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도, 공주도 아니면서
바다 위로 해가 떠올랐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한때는 인어 공주였던 차가운 물거품을 비추었다. ...밝은 해가 비치고 주위에는 수백 개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형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다시 맹방 해변. 아침 10시에서 11시 사이쯤 되었을까. 제1경기 선수들을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때까지도 내가 이 바다에서 조만간 헤엄칠 거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은행아저씨와 두목님이 각각 경쟁 부문 경기를 치렀고, 다른 언니들도 저마다 경기를 치르고 모래사장에 바닷물을 뚝뚝 흘리며 복귀했다. 그때까지도 비경쟁 대회를 준비하던 우리는 기념품인 타월 판초와 수모를 언제 받을지, 우리 경기가 언제 시작될지에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두려운 만큼 시야가 좁았다. 왕산까지 2km 넘게 다녀왔던 거 잊지 말기. 경쟁 부문 경기에 참여한 베테랑 수영인들이 비경쟁 부문에서 우리와 함께해준다고 했으니 두려워 말기. 나는 피곤과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그날의 해무처럼 맹방 해변을 헤매면서도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딱 점심 먹기 좋을 법한 시간에 맞춰 우리 경기가 시작된다고 했다. 아, 배고프다! 긴장해도 식욕은 가라앉지 않았다. 눈치 챙겨, 똥배야! 꽁꽁 얼려 왔지만 다 녹아버린 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경기를 마친 분들이 들통을 걸고 닭을 삶고 있었고, 도시락도 착착 배달됐다. 빨리 끝내고 맛있게 먹어야지. 어렵사리 슈트를 껴입은 우리는 오리발을 옆구리에 끼고서 출발선 앞에 섰다. 역삼각형 모양으로 부표가 있었고, 구명보트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왕산에 갔을 때보다 훨씬 안전해 보였다. 공짜로 보트만 타도 재밌을 거야. 차츰 두려움이 걷혔다. 휘익, 휘슬과 함께 분홍색 수모를 쓴 사람들이 바닷물에 눕듯 몸을 던지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발목에 시간 기록기를 차고 있으니 천천히 출발해도 좋다.
저기요, 왜 대각선으로 오시나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발하는 바람에 자꾸만 타인의 몸에 부딛혔다. 파도와 유속으로 인해 사람들이 일제히 출렁거리며 바다 표면을 긁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구명보트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는 라이프가드 역시 너무 가까웠다. 지루한 표정이 보일 만큼. 와, 나 지금 삼척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거 맞지? 실감나지 않는다고 잠깐 의아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짠 바닷물이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해무가 걷힌 바다는 완벽한 날씨를 자랑하며 물결에 쓸린 바다 밑바닥 모래 무늬까지 깨끗하게 보여줬다. 파도가 온 몸을 밀어주는 타이밍에 맞춰 팔과 다리를 저었다. 말랑말랑한 물이 온몸을 기분 좋게 간질인다. 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거야!
인어공주의 결말은 물거품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에서는 인어공주가 물거품으로 변했다가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며 끝을 맺는다. 최근에 다시 읽은 안데르센의 원본에서는 인어공주가 300년간 착하게 살며 '불멸의 영혼'이 될 기회를 얻으며 마무리된다. 안데르센은 지독한 짝사랑을 끝마치고 <인어공주>를 썼다고 한다. 자기 치유의 동화였던 것이다. 안데르센은 자신이 썼던 글 가운데서도 특히 <인어공주>를 가장 아꼈다고 한다. 그가 사랑을 표현할 때 희생과 헌신이야말로 최선이었음을 알겠다.
물거품이 되고 싶다거나, 혹은 먼지처럼 부서져 흩어지고 싶다는 상상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흔히 이뤄진다고 한다. 툭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 하는 내가 스스로를 위안하는 방편이었을 수도. 삼척 맹방 해변에서 해무가 걷힌 맑은 바닷물은 또렷하고 눈부시게 반짝였다. 나는 물거품이 되지는 않았지만, 불안과 조바심을 바다 밑에 떨구고 올 수 있었다. 그날 물거품처럼 흩어지던 것은 부질없는 근심이었다. 온몸을 떠받치는 매끄러운 파도,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 수시로 입안으로 드나드는 비릿하고 달콤한 짠맛. 내가 감각하는 것들로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게다가 나는 지금 그토록 바라던 글을 쓰고 있다!
그리하여 인어도, 공주도, 뭣도 아닌 평범한 사람의 바다수영 이야기가 이렇게 끝을 맺게 되었다. 때로는 안전부이에 매달려 쉬고, 또 때로는 멋진 풍경에 한눈 팔리며, 줄기차게 헤엄쳐 언제고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