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이나 머리카락이냐.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의 선택은..
독일에 오고나서부터 나는 비건과 베지테리안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그 이유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알게 되었다. 고기나 해산물을 먹지 않는 것에는 동물의 죽음과도 관련되어 있었지만 동물의 대량 사육과 도축 그리고 운반되는 동안의 배출되는 배기가스, 먹지 않고 버려지는 고기들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기를 소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고기를 볼 때 더 이상 맛있겠다는 생각을 도축되는 과정보다 먼저 떠올릴 순 없었다. 난 우유가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 지를 봤고 가축이 어떻게 도살되는 지를 봤다. 어떻게 키워지는 지를 봤고 가축 전염병이 돌 때마다 어떻게 땅 속에 산 채로 매장되는 지를 봤다. 내가 소비하는 만큼 생산되어야 할 고기였다. 내가 단 2유로에 간 고기 한 팩을 살 수 있는 것은 좁은 우리에 갇혀 생명을 연명하는 소와 돼지 덕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냉동새우는 제3세계 국가에서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서 벗겨진 새우들이다. 새우를 보면 새우를 까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삼겹살 한 팩을 신나게 집을 수 없었다. 그러는 대신에 나는 차라리 베이컨 한 팩을 사서 서너 번에 나누어 먹었다. 계란과 베이컨 정도가 내가 평소에 하는 유일한 육식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육식을 하던 나는 지난해에 작은 전시공간 디자인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고 내 사수는 채식주의자였다. 새우젓이 든 김치 정도는 같이 먹었고 치즈 정도는 먹었지만 그 외의 고기나 해산물, 유제품은 먹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항상 고기를 가져오기 조금 그래서 자주 베이컨도 없는 점심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집에 돌아오면 나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요리를 할 힘이 없었고 항상 대충 때우기만 하는 식사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내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원형탈모가 온 것이었다. 이제까지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것이 나에게 일어났다. 아는 언니가 발견한 원형탈모는 이미 생겨난 서너 개의 동그라미 중에 하나였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더 우수수 빠질 수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나는 그즈음에 머리가 많이 빠지고 있다는 것은 느꼈지만 원래 숱이 많은 지라 어느 정도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참 어처구니없는 여유로운 생각으로 빠지는 머리카락들을 치웠다. 그런데 그건 전체적으로 빠지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원형탈모들이었다.
처음엔 작았던 원형탈모들이 여기저기에 여러 개 생겼다. 그리고 나서는 커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장자리에 있는 머리들도 빠져서 좁았던 이마가 조금 넓어지고 M자 탈모는 아니지만 헤어라인이 매끄럽지 않고 두세 자리가 움푹 파여 들어가기도 했다. 원형탈모가 생기는 게 스트레스 때문이라던데 나는 누군가 내가 탈모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까 봐, 바람이 불어서 탈모를 덮고 있던 긴 머리카락이 날리면 누가 내 뒤통수의 원형탈모를 보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고 원형탈모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만들었다. 나는 매일 내 머리카락 속을 만지며 매끈매끈한 탈모 부분을 체크하고 사진을 찍어 얼마나 진행됐는지 지켜보고 주사도 맞아보곤 했다.
하지만 주사는 역으로 부작용을 일으켜 더 큰 원형탈모를 다른 부분에 만들어 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욕심을 포기하고 그냥 이제 다 빠지면 머리를 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고 골고루 영양 섭취하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던 사장에게 인턴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밥을 제대로 챙겨 먹고 물을 많이 마시도록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는 원래 베이컨이나 간 고기를 가끔 먹는 정도였던 육식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학 때 잠깐 한국에 있었고 한국에서 나는 어떤 고기든 가리지 않고 구워지고 튀겨지고 끓여진 고기들을 섭취했다. 친구들과 만나면 고기와 해산물을 가리지 않고 먹으러 다녔다. 절제하는 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냈는데 그 절제를 푸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독일에 돌아와서도 나는 사지 않던 목살과 삼겹살을 다시 사서 구워 먹고 냉동새우를 다시 사 먹었다. 그리고 몇 달 후가 돼서야 내 머리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솜털같이 자라던 머리가 점점 굵어지고 길어졌다. 그 과정에도 한참이 걸렸다.
나는 동물들의 죽음과 내 머리카락을 맞바꿨다. 나에게는 죄책감보다는 사회적인 체면을 완성해주는 머리카락이 더 중요했다. 나는 동물들을 아끼는 척했고 지구를 위하는 척했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 나는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보다는 다시 솜털같이 자라나는 내 머리카락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다시 영양관리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머리가 지끈지끈하면서 머리에서 열이 나고 머리카락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제일 먼저 고기를 다시 먹을 것을 생각한다. 역시 아직도 나에게는 동물의 삶 같은 것보다는 머리카락이 먼저인 것이다. 나는 심지어 머리카락과 고기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잠을 푹 자고 스트레스 요인을 차단하고 샴푸를 바꾸고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을 가끔 한 덕분에 내 면역체계를 되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가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육식이다.
언제나 지구에 좋은 사람이고 싶고 어떻게 해야 지구에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결국 내 머리카락 몇 올에 그런 것쯤은 간단히 포기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