이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물결들을 만드는 과정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죠.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제대로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계속 작업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식기작업을 만들기도 하고 수업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다행히 이런 수입원들 덕분에 다시 하고 싶었던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식기 작업을 하셨을 때도 물결을 계속 사용 하셨나요?

네 맞아요. 제가 작업하는 접시를 보면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며 쌓이는데, 제가 귀퉁이를 꼬아뒀는데, ‘윤슬’이라고 햇빛이 강물에 닿았을 때 쪼개지는 잔 물결이 이르는 말이 있대요. 그 접시 귀퉁이의 꼬인 잔물결들이 겹쳤을 때 잘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던 거죠.

접시에 적용시킨 물결 ‘윤슬’


지금 갖고 있는 욕심은, 가영씨만의 작업을 하고 싶은 거군요.

네,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들을 저만의 형태들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 결과물이 지금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물결형태의 자기들인 거구요.


 

본인만의 작업을 하는데, 현실적인 문제는 없으셨나요?

제 공방을 가지려고 준비하면서 느낀 것이 저만의 기자재를 갖는 것이 너무 막막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수도, 전기, 설비…

사실, 도자기를 한다고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정수입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보니, 몇 년을 기다려야 내 공간을 가질 수 있지? 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더라고요.

특히, 지원 정책들은 한정적인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어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진작가들이 아닌 어느 정도 이름난 작가들에게만 계속 기회가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와 10년을 함께한 친구


공방을 만들 때 고민하셨던 얘기를 듣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도예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하셨던 적은 없으셨나요?

있었어요. 지금 작업실은 그래도 조금 나은데, 첫 작업실에 있을 때 조금 힘들었었어요. 당시 지하작업실이었는데, 지하가 주는 암울함이 있었어요. 그 때 알았어요. 제가 날씨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사람이었던 거에요. 매일 해뜨기 전에 내려가서 해지고 올라오는 생활을 반복하니 정말 음울해지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지’, ‘왜 이래야 하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마치 쥐구멍에 있던 쥐처럼 볕 뜰 날만 기다리며 우울해했어요. 그래도 그때 자존심이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우울함이 깨졌던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그 우울했던 시간에, 시도하지 않았던 물결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던 것이 성공하면서 느슨해졌던 작업들이 타이트하게 바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 수입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점점 나아지겠다는 기대감이 싹텄던 거 같아요.



마지막 장. 도예작가 김가영의 꿈


도예작가 김가영은 여전히 꿈꾸고 있다.


가영씨의 목표는 눈 앞에 있는 목표는 공방을 갖는 것일까요?

공방이라기보다는, 저만의 작업실이 맞는 것 같아요. 작가마다 필요한 시설이나 환경이 다른데, 제가 하는 작업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공방은 마음에 들지만, 저 혼자만의 작업을 위한 공간은 아닌 거니까요.



그리고 더 크게는 지금보다 큰 물결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욕심?

네. 이 얘기는 제가 꼭 하고 싶었는데, 첫 가마가 잘 나왔었는데 당시에는 잘 만들어서 잘 나온 거라고 생각했어요. 졸업전시가 끝난 후 핸드폰 갤러리를 뒤적이다 졸업작품으로 했던 작업의 소성 전 사진을 보았는데, 그때서야 굽기 전과 후의 라인이 많이 달라진 걸 알게되었어요.


굽기 전엔 물결을 받치고 있던 볼의 형태가 다소 직선형이었다면 굽고 나서는 물결을 표현하기 위해 함께 구웠던 흙 지지대의 무게 때문에 주저 앉아 자연스레 곡선으로 바뀌었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던 작업들이 가마에 넣는 족족 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주저앉아버리거나 한쪽으로 기울어 깨버려야 했은데 결국 성공작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업도 처음의 의도에서는 실패했던 작업인거죠. 까딱했으면 다른 것들처럼 완전히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었던 거니까요.



결국, 최고의 성공도 알고 보니 실패였던 거네요.

네 맞아요. 그 때부터, 이 물결에 더 큰 애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들었던 직선이 가까스로 무너지지 않고 물결이 되어 버텼던 거에요. 저는 저만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양도 가마에서 버티고 있던 거구나 라는 동질감? 같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느꼈어요. 개인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작품들도 저랑 같이 버티고 있는 동료처럼 느껴지는 거죠.



제가 느끼기에는, 가영씨의 최고의 성공은 돌이켜봤을 때 가장 큰 실패였고, 그때의 실패가 지금의 목표가 되었다는 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빨리 판단하지 않으실 것 같네요.

이렇게 멋있는 해몽이..ㅋㅋㅋ



그러면 최근에 커다란 물결이 담긴 작업을 시도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예전처럼 큰 형태는 없는데, 최근에 그래도 항아리를 시도해본 적이 있었어요. 제가 지금 만드는 것들은 대부분 부여하는 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항아리는 가운데가 빵빵한 형태라서, 가운데가 하중을 많이 받아서 갈라지고 깨지는 것 같아요. 더 도전해봐야 해요.

 


작업을 하실 때 시행착오를 엄청 많이 겪으실 것 같은데, 지금 생존해 있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 확률로 살아남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지금은 절반은 넘게 마음에 들게 나오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가마에서 나오면 기울어 버리거나, 형태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새는 그래도 절반 이상 원하는 대로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실패한 아이들은 고무대야에 모여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한다.


애정이 많은 물건인데, 물결 형태를 찾는 분들은 조금은 생겼나요?

작년까지는 식기위주로 들고 나갔는데, 요즘은 이 물결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은 것들이라도 물결을 들고 나가서 사람들이 보이는 호응이나 관심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에는 갤러리만 생각했었는데, 마켓에서 사람들에게 제 물결을 보여주는 것도 기분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처음 마켓 들고 갔을 때의 기분이 궁금해지네요.

‘이걸 누가 사겠어’라는 생각이었어요. 싼 가격도 아닌 도자기를 누가 길에서 사겠어. 처음에 아는 분께서 소개를 해주셔서 나갔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게 신기했어요. 계속 저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는 셈이죠



긴 시간 많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매일매일 반복되는 실패와 성공의 반복 속에서 작가님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시나요?

워낙 자주 경험해서 무뎌지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가끔 한 두 개의 실패가 아닌 가마 전체를 버려야 할 때가 있어요. 그 때는 제가 포기했던 것들이 생각나는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놀지도 못하고 했던 것들. 그럴 때면 실패와 성공에 일희일비 하지 말자는 다짐을 많이 해요.


저는 실패의 과정에서 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실패도 크게는 하고자 하는 성공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앞의 실패들이 그 다음의 성공이 되어주기도 하고, 작은 실패들은 나중에 보면 다 성공의 과정에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지금의 성공이 나중에는 실패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성공과 실패는 단지 지금이 기준인거같아요


인터뷰이: 김가영 (도예작가)  https://kimgayoung.modoo.at/
글: 검
사진: 말하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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