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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하루를 계획함

음식에 관한 단상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추석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 모두의 명절이어서,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 음력 추석 대신 양력 8월 15일을 '오봉'이라는 조상을 기리는 명절로 변경했다.)

일을 쉬고 가족들이 모이고,

풍성하게 음식을 하며 친지들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우리 어릴 때 명절에 들어오는 선물 중에는 월병이 꼭 끼어있었다.

1960, 70년대에는 일본 문화 잔재도 남아 있었지만 중국적인 문화도 조금 남아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보다는 그때, 월병이 친숙했던 기억이다.

갖가지 곡식과 견과류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모양도 맛도 다양한 월병 한 상자.

아이들이야 뭐 떡이나 월병보다는 초콜릿이나 케이크가 더 좋아서,

월병은 다른 군것질거리들이 사라진 맨 나중에나 찾는 품목이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들어오는 선물이 없어지면서 가끔 월병이 그리워지더라.

추석 즈음에 스스로 명동에 나가 월병을 사곤 했었다.

이게 비싼 거였어?, 깜짝 놀라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추석 즈음에 그리 어렵지 않게 월병을 살 수 있었는데,

화교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들이 줄어드는 추세인지

언젠가부터 추석에 월병 주문이 밀려 월병을 사기가 까다로워졌다.

더울 때야 뭐 텁텁한 월병 생각이 나나?

추억으로 찾는 맛인걸.

추석 임박해서야 월병을 떠올리면 주문은 이미 끝난 상태.



추석 지나 살랑살랑 바람 부는 어느 환한 가을날에,

명동에 나가 성당에 들러 착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큰 나무 아래 선선한 가을을 느끼며 한참을 앉아 있다가.

슬렁슬렁 걸어서 월병 가게에 들러 요것조것 한 상자 골라야지.

아마 그 옆 가게에서 만두도 먹겠지?

추억의 하루가 되겠네.


나이가 들었다.

옛날의 어느 장면이 불쑥 의식 위로 떠올라서

그때는 아리송했던 사안을 또렷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때 내가 너무 몰랐네, 미안해라, 반성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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