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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May 17. 2023

불량 사서와 뭐라구 할아버지

나는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혼자 놀기의 달인답게 책을 보거나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놀기 딱 좋은 곳이지요. 아마 놀이터처럼 수시로 드나드는 단골 이용자 중 10위 안에 들 겁니다.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세워지던 10년 전 개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개관하는 첫날 자원활동가 모집에 1번으로 접수하기도 했으니까요. 사서는 아니지만 사서가 될 뻔했고 도서관의 운영과 도서관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원활동가로 시작해서 도서관 독서프로그램 강사로 일을 하며 친분이 생긴 몇 분의 사서와 관장님들을 알고 있습니다.


친분이 있던 사서들은 모두 이용자들에게 상냥하고 친절하며 유능한 분들이었지요, 그러나 여러 번의 인사발령으로 한 분 한 분 다른 도서관으로 가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3층 자료실 사서까지 바뀌며 지금은 모두 뉴 페이스입니다. 바뀐 대부분의 사서들도 친절한 편이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특히 3층 자료실에 문제의 불친절한 사서가 버티고 있지요. 


가끔 검색한 책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럼 사서에게 책을 찾아달라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 사서의 표정이 매우 성가시다는 듯해서 기분이 상합니다. 사서는 도서관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런 점에서 그 사서는 불량사서입니다.  


얼마 전 그림책 동아리 지인이며 브런치 작가이기도 한 피어라님과 3층 자료실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하필 피어라님이 찾는 책 청구번호가 책장 맨 꼭대기에 있어서 까치발을 하고도 잘 안보였습니다. 그날도 불량사서가 근무 중이었는데 망설이다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서는 또 성가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찾은 책을 건네며 ‘ 이것도못 찾아!‘ 하는 눈빛으로 “여기 있잖아요.”했습니다. 나보다 키가 큰 피어라님이 정면으로 불량사서의 눈총을 맞았고 피어라님과 나는 서로 무안해서 자료실을 나왔습니다. 우리는 소심한 내향형이라 그 자리에서 발끈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불쾌했습니다. 그 후로 불량사서에게는 아무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휘리릭 지나가고 엊그제 신간도서가 뭐가 들어왔나 보려고 3층 자료실에 들렀는데 그 불량사서가 어떤 어르신을 응대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이 찾는 도서가 우리 도서관에 없으니 상호대차 서비스를 신청하라고 안내중이었지요. 그러나 도서관 이용이 미숙한 어르신은 사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다시 물어보셨습니다.

뭐라구? 다시 설명해 봐요.”

아... 이용자님이 찾는 도서가 저희 도서관에 없으니 다른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하시라고요.”

뭐라고? 상호대차가 뭔데요?”

아... 그러니까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건데 온라인으로 신청하셔야 돼요.”

뭐라구? 온라인 신청을 어떻게 하는데?

아,,, 그러니까 도서관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후 신청하시면 됩니다.”

뭐라구? 로그인은 어떻게 하는데?”

아... 그러니까 로그인은 회원번호를 입력하시고...”

뭐라구? 회원번호 모르는데, 그냥 그 책이 있는 도서관은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시오.”

아,,, 그러니까 여기서 **버스를 타시고 구립도서관 앞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뭐라고? 몇 번 버스? 아니 그냥 상호대차인지 뭔지 그걸 해주시오.”

아... 그러면 이리로 오세요. 회원가입부터 알려드릴게요.”

아니 도서관 가는 길을 다시 알려주시오. 아니, 아니 상호대차를...”

그렇게 뭐라구와 그러니까를 주거니 받거니 30분 넘게 실랑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량사서는 어르신 때문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는지 다크서클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울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고 고소하던지 나는 책을 찾는 척하며 그 재미난 광경을 계속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이 통쾌한 소식을 피어라님께 알렸지요. 우리는 정말 크크큭큭 쓰러지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낄낄대며 집에 왔는데 빌린 책 한 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차! 생각해 보니 본격적인 구경을 위해 책상에 책을 잠깐 내려놨는데 아마도 거기 두고 온 것 같았습니다. “놔 이런 참!” 나는 다시 숨차게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도서관의 직원들이 계속 들고 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의 주인은 사서도 관장도 아닌 꾸준한 이용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도서관을 가꾸고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아무 보수 없이 성실하게 봉사하는 활동가들이라는 것을 도서관 관계자들이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과 유익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위해 애써주신 사서님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참! 불량사서에게 참교육 시켜주신 뭐라구 어르신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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