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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Oct 27. 2024

두려움 반 스푼, 희망 콸콸콸

바닥을 왜 봐, 앞을 봐야지

신야 타카하시(Shinya Takahashi), 유타카 오노(Yutaka Ono) <인어공주(교원애니메이션명작)>



인어 공주는 허리를 굽혀 왕자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장밋빛으로 점차 밝아 오는 하늘과 날카로운 칼을 번갈아 보았다.... 칼을 쥔 인어 공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두려움과 희망 사이, 선택은 내 몫


어깨를 다친 이후로 꼭 한 달이 지나,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강습 1천5백 m를 넘게 돌면 어깨가 아팠다. 달을 쉬어 따라가지 못할 것 같기도 했고, 통증이 있어 강습 도중에도 자주 쉬어야 할 것 같아 까치와 3번 자매가 함께하는 아침 7시 반을 벗어나기로 작심했다. 밤 9시 반으로 옮겨 운동량이 자연스럽게 줄었지만 조금만 무리해도 어깨를 부여잡고 집에 와 폼롤러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야 통증을 벗고 잠들 수 있었다. 한때 함께 운동하던 분들과 오랜만에 자주 보게 되어 기뻤다.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나는 2번 자리에 섰다.

"오리발아, 너 어떻게 그렇게 수영이 늘었어? 예전에 되게 못했잖아."

맞아, 그랬지. 나 예전에 수영 정말 못했는데.... 실력이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한다고 답답해하던 그때도 손톱만큼씩이나마 더 빨라졌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주말에는 바다에 나가야 하니, 그때까진 통증도 줄고, 체력도 좋아지고, 수영 실력도 늘려야 했다.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벌써 바다 갈 생각뿐이다.


"겉옷 안에 수영복 입고 와. 오리발, 슈트, 부이 챙겨. 수경이랑 수모도."

7월 7일. 삼척 대회를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인천 왕산 오픈워터 일정을 가까스로 따냈다. 고작 네 시간을 자고, 아침 다섯 시 반까지 1번 자매 언니들이 다니는 수영장 앞으로 갔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들이 보여 꾸벅, 인사부터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제발 수영하며 종아리에 쥐 나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두려움도 기운이 있어야 감각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졸음을 쫓아내는 게 더 급했다.

"언니, 저 슈트 아직 한 번도 입는 거 성공 못 했어요. 살 빼서 입으라고 했는데 몸무게도 그대로예요."

차 트렁크에 실어둔 웻슈트가 걱정이었다. 이제는 반품 기간도 끝나버려 환불조차 받을 수 없는데....

"물 안에서는 더 잘 입어진대. 가서 보자."


"언니, 저 지퍼 좀 올려주세요. 등 쪽으로 슈트를 쫙 당겨야 올라갈 거 같아요."

역시나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며 가까스로 웻슈트에 팔다리를 집어넣고, 지퍼를 올리지 못해 도움을 청했다. 드르르륵, 칙. 만세! 지퍼가 닫혔다! 수온과 물때가 맞아야 올 수 있는 바다. 너무 힘들면 부이를 부여잡고 발차기만 해도 된다고 하니, 천천히 가보자!



인어공주의 마지막 선택


인어공주는 언니들이 머리카락과 맞바꿔온 칼을 왕자에게 겨누며 고민한다. 물거품이 되어 죽을 것인가, 왕자를 죽이고 다시 인어가 되어 300년을 살 것인가. 결말은 누구나 아는 그대로다. 인어공주는 결코 왕자를 칼로 찌를 수 없다. 흑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의 선택에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반영하길(May your choices reflect your hopes, not your fears)."

인어공주는 두려움을 무릅쓰는 쪽을 택했다. 그의 희망은 사랑뿐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천천히 가봐요. 힘들면 누워서 이렇게 배영 발차기만 하면서 가기도 하고, 발로만 사이드킥(수면에 모로 누운 상태로 발을 차는 것)하면서 가도 돼요."

이름엔 '산'이 들어가지만('山'자인지는 모르겠다) 바다수영을 통솔하시는 산님이 이런저런 요령을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바닥 보면 아래서 뭔가가 나올까 봐 무서워요."

1번 자매 언니들 중 언니(오픈워터를 마치고 물 밖에 나왔을 때 청순한 이미지로 변신하므로 퓨언니라고 불러보려 한다)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온 지 얼마 안 돼 바닷물 아래로 보이는 것은 없었으나,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산님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요령을 일러주셨다.

"바닥을 왜 봐, 앞을 봐야지."

돌아올 때에는 어름을 뚫고 떠오른 해도 보고, 얼마간 부이에 매달려 쉬기도 했다. 짭짤한 바닷물로 가글하며 완주한 왕산 오픈워터 코스는 왕복 2km가 넘는 거리였다.


집에 오는 길, 약국에 들러 근육 이완제를 넉넉히 받아왔다. 잔뜩 긴장했던 흔적이 온몸을 두드려댔다. 고통과는 별개로 다행히 삼척에 갈 용기가 생겼다. 두려움은 살짝 남기고, 희망을 반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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