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2024년 01월 13일

by 로벨리아

엄마가 동사무소에 다녀오셨다.

아무래도 아빠 관련 서류 때문에 가신 것 같았다.


예전에 아빠를 화장해 드리고,

사망신고서를 받으러 엄마와 함께 동사무소에 간 적이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날부터,

그 사망신고서를 받기 전까지

나는 터져 나오던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정작 아빠가 돌아가신 당일엔,

너무 놀라서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날 집에 경찰과 형사분들이 오셨는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 부분이 있었는지

계속 "어머니는 언제 오시냐"라고 물으셨다.


하지만 엄마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퇴근 중이었고,

하필 그날따라 버스도 잘 오지 않아

조금 늦게 도착하신 거였다.


그마저도, 앞집 아주머니가 도와주셔서

버스 정류장에서 엄마를 픽업해 주셨다.


나는 "버스가 잘 오지 않아서 늦으시는 것 같다"라고

계속 설명을 드렸지만,

"언제 오시냐"는 질문만 반복됐다.


살짝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빠가 돌아가셔서 받은 충격도

그 순간만큼은 조금 억눌러졌던 것 같다.


'그래, 저분들도 사람인데

빨리 퇴근해야 하니까 저렇게 물어보는 거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아빠 잃은 사람 앞에서

계속 그렇게 퇴근하고 싶은 티를 내야 하나...

엄마가 빨리 오고 싶어서 못 오는 것도 아니고 버스가 안 오는 건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기 어려우셨는지,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입술로


"어느 병원으로 가면 돼?"


하고 물으셨고,

나는 "돌아가셨다고 카톡 보냈었는데... 돌아가셨대."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형사분은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고는,

서로를 향해 "고생 많았습니다. 퇴근하시죠." 하고

작게 말을 주고받으며 집을 나가셨다.


나는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래 차라리 내가 저분들 덕에 이성 잃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걸지도 몰라.'



돌아가신 아빠를 들것에 옮길 때도,

엠뷸런스 운전기사 분 한 분뿐이라

내가 함께 들어 옮겼는데,

그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화장터에서 아빠의 관을 들고 이동할 때도

나오던 눈물을 꾹 참았다.

그리고 아빠의 화장이 끝난 후에도 울지 않으려고 눈물을 참았다.


그런데, 동사무소에 가서 엄마가 아빠의 사망신고서를 받는 동안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한바탕 쏟아져 나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는,

엄마 앞에서 최대한 안 울고 씩씩하게 버텨왔다.

나까지 울고 질질 짜면 안 될 것 같아서,

여태껏 꾹 참아왔던 거였다.


동사무소를 나오던 엄마는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냐며 물으셨고,

나는 친구에게 아빠 돌아가셨다고 얘기해서 그렇다고 울면서 말했다.


아빠가 떠난 슬픔은

화장터나 장례식장처럼

누구나 울 수 있는 장소에서 터진 게 아니라,


동사무소처럼 아무도 울지 않을 것 같은

그 차가운 공간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사망신고서를 받은 뒤에는,

서류 속에 남겨진

아빠의 이름과 숫자들만이

아빠의 흔적이 되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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