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째. 한 달이 되어간다. 금주를 시작하고 하루하루 흘러갈 때마다 해맑금주의 날짜는 반대로 거짓 없는 솔직함과 착실성으로 더해지니 뿌듯하다. 몸이 얼마나 좋아질까? 또 다른 감각이 나에게 찾아올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내일, 또 내일이 뿌듯한 기대감으로 피어난다.
몸과 마음, 정신의 변화를 은연중 계속 의식하고 있다. 오늘은 조금씩 또렷해지는 맑은 정신을 느낀 날이다.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뇌가 정지되는 버벅한 자신을 마주 했었다. 머릿속에 맴돌던 "그거 있잖아 그게 뭐였지?" 하던 물음표의 허덕이던 희미한 단어들, 문장들이 공사를 마친 새 건물처럼 새로 시작하는 산뜻함으로 바뀌고 있다. 다음 할 일이나 기억해야 되는 것을 메모 없이 착착해낼 때 스스로 감격(혼자 박수)한다. 겉으로 티 나지 않지만 나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발전이다.
오랜만에 저녁 8시 넘어 삼겹살 집에 갔다. 금주 이후 처음 갖는 술자리다.
지인들은 술을 마신다. 나는 물을 마신다. 상상도 못 한 상황이다. 혼자 술 먹지 않는 이 상황. 지인분들도 어색해한다. 맥주, 소수를 시키고 잔을 세팅해야 하는데... 손이 쉬고 있다. 할 일이 없어졌다. 깔끔하게 낯설다.
맥주의 첫 잔을 뻥 따고 지인분을 따라 드렸다. 맥주가 흐르는 쿨럭쿨럭 소리, 유리컵이 동시에 물기 있는 얼음처럼 차가운 서리와 안개 낀 컵으로 바뀌는 그 순간 '와 맛있겠다' 생각 들며 동공이 커졌다. 하지만 '이걸 한 입 먹어봐?' 같은 동요는 올라오지 않았다. 신기하다. 그리고 다행이다.
금주를 시작하니사람들은 "네가 술을 안 먹으니까 이런 자리가 오랜만이잖아" 아쉬워한다. 맛있게 고기를 먹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진다. "조만간 만나, 그때는 맛있는 밥 먹자!" 그 말에 기분이 좋다. 이제 난 술을 먹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을 내가 지배하고 만들고 있다는 기운을 받는다. 내가 계획한 일상에 틀어짐이 없다. 이 부분이 현재 내가 바뀌고 있는 중요 포인트인 것 같다. 술을 먹으면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해,생각했던 것보다 술의 양도, 시간도 넘치게 마실 때가 많다. 좋은 사람들과 먹으니 더 그러했다. 그럼 계획한 일을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일은 미뤄지게 되었던 것이다.그리고 잘 잡힌 좋은 습관들이 또다시 틀어지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트레드밀을 내려오니(금주) 알게 되었다. 내가 제자리를 걷는 트레드밀 위에 있었다는 것을.
내가 금주를 하는 강한 의지는 현재, 건강한 신체와 삶의 긍정적 패턴을 선물해주고 있는 듯하다.
마음에 든다. 인생의 지도를 내가 그리고 있고 그 가는 길이 속도가 느릴지라도 정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해 걸어가고 있다는 분명한 확신이 든다.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숨을 크게 쉬며 생각한다. '충실하게 하루를 보냈구나.' 오늘도 1일이라는 날짜는 끝나가지만 나의 해맑금주 날짜는 1일 더하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