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방콕 - 런던
오랜만에 찾은 방콕은 역시나 더웠다. 공항은 좀 시원할 법도 하건만, 습하고 더운 기운이 공항 안까지 스며들었다. 이번 방콕 경유 여행의 목적은 갈비 국수와 마사지샵, 둘 다 지난 가족여행 때 주변의 추천을 받았지만 못 간 곳이다. 말하자면 한풀이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내로 나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구글맵을 검색하니 목적지 바로 근처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시간이 20분 가까이 절약된다고 해서 조금 비쌌지만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타는 건 처음이라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표를 구매하고 기다렸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냐는 직원. 한국인이라고 하자 한국인같이 안 생겼다고. 아니, 한국인같이 생긴 게 뭔데, 죽을라고.
안 그래도 경유 여행 일정이 짧은데 계속 예상 시간보다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다. 원래 2시였던 버스 시간은 2시 20분으로 바뀌었다. 내리려고 했던 정류장도 오늘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갈까 고민했지만, 좀 더 편하게 가고 싶고 기다린 시간도 아까워 버스를 계속 기다렸다. 버스는 30분이 되어서도 오지 않고 공항에서만 1시간 가까이 앉아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2시 40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작은 버스에 승객은 나 혼자뿐, 게다가 기사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운전하다가 이상한 차에서 망고스틴을 사서는 가는 내내 망고스틴을 까먹으며 운전을 하고 사고가 날듯 말 듯 곡예 운전을 했다. 이번 여행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버스의 종착지는 방콕에서 가장 번화한 카오산로드. 버스에서 내리니 햇빛이 정말 뜨거웠다. 선크림도 안 발랐는데, 양산은 위탁수화물로 부쳐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갈비국수 맛집으로 알려진 '나이쏘이'까지는 도보로 10분.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니 늦은 점심에 마사지를 받으면 경유 여행은 끝이 날 것 같아 아쉬웠다.
갈비국숫집에 도착하니 원하던 메뉴는 이미 솔드아웃이었다. 그래도 맥주를 한병 시켜 낮맥을 하고 있으니 여행온 게 실감 났다. 국수는 조금 익숙한 듯한 맛이었지만 고기 식감도 좋고, 맛 자체는 꽤 준수했다. 배가 불렀지만 바로 옆에서 후식으로 망고스틴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방콕에 왔으니 땡모반도 하나 사서 먹었지만 아쉽게도 밍밍한 맛. 배가 거의 터질 것 같았다. 여행만 오면 왜 이렇게 무리를 하는지.
마사지샵은 거리가 꽤 멀어서 그랩을 불렀다. 마침 바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오일 마사지를 한 시간 반 받았다. 배가 가득 찬 채로 받은 마사지라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 친구의 추천에 비해서 실력이 생각보다 아쉬웠다. 팁도 필수로 줘야 하는 곳이어서 가성비도 좋지 않았다. 여러모로 아쉬웠던 곳이었다.
마사지가 끝나고 나자 시간이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까지 두 시간도 안 남은 애매한 시간이었다. 공항 라운지를 이용해야 해서 저녁을 먹기도 애매했다. 고민 끝에 저번에 만족했던 마사지를 한 번 더 받기로 했다. 마침 같은 마사지사에게 받을 수 있었다. 마사지는 변함없이 만족스러웠는데 끝나고 나니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다.
공항까지 그랩을 타고 가기에는 비용이 비싸서 근처 역까지로 그랩을 불렀다. 비가 와서 인지 수요가 많아 가격도 비싸고 잘 잡히지도 않았다. 15분 정도 기다려서 겨우 그랩이 잡혔다. 공항까지는 40분이면 간다고 하는데, 티켓창구는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했다. ATM에서 돈을 뽑아야만 했는데 수수료는 8800원. 이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공항까지 그랩을 타도 됐었는데... 시작부터 꼬인 듯싶더니 역시나 끝도 좋지 않은 경유여행이었다. 이번 유럽 여행이 과연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다.
멍청비용을 지불하고 공항에 도착했다. 퍼스트클래스 전용 입구가 있었는데 티켓도 이미 발권했고 짐도 부친 터라 바로 FAST lane으로 향했다. 통과하자마자 바로 출국심사대. 오래 걸리기로 악명 높은 방콕 수완나품의 수속이 단 10분 만에 끝났다. 또 한 번 돈의 맛을 느끼는 순간. 출국심사를 끝내고 나오자 다시 직원이 기다리다가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바로 앞쪽 계단을 내려가니 타이항공 비즈니스 라운지가 기다리고 있다. 퍼스트라운지는 라운지에서도 가장 안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 같은 원형테이블과 라운지체어, 프라이빗룸으로 구성되어 있는 퍼스트라운지. 프라이빗룸은 아쉽게도 사용이 불가했는데, 뭔가 재계 인사 같은 사람들이 오가는 느낌이었다. 입구 쪽 테이블에는 한국인 유튜버 또떠남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평소 즐겨 보던 터라 신기했다.
짧긴 했지만 여행을 마친 터라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게 라운지의 가장 큰 장점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직원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웰컴드링크와 함께 메뉴판을 건네줬다. 조금 부담스럽고 미안했지만 태연한 척 메뉴를 살폈다. 비즈니스라운지는 뷔페식이었지만, 퍼스트라운지는 레스토랑처럼 주문을 받았다. 메뉴도 10가지가 넘고 음료도 다양했다. 먹고 싶은 건 많았지만 기내식을 또 먹어야 하기에 간단하게 팟타이와 태국식 돼지고기구이를 주문했다. 그리고 샴페인과 칵테일까지.
라운지 음식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두 요리 다 기대이상으로 맛있었다. 칵테일과 샴페인도 궁금한 걸 다 시켜 먹어봤다. 다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자정 가까운 시간이라 피곤했는데 누워서 쉴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라운지체어에 구겨져 앉아 잠에 들었다. 30분쯤 잤을까, 보딩시간이 되니 직원이 나를 깨웠다. 10분 정도 되는 게이트까지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인파를 뚫고 바로 입장을 했다. 행색과 클래스가 매칭이 안되서인지 부러워서인지 다들 나를 쳐다봤다.
드디어 퍼스트클래스에 입성했다. 8자리 중 네 자리만 차 있었다. 승무원 사만다가 다가와 내 이름의 발음을 물어보고, 자기소개를 하며 웰컴드링크로 샴페인을 가져다주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출발하다 보니 이륙을 하고는 금방 모든 불이 꺼졌다. 나머지 3명은 어매니티 중 하나인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바로 잠에 들었다.
나 홀로 상을 펴놓고 그를 소리를 달그락 거리며 저녁이 아닌 야식을 먹고 있었다. 메인 요리로 평소 가장 좋아하던 랍스터를 신청해 두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뮤즈부시가 나오고 뒤이어 캐비아가 나왔다. 캐비아는 먹는법도 몰라 승무원에게 방법을 물어 한입 베어 물었다.
뒤이어 스타터와 메인요리, 디저트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랍스터 맛이 아쉽고 배가 너무 불러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하늘 위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게 꿈만 같았다. 식사를 마치니 거의 3시간이 지나있었고, 양치를 하러 가며 베딩 서비스를 부탁했다.
평평해진 좌석에 매트리스를 얹고, 담요까지 준비해 준 간이침대. OTT로 미리 받아온 영화를 보며 누우니 금방 잠이 들었다. 한 3시간쯤 잤을까 비행기가 크게 흔들려서 잠에서 깼다. 잠이 안와 무심코 창문덮개를 열었는데 창 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에서 보는 일출에 행복감이 몰려와 기쁨의 샴페인을 또 주문했다.
설레서인지 다시 잠이 오지는 않아서 처음 보는 보드카와 위스키, 진을 차례대로 주문했다. 과일 안주도 부탁했는데, 처음 먹어본 포멜로가 너무 맛있어 조금 더 달라고 부탁하니 포멜로만 한 덩이를 따로 내어주었다. 맞춤평 뷔페가 따로 없었다. 영화를 보며 세 시간 정도 더 보내고 나니 배가 살짝 고팠다.
다른 승무원인 팻에게 아침 식사 시간을 물으니,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다고 해 주문 가능한 음식을 물었더니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타이식 누들이라는 메뉴를 시켰는데 땅콩 소스에 비벼 먹는, 처음 보는 요리가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싱글몰트를 한잔 또 시켰다. 행복한 사육이었다.
도착이 두 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조명이 밝아지며 기내가 분주해졌다. 9시간 내내 숙면을 하던 다른 세 명도 일어나 아침 먹을 준비를 했다. 또 한 번의 아뮤즈부시와 스타터, 메인 요리는 타이티를 활용한 팬케익이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지는 않았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라멘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일본식 소유 라멘이었다. 라멘을 맛있게 먹고는 아이스크림도 하나 주문했다. 과식은 맞지만 다 맛있게 비워냈다.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려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이 시간이 끝나가는 게 정말 정말 아쉬웠다.
착륙시간이 가까워오자 승무원 사만다와 펫, 사무장이 와서 인사를 건넸다. 불편한 건 없는지, 비행은 어땠는지. 그리고 나에게 유튜버냐고 물었다. 그냥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싶어 찍었어라며 얼레벌레 대답을 이어갔다.
스무스한 착륙을 마치고 나니 비행기 밖에는 버기카가 대기 중이었다. 입국심사대까지 데려다주는 에스코트 서비스였다. 길을 막는 사람들에게 클락션을 울리며 빠르게 입국심사대로 향했다. 나도 모를 우월감이 또 한 번 올라왔다.
어떤 경험은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입국심사대를 나오며 결심했다.
언젠가 다시 또 퍼스트클래스를 타겠어, 무조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