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일 Sep 30. 2024

#02. 내 구멍 난 양말

9월, 계절 속에서 부유하는 중

올해 한글날이 오기 전 날씨는 더 변덕스럽게 느껴진다. 그런 변덕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단조롭게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회사에서 1년 조금 넘은 지금 업의 즐거움보다 일 자체의 의미를 되뇌며, 미래를 그려보고 있다. 루틴을 설정하기 위해 일상에서 밀도를 높이고 여러 앱을 통해 루틴과 투두 관리를 시도하고 있지만, 몸에 덕지덕지 붙은 게으름 탓에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루틴을 더하지 못다. 그래도 1~2년 지속하다 보니 소소한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다.


연아는 이번 달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다녀왔다. 며칠을 못 봤을 뿐인데, 부쩍 자라 구사하는 어휘가 더 성숙해졌다. 조금 더 열심히 벌어 많은 기회와 경험을 담아주고 싶다. 나는 연아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은데 항상 스스로 좋은 아빠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앞서서 내 감정이 우선시되는 상황이 많다. 그럼에도 연아는 항상 나에게 안겨 따뜻하게 마음을 녹여준다. 나는 매일 자기 전 후회하며 반성한다. 언제쯤 덜 후회하고 미안해질까.


연아와 아내가 호주에 갔을 때, H를 만났다. H와는 아주 오래, 그리고 한때는 아주 가까이 지냈음에도 내 변덕과 미움, 옹고집으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당연히 제대로 술 한잔 기울인 적 없었다. H와 이번에 술을 한 잔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회포를 풀고 서로를 다독였다. H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하루였다.


연아와 저녁 시간을 더 잘 보내기 위해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연아는 아직 종이를 섬세하게 접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그럴듯하게 흉내를 내며 종이접기를 완성할 때가 많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장난감이 많지 않아, 색종이와 고무찰흙으로 갖고 싶던 것들을 만들었는데, 그때의 손재주가 아와 놀이할 때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 요즘은 퇴근길에 핀터레스트에서 종이접기를 찾아본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내에게 위스키를 한 병 선물 받았다. 꽤 감동받아 사진을 찍다 눈물이 살짝 고였다. 요즘은 자기 전 선물 받은 위스키를 조금씩 마시고 잠을 청한다.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잠이 들면 다음 날 상쾌하게 기상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습관이 되지 않도록 자중해야겠지만, 마실 때 위스키 향과 따뜻한 기분이 좋아서 큰일이다.


출근 전 복싱을 한 지 1년이 지났다. 최근 발을 접질려 힘들었지만 조금씩 몸이 달라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됐다. 몸무게는 72~76kg을 매주 오르락내리락한다. 주말에 엄청나게 먹고, 평일에 살을 쭉 뺀다. 몸무게가 늘어도 배가 이전보다 더 나오지 않는 게 신기하다. 체력은 당연히 좋아졌고 철봉에 매달리는 것조차 못했는데 턱걸이를 무려 2번을 할 수 있게 됐다. 내년에는 생활체육 대회를 나가려고 하는데, 대회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숱하게 브런치를 쓰려고 다짐했지만 1년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글을 쓰지 않았다기보다는 글을 올리지 않았다. 역시나 '글' 자체보다는 쓸데없이 '글 쓰는 나'에 취해서 겉멋이 들었었다. 그놈의 겉멋 때문에 이러다가는 평생 아무것도 올리지 못할 것 같아 새로운 루틴으로 조각 글을 쓰고 모아놓는 중이다. 꾸준히 쓰기라도 하자. 자연스럽지 않아도 좋고 멋없어도 좋으니 조각 글이라도 이렇게 올리기로 했다.


9월은 많은 일이 있었다. 이번 계절은 나를 차곡차곡 다지며 조금은 나아갈 수 있었다. 10월에는 단단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플레이어(Player)'가 된 '사용자(Us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