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묻는 것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심리 테스트 같은 자존감 테스트를 준비했다. 긴장할 필요도 없고 심각할 필요도 없다. 내 자존감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는 것뿐이다. 자존감 테스트는 평상시에 느낀 대로 점수에 체크하면 된다.
첫 번째는 ‘로젠버그의 자존감 테스트’이다.
‘나는 좋은 성품을 가졌다’ 같은 10개 문항에 ‘매우 그렇다’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상태를 1~4까지 점수를 매기고 합산하면 된다. ①은 1점이다. 총점이 30점 이상이면 자존감이 높은 편이고 20-29점은 보통이라고 한다. 20점 미만은 자존감이 낮은 편이고, 10점은 상담이 필요한 수치라고 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자존감 테스트이다.
>>>본 테스트는 영문원안의 역채점 부분을 총점내기 쉽도록 수정하였고 직역과 의역 후 재번역하였다.
(2017. 07.19)
두 번째 테스트는 ‘쿠퍼스미스의 자존감 테스트’이다.
‘나는 몸매와 외모가 멋진 편이다’ 같은 25개 문항에‘아주 그렇다’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상태를 1~4까지 점수로 매기고 4가지 기준에 따라 분산시켜 합산하면 된다. ①은 1점이다. 총점은 최저 25점, 최대 100점이며 점수가 100점에 가까울수록 자존감이 높은 걸로 평가한다.
이 테스트는 자존감의 여러 부분을 검사할 수 있다.
>>> 본 테스트는 원안의 역채점 부분을 총점내기 쉽도록 수정하였다.
테스트 하단에 있던 각 번호의 질문 주제를 카테고리화한 채점표를 제하였습니다. 아래 적힌 바와 같이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이다 보니 사용 요청을 주셔도 응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내린 결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2020.04.02)
질문지 하단의 채점표은 온라인에서 다운로드한, 본 테스트의 번안 버젼이나 출처가 불분명해서 명시하지 못하였습니다. 문제가 될 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자존감은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니 낮다고 혹은 높다고 실망하지 말자. 지금 균형 잡혀있다면 유지하기 위해서 혼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테스트로 낮거나 높아서 문제인 부분을 알아보고 채워 균형 잡힌 자존감을 키우고 유지하려는 것이다.
자존감이 너무 낮으면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주변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만 보며 전전긍긍하고 부정적이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칭찬도 칭찬으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간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이 아주 짧게 끝나곤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서 도전이나 시도를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해서 기회를 놓쳐버린다.
자존감이 너무 높으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오만한 특권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타인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어 남을 잘 배려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오만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걸 자신감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좀 더 쉽게 정리하면,
건강한 자존감이란 따듯한 자기 객관화에서 온다.
자존감이 낮은 건 겸손한 것이 아니다.
자존감이 높은 건 자신감에 차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제목이었던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자존감은
‘낮음과 높음사이의 균형잡기’
로 키울 수 있다.
물론,
처한 상황에 따라 좀 높은 자존감이나 그와 유사한 행동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높은 자존감을 자신감으로 전환하자. 우월해서 잘나서가 아니라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믿어”
라고! 이런‘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무조건적인 믿음’이 때때로 우리를 지켜주고, 할 수 있게, 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과하게 높아진 자존감은 보살피는 사람 없이 절로 핀 들꽃을 떠올리며 다독이면 좋겠다.
길가에 피는 이름 없는 들꽃은 혼자 핀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바람이 씨를 뿌리고,
흙이 보듬어 주고,
햇살이 어루만져주면,
비가 촉촉이 적셔
어느샌가
들꽃이 피게 만든다.
잊지 말자! 세상에 혼자 잘나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이런 테스트가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자존감 상태를 가늠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일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건 재발이 잦다니 점수가 낮다면 주기적으로 테스트하면서 혼감하자. 자존감이 높은 건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니 바꾸라고 몰아세우기보다는 부드럽게 한 번 더 남을 배려하고 넓은 세상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