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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22. 2024

14. 사서 제안을 받고 주저앉은 현수 1





#1     


그 시각 현수는 꽃분 이모가 한 일생일대의 제안에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다. 꽃분 이모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꽃분 이모: 현수야.

오늘부로 만월 도서관에서 새로운 사서를 뽑기로 했거든.

기억을 빌려주는 사서, 기보(祈報) 사서.

염라대왕님이 직접 교지를 내린 정규직이야.

이건... 알지?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 삐이이이               




긴장할 때면 들리는 귓가의 이명이 소리가 현수를 뒤흔들었다.

‘지이잉 ~’ 하며 12시 정각, 만월을 알리는 현수 핸드폰의 알람마저 울렸다.     



엽서가 맞았다! 이 생각뿐이었다.



현수의 숨이 턱 하고 막히면서 상체가 살짝 흔들렸다.     

과호흡이었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현수는 깊게 심호흡하며 저 멀리서 있는 망자들의 이층 버스로 시선을 돌렸다. 애써 괜찮은 듯 말했다.               




“(크게 숨을 몰아쉬며) 이모.

12시 정각이니 속도를 흠, 올릴게요.”           

     



민현수는 과호흡이 올 때면 외우던 ‘4들멈8내’를 되뇌며 옷 주머니 속에 넣어둔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에는 비둘기 깃털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현수는 비둘기 깃털을 두어개 꺼내 아까처럼 훅~ 하고 자신의 숨을 불어 날렸다.

깃털은 도서관 지붕 끝 하늘로 수직으로 날아오르며 사라졌다.     


그러자 망자들을 태운 은하수 빛 이층 버스가 순식간에 도서관 근처까지 왔다.


거의 시속 300km쯤 달린 듯했다.               

현수의 머릿속은 테러당한 듯했다.     


오늘 저녁에 받은 엽서.

꽃분 이모의 ‘기억을 빌려주는 사서’라는 제안.     

현수는 과호흡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숨을 쉬고 내뱉으며 ‘답을 아는 질문들’을 자신에게 쏟아부었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서였다.               




‘왜 내가.

꽃분 이모가 아닌... 내가.

비둘기 깃털에 숨을 불어 하늘로 올려야 했었지?

왜 비둘기 깃털이지?'

       




#2     


꽃분 이모가 아닌 현수가 비둘기 깃털을 불어올 리는 이유는 의외로 심플하다.


아무리 염라대왕이라도 저승 갈 때를 놓친 망자들을 한꺼번에 이승에서 데려가긴 어렵다.

이승의 틈을 내어 데려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산자의 허락이 필요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숨결이다.



죽으면 심장이 뛰지 않으니 숨을 쉴 수 없다.

저승이 정한 깃털을 통해 산자의 숨이 불어넣어지면?


이승이 저승으로 가는 틈을 허락해 준 게 된다.     


구천을 헤매는 망자 무더기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들 같은 존재였다.

편의점 폐기 식품처럼 상한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으로 팔 수 없는 것처럼 다른 결의 허가가 필요했다.


망자 버스가 망자를 한꺼번에 데려가기 위한 허가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보통의 망자와 저승사자는 어떻게 할까?





#3     


망자와 저승사자, 이들 관계의 정석은 이렇다.


산 사람이 죽으면 치르는 삼일장, 3일간 장례가 이루어지는 동안 망자들은 이승에서 보고팠던 이들을 장례식장에서 마주한다. 그러면서 이승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작별을 고한다.      


저승사자들은 산 사람이 죽을 즈음 나타나 망자를 장례식장까지 인도하고 삼일장을 함께 치른다.        

       



망자: 내가 아들 결혼도 못 시키고 죽어서 어째요...     


저승사자 1: 아들이 만나는 여자친구가 저기 저 머리 묶은 아가씨예요. 둘이 ‘내년쯤 결혼하자’ 이런 얘기를 했데요.   

  

저승사자 2: 저쪽에 부인 친구들이 같이 민화 그리러 다니는 사람들이네요.

마음들이 넉넉해서 부인을 잘 챙겨주겠네요.

걱정하지 마셔요.             

  



저승사자는 장지까지 망자와 함께한다. 이후 망자에게 3일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며 함께한다. 7일째 되는 날 저승사자는 망자를 저승에 있는 ‘망각의 강’까지 데려다준다.     


요즘 여러 이유로 바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는 망자나 이승에 미련이 많이 남은 망자들이 늘었다. 산 자들의 꿈에 나타나는 망자들도 많아졌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서, 망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독사라 장례도 제때 못 치르면... 이승을 떠돌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그들이 화나 미련을 삭일 때까지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유예 시간을 준다.


저승사자는 매주 이들을 한 번씩 체크했다.

또, 이들 망자에게는 매달 만월이 되면 저승으로 가는 ‘망자 버스’ 선택권이 주어진다.


망자의 복지라고나 할까?     


지독한 악귀나 사람을 해코지 하는 잡귀가 되지 않는 한 망자들은 이승에서 자신의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게 저승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망자: 저저저!

롱패딩에 남색 목도리! 저 인간!

바람피운 저 인간이 빙판길에 꼭 넘어지게 해주세요!     


저승사자 1: (양손으로 네모 프레임을 만들며) 저기!

저기 저 코너 내리막길이 딱 넘어질 각이 나오네요.     


저승사자 2: (생수병을 든 채 달려가서) 자자~

딱 요기에 물 뿌립니다. 촤라락!     


바람난 인간: (철퍼덕) 으아악! 여기 뭐야!    

  

망자: (망자와 사자들이 서로 하이파이브하며) 앗싸~ 이제 살 것 같아요.

인간이 망둥어처럼 펄떡이는 꼬라지를 보니깐~     


저승사자 1: 이제 슬슬 저승 가죠.

저 치는 꼬리뼈에 금 가서 연말, 새해, 구정까지 병원에 있던 중 버림받는 걸로 나오네요.

고작 그 정도 사랑인 거죠.     


저승사자 2: 병원 입원하면서 살찌고, 휴직하면서 자신감 상실해서~

내년에는 암흑의 쏠로가 되네요.     


망자: 정말 고마워요. 사자님들!

이 정도면 홀가분해요.            

   



이 정도면 망자 복지는 괜찮지 않은가? 이런 경우도 있지만...


원한이나 미련으로 생전의 좋았던 기억을 잃고 공허에 빠져 구천을 헤매는 망자도 많다.

이승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산 사람일 적 기억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망자에게는 공허만 남아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가 되어, 사특한 잡귀와 악귀의 먹이가 된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전국에 있는 저승사자들이 망자를 어르고 달래서 망자 버스에 태워만월 도서관에 보낸다.      

만월 도서관에서 망자들이 흥겹게 먹고 씻고 자며 힐링하고 그들이 잊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나서 저승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월의 비둘기 깃털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신호탄이었다.       

              




#4     


현수가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할머니인 홍판덕 여사가 깃털을 부는 일을 했다.

매번 만월이면 안채의 뒷문을 귀 문(저승 혹은 귀신을 위한 문)으로 나가 자정의 만월 도서관에서 이 일을 했다.     


저승 사서들이 현수의 영혼을 살려준 것에 대한 보은이었다.

홍여사 전에는 동네 길고양이들이 대신 해주곤 했는데...


고양이 특성상 아무리 저승 사서의 말이라도 잘 듣질 않아서 문제였다.     


그럼... 비둘기 깃털은 왜 쓰는 걸까?

패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현수는 계속해서 자문자답을 해댔다.               


비둘기 깃털은 이승에 저승을 위한 틈을 여는 전령새와 같다.      


첫 신호탄 깃털은 1개다.

깃털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망자 버스의 속도가 빨라진다.


도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비둘기 깃털이라 닭털 대신으로 꽃분 이모가 염라대왕과 절충을 봤다.      

도심에서 비둘기 깃털은 에어컨 실외기에 많이 붙어 있어서 줍기만 하면 공짜다.


판산동은 한옥 주택이 대부분이라서 지층의 에어컨 실외기에서 비둘기 깃털을 수집하기 쉽다.     

현수와 저승 사서들은 비둘기 깃털을 모으는 날을 정해서 한꺼번에 모았다.


그걸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현수와 도서관 사람들이 판산동의 무당촌네 환경 미화에 앞장선다고 생각했다.

              



어르신: 현수야!

꽃분 이모랑 도서관 사람들이랑 또 에어컨 실외기 청소해?  

   

현수: (겸연쩍어하며) 네, 어르신.     


꽃분 이모: 넹~ 어르신~

에어컨 실외기에 비둘기 털 있으면 지저분해 보이잖아요~

또~ 우리 이쁜 판산동에 비둘기 똥내 나는 거도 너무 싫구용~

다들 바쁘시니 맡겨주세요~~~     


어르신: 이거 먹으면서 해.

점사 보러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 줄 겸 많이 샀어.    

 

저승 사서: 크~ 어르신.

*카스, 저희 너무 좋아하는데!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르신: 어어~ 조금만 하고 어여 들어가.

해 떨어지면 추워!             

       




#5     


현수는 이런저런 기억을 끄집어내 답하며 평정심을 찾으려 했다.

뇌에서 연기가 날 지경이었다.              

 



‘엽서 내용이 실현됐어.


기억을 빌려주는 사서라니!

내가 기억을 보는 걸 넘어 빌려줄 수 있다는 걸 아는 건...

엽서에는 발신인이 없었어.


그럼, 발신인을 찾을 수 없는 걸까?

도대체 누가 보낸 거지?     


꽃분 이모? 염라대왕? 아냐!

그분들은 이런 악취미가 없어!

도대체 누구지?’               




계속된 자문자답에 약간의 평정은 찾은 걸까?

현수는 엽서에 얽힌 자기 생각보다 꽃분 이모한테 오늘 받은 엽서를 먼저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 섰다.

현수의 추측이 꽃분 이모의 시야를 흐릴지 봐서였다..      

          



“현수야!

숨을 쉬어! 숨을!”               




꽃분 이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스스로 추스른다고 했으나 현실은 이미 과호흡에 휘둘리고 있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했던 자문자답에도 불구하고 과호흡이 시작되었다.     

불과 그 몇 초 사이에 망자들을 태운 이층 버스가 현수 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러다 버스에 치일 지경이었다!      


현수는 선 채로 생각에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과호흡으로 자리에 주저앉아서 헐떡이고 있었다.

꽃분 이모가 몇 번이고 소리 질렀던 게 이제야 들린 것이다.

                   




#6     


‘애가 오늘 왜 이러징?’               




꽃분 이모는 비둘기 깃털을 날아 올릴 때부터 안색이 좋지 않던 현수가 갑자기 세차게 숨을 몰아쉬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잠깐 생각한 사이에 현수가 주저앉아 버렸다.     

때마침 방금 날아 올린 비둘기 깃털 때문에 속도가 빨라진 망자들을 태운 이층 버스가 현수를 칠 것만 같았다.     

          



‘안돼!’     




꽃분 이모의 내적 외침이 그녀의 몸을 날아오르게 했다. 마치 인형 뽑기에서 인형을 뽑듯이 땅에 주저앉은 현수만 ‘폭’하고 위로 뽑아 올려 현수를 살포시 땅에 내려놨다.   

  

간발의 차이로 좀 전까지 현수가 주저앉아 있던 자리로 망자들을 태운 이층 버스가 섰다.

만월 도서관 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현수는 종종 과호흡이 왔지만, 만월에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정규직 사서 제안인데... 현수가 왜 이러는 걸까?’               




꽃분 이모는 의아했다.

웃는 상의 꽃분 이모 미간에 내 천 자가 그려지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똑하고 떨어졌다.     


그 순간!

버스에서 망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망자 1: 버스 위 봤어요?

나 이런 거 첨봐요!     


망자 2: 왐마!

라도에서도 내 머리털 나고 이런 건 한 번도 못 봤네!

겁나 밝은 빛기둥이 쑥하고 버스에서 하늘까지 쏟았구먼!

    

망자 3: 라도요? 라도가 어디예요?     


망자 2: 이~ 라도? 라도는 전라도제~     


망자 3: 푸핫!     


망자 2: 요오즘~ 제트 세댄지 제트기인지가 하는~

거시기 그~ 그 말 줄이는 거를 라도에서는 벌써부터 혔으~

     

망자 1: 풉! 간만에 웃네요~      


오 관장: (다급하게 말을 자르며) 망자님들.

만월 도서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기 앞에 만월 도서관 사서증 찬 분들 보이시죠?

오늘 여러분을 안내 할 저승 사서님들 이세요.

(꽃분 이모 쪽으로 이동하며) 이분들 따라서 도서관 지하로 가셔요들.     


저승 사서들: 망자분들~

저희 따라서 내려 가실게요.           

         




#7     


만월 도서관의 노련한 저승 사서들이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는 망자들을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그런 망자와 버스를 등진 채 현수를 부축한 꽃분 이모가 마주한 건?

현수가 후들거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꺼내든 엽서의 글자였다.               




---          

귀신

만월

기억

사서               

---               




엽서를 잡아 든 꽃분 이모가 갑자기 선글라스를 벗어버렸다.


그녀는 저승사자 특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피부는 허옇게 질리기 시작했고 눈가와 입술은 새까맣게 변했다.     

그녀가 이렇게 선글라스를 벗은 건 어린 현수가 자신을 알아본 이후 처음이었다.


이 엽서... 심상치 않는 것이었다.     

꽃분 이모는 한기를 내뿜으며 마침 뒤로 온 오 관장에게 엽서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오 관장, 고맙네.

내가 해야 하는 건데... 이번 만월을 좀 부탁함세. 현수도.

홍란 할매께 말씀드리면 도와주실 거야.

미안허이.

잠시 갔다 옴세.

현수야. 금방 갔다 오마.

반드시 만월 도서관 안에 있거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전매특허 같던 꽃무늬 옷을 양쪽으로 당기자 마치 슈퍼맨처럼 새까만 저승사자의 한복으로 삽시간에 바뀌었다.


그 직후 꽃분 이모는 하늘로 슉!하고 로켓처럼 비상했다.





이 엽서..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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