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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Oct 20. 2023

목련 두 잎의 애도

 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우리 강아지 ‘니모’와 산책을 한다. 찬비가 후득후득 떨어지는 날에도, 첫눈이 펄펄 내리는 날에도, 새들이 이른 아침부터 조잘대는 날에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었다 소리 없이 지는 날에도 내 발은 습관을 따라 걷는다.


며칠 전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는 니모를 데리고 집 앞 공원으로 나왔다. 냄새를 맡으며 킁킁대는 니모를 따라가다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여기저기 새의 깃털이 몇 개 떨어져 있었고 멀지 않은 풀밭에 죽은 비둘기가 있었다.

헉! 어제저녁에도 없었는데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놀라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린 채 고개를 휙 돌렸지만 빛을 잃고 텅 빈 비둘기 눈을 보고 말았다. 니모의 줄을 급히 당겨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지만 심장이 쿵쿵 대는 소리가 한 참 들렸다.


문제는 그다음 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비둘기의 사체를 목도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 길로 지나가는 게 두려우면서도 아직도 그 자리에 비둘기가 있는지 눈길이 갔다.

왜 아무도 비둘기의 사체를 치우지 않는 걸까?’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비둘기의 죽음을 생각해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평소 비둘기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고 길을 걷다 비둘기 무리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 앞에서 날아오를 까봐 질색하며 서둘러 돌아가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죽은 비둘기가 자꾸 생각나서 도무지 그렇게 버려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주변을 살피고 근처에 떨어진 커다란 목련나무 잎을 몇 장 주어 이제는 점점 형체가 뭉개져 가는 비둘기 위에 목련 잎을 덮어주었다.


향긋한 봄과 짙은 초록빛 여름과 쓸쓸한 가을을 살았던 비둘기를 추억하며 목련 두 잎의 애도를 보낸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고 했던 오래전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성큼 백 년의 세월을 건너 내 마음에도 물들어온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향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크고 작음에, 하찮고 귀함에 차별이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들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애도한 시인의 이야기가 비로소 깨달아진다.


그리고 그날 밤 눈이 소복이 왔다.


목련 잎을 덮은 비둘기 위에도 흰 눈이 무덤처럼 쌓여갔다.


아침 산책길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을 보았습니다. 손바닥 보다 큰 목련잎 짙은 초록이 멍든 갈잎이 되어 떨어진 것을 보니 문득 지난겨울에 썼던 에세이가 생각나 '목련 두 잎의 애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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