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식물. 자연스럽게 키우기
식물들을 보면 자연스레 계절을 알 수가 있다.
식물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을까?
수천수만 년 동안 살아온 식물들은 마치 DNA에 새겨진 듯 배운 것처럼 배운 대로 살아간다.
입춘 - 입하 - 입추 - 입동
계절의 시작 시기를 알리는 절기가 신통하게 들어맞는다.
환경의 변화로 때론 철없는 개나리가 피고, 철 모른 단풍이 들기도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언제나 식물은 절기에 걸맞은 차림을 준비하고 있음을 만나게 된다.
아직은 절기에 대한 기다림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며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아마도 식물이 살고 있는 자연에서 온 것 같다.
식물들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자연스러운 제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식물들의 세상에 여행으로 와 마음껏 살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일상을 떠나 온 여행지에서 때론 평소라면 하지 못할 일탈을 하고, 마치 다신 오지 않을 곳처럼 함부로 하며 지내기도 한다.
우리는 잠시 빌려 와 있음을 잊지 말고, 집주인이 써놓은 작은 메시지를 알아채야 한다.
“자연스럽게 편하게 지내세요”
모든 일은 자연스러울 때 비로소 평온이 찾아온다.
어쩌면 식물의 자연스러움을 따르고 지키며 사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섭리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봄이면 어떤 꽃보다 먼저 피는 산수유 꽃을 만나고,
여름이면 어디서든 짙고 튼튼한 초록으로 뒤덮이는 우거진 나무를 만난다.
가을이 되면 빨간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뿐만이 아니라 이름 모를 작은 들풀까지도 울긋불긋 물이 들고,
식물들이 휴식기에 들어간 겨울에도 여전히 청청하게 푸른 소나무와 사철나무에 놀라움을 느낀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이다.
그렇다면 실내의 식물들은 어떤가?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을 슝슝 틀어 시원하게 냉방을 하고, 겨울이면 따끈따끈하게 난방을 한다.
아침잠을 방해한다고 해가 중천에 뜨도록 암막커튼을 치기도 하고, 밤잠이 안온다고 훤히 tv를 켜거나 불을 휘영청 밝히고 책을 읽는다.
실내의 식물들은 자연스럽지 못한 환경에 놓여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별을 고한다.
식물이 죽는 것은 식물이 제 역할을 안한것도 아니며 내 손이 똥손이어서가 아니다. 무책임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을 위해 실내로 들인 식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야생의 동물을 우리에 가두면 보살핌이 필요하듯
실내의 식물에게도 사람의 보살핌은 꼭 필요하다.
분명히 나는 어릴 적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그 작은 마당이 영원할 것처럼 사진 찍어두지 않았던 것이 정말 아쉽다.
지금은 깍두기 같은 네모난 집에 살며 나를 자연스러움에 물들게 했던 엄마의 사파리 정원을 그린다.
마치 환상적인 꿈속이었던 것만 같다.
창문너머로 스며들던
향기로운 꽃과 싱그러운 이파리들의 향기,
저녁 무렵의 촉촉한 흙의 내음,
새벽녘 초록잎 끝에 매달린 영롱한 아침이슬 방울이 그립다.
작은 책상 위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은 나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갈망이다.
나는 실내로 들인 식물에 대해 정성을 다한다.
아침에 눈을 떠 일과를 시작하기 전 식물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하룻밤 사이의 변화를 찾다 보면
어느새 책상 위는 손바닥만 한 마당이 되다가 숲이 되어간다.
내겐 무척 자연스럽다.
결혼 후 언제나 식물을 키웠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고군분투였다.
수도가 없는 2층 화단으로 매일 무거운 호스를 끌어올려 물을 주던 일은 정말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가장 난이도 높은 걱정거리는 우리 집 곳곳에 있는 식물들이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경계해야 하는 복병들이다.
(겨우겨우 한개를 올렸던 프리지아 꽃대를 자신이 꺽은지도 모르는 복병에겐 지금도 가끔 화가 난다.)
“왜?”
아이가 잠든 시간에 피곤하다고 노래를 하면서도 쉬지 않고, 살금살금 고양이 발걸음으로 식물에게 물을 주는지..
“왜?”
지저분하게 흙을 쏟고, 물을 흘리며 거실을 가로질러 수십 번의 왕복 달리기를 하는지..
“왜?”
한 평도 안 되는 세탁기 앞의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쭈그리고 앉아 분갈이를 하는지..
그것이 즐거움이란 것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산다.
뭐 그런 가족이 있냐고 탓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식물의 때를 오랫동안 기다려 아주 작은 변화와 결실을 만나는 일을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얼마나 큰 감동을 받는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집의 식물인과 비식물인의 비율은 1대 3이다.
그들의 동선에 불편함이 없이 위치하게 하고,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시간에 식물을 보살펴야 한다.
“뭐야! 잎이 원래 이렇게 컸어? 새로 산 거야?”
- 4년 된 몬스테라다.
“와! 이 꽃은 진짜 크다. 새로 산 거야?”
- 애지중지 보살펴 올봄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제라늄이다.
“어떻게 파랑꽃이 있어? 새로 산 거야?”
- 두 달 동안 꽃이 피고 있는 로벨리아이다.
“부추에 꽃이 폈다. 새로 산 거야?”
- 4년 만에 꽃이 핀 흰꽃 나도 샤프란이다.
복병들을 거슬리지 않게 해야하는 귀찮은 신경을 써야 하지만 저 정도의 반응이 나오면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
나와 똑같지 않아도 괜찮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자연스럽다.
실내 식물 키우기에 대하여
무엇을 해도 다 괜찮아. 봄
가장 좋은 온도와 습도, 바람과 식물의 강한 의지가 있는 계절이다.
가지치기, 분갈이 등 무엇을 해도 잘 적응하며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키운다.
조금의 실수가 있더라도 식물은 이해해주며 극복하고 잘 자란다.
꼼짝마! 여름
집 밖의 식물들을 보면 무성한 초록잎이 우거져 식물들이 왕성하게 자라는 좋은 계절로 보인다.
하지만 실내의 식물은 한없이 약해지는 위기의 계절이다.
높은 습도와 고온은 줄기를 무르게 만들고 잎을 타게 만든다.
이 시기엔 아무것도 하지 말자!
토닥토닥. 가을
여름을 지나고 살아남은 식물들은 많이 약해져 있다.
봄처럼은 아니지만 건조하고 쾌적한 바람이 불고 온도도 적당해진다.
봄에 못한 분갈이가 있다면 때를 놓치지 않고 분갈이를 하거나 영양제를 주어야 화려한 봄을 만날 수 있다.
저온을 못 견디는 식물과 10도 이하로 저온의 기간을 지나야 성장하는 식물들을 구별하여 자리 배치도 새로 해야 한다.
짧은 시기를 놓치지 말고, 토닥토닥 보살펴주자.
따뜻하니 꽃도 펴볼까. 겨울
실내의 식물들은 따뜻한 실내애서 꽃이 피기도 한다.
왕성하게 자람을 하진 않지만 가을철의 알맞은 보살핌을 받았다면 봄처럼 꽃을 피우기도 한다.
겨울철 실내는 건조해지는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봄을 위해 멈춤을 하고 있는 식물을 기다려주자.
* 모두에게 적용되는 주의점 *
1. 물받침에 흘러나온 물은 반드시 버린다.
간혹 영양분이 흘러나왔다고 생각하여 옆의 화분에 부어준다.
그것은 영양분이 아니고 배설물이다.
흙속 해충의 알이 흘러나오거나 안 좋은 성분이 흘러나오니 절대 다른 화분에 주면 안 된다.
2. 통풍은 어느 계절에도 중요하다.
식물에겐 물을 주는 것도 중요하고 흙속의 뿌리가 건조해지는 두 과정이 모두 중요하다.
식물이 죽는 것은 물말림보다는 과습일 경우가 더 많다.
자연 바람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약하게 선풍기를 틀어주면 도움이 된다.
바람은 식물 주변의 정체된 공기를 환기시켜 해충방지의 효과도 있고, 뿌리의 건조를 도와 식물을 건강하게 만든다.
대단한 비법은 없지만 실내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는것에 조금의 되움이 되었기를..
어느덧 다음화는 <아는 식물> 연재북의 마지막 글입니다.
처음에 열두 개의 초고를 갖고 시작한 연재가 스무 개를 넘었다는 사실에 저도 놀랐으며 삼십 개를 채울까 생각했지만..
식물의 자연스러운 섭리를 따르듯 정말 아는 것까지만 하고 멈추기로 합니다.
그동안 싱그러운 초록의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일요일 마지막 화까지 꼭 함께 해주세요 “
* 오늘도 행복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