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레시피
나는 커피가 좋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침 첫 커피의 첫 모금이다.
입안에 머금은 한 모금을 넘기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흘러내려가며 몸을 커피로 물들이고, 아침을 깨운다.
1. 전기 포트의 단추를 눌러 물을 끓인다.
드립용 주전자는 어딘가로 처박아 둔지 오래되었다.
이젠 익숙해진 전기 포트의 무게와 손잡이, 투박한 주둥이로도 알맞은 물줄기를 내려보낼 수 있다.
2. 좋아하는 고소한 원두를 두 스푼 넣어 적당한 크기로 간다.
고소한 맛의 원두를 좋아한다. 주로 문블렌드나 블루문 커피 원두를 구입한다.
언젠가 선물 받은 귀한 하와이안 코나는 드립 기술부족 탓으로 제 맛을 느끼지 못한 무척 아쉬운 경험이 있다.
상큼한 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맛의 원두를 제 구실 잘하도록 내릴만한 기술도 없고, 바깥의 커피를 마셔도 제대로 신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만나기란 어렵다.
그러니 무난한 고소한 맛의 커피를 즐긴다.
내가 사명감이 투철한 동물 애호가는 아니지만 사향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트러플 향신료를 왜 극찬하며 과자에까지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으며 밍크도 구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양털 이불을 덮고, 닭장 안의 닭이 낳은 달걀과 각종 육류와 해산물을 먹고 있으니 어쩌면 나의 무지몽매함으로 인해 말과 다른 오류를 범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는 세상의 많은 괴로운 진실이 존재한다.
알고 나면 차마 목구멍으로 넘겨지지 않는다. 굳이 잔인한 희생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3. 유리 드리퍼 위에 갈색의 필터를 비뚤어질까 정성껏 접어 원하는 방향으로 맞추어 넣는다.
금방 간 원두 가루를 한 톨도 흘리지 않고, 필터 위에 안착시키고 톡톡 쳐주어 수평을 맞춘다. 잘됐다.
드리퍼는 예전에 일자형(사다리형)을 썼으나 지금은 고깔 모양(원뿔형)의 드리퍼를 사용한다.
고깔 모양의 필터는 커피가 더 들어가니 커피의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4. 그사이에 섭씨 100도로 끓은 물이 든 포트를 가져와 먼저 준비된 잔에 한가득 부어두고, 포트의 뚜껑을 열고 김이 빠져나가는 것을 본다.
언제가 만났던 장엄한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Geyser) 처럼 뜨거운 연기가 솟구쳐 오른다.
1분쯤을 바라보면 연기가 얌전해진다.
5. 커피의 가운데로 가느다란 물줄기를 내려보내면 신선한 커피가 부풀어 오른다.
포트를 탁! 하고 바닥에 놓고 기다린다.
천천히 가라앉으며 김이 피어오르는 뜸의 과정을 지켜본다. 원하는 향기가 피어오른다.
조바심이 나지만 조금 더 기다린다.
6. 이제 포트를 들어 뜸인 든 커피 위로 두 번 정도에 걸쳐 알맞은 물줄기를 원하는 양이될 때까지 내려보낸다.
원하는 양이되면 포트는 원상복귀 시키고, 드리퍼가 소임을 다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소임을 다한 드리퍼 위 필터 안의 커피원두가 내 눈에 마치 비에 젖은 꽃처럼 보인다.
검은색 페튜니아 꽃 같다.
7. 100도가 90도 정도가 되었을 커피잔에 담긴 물을 버리면 커피잔이 따끈하여 커피의 온도를 지켜준다.
커피를 잔에 따르고 출렁출렁거리던 검은 커피가 고요해질 때까지 향기만 마시며 들여다본다.
“앗! 뜨거워!” 커피의 맛을 즐길 수 없는 온도다.
입안에서 커피가 저항감 없는 체온에 맞춰질 때까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가끔 손으로 감싸 차가워진 손을 덮히기도 하고, 또는 찬 손이 커피의 온도를 내리기도 한다.
따뜻한 커피가 더 이상 식을 수 없는 숨 쉬는 공기와 같은 온도를 지닐 때까지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커피의 향기와 맛은 계속 달라지고 커피가 가장 빛나는 순간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커피는 뜨거울 때 어떤 것은 미지근할 때, 때론 차가워졌을 때 빛이 나는 맛이 된다.
커피는 천천히 즐기는 음식 중 으뜸이다.
나는 커피가 참 좋다.
뜨거운 것도 잘 먹는 남편이 어느새 다 마신 잔을 닦으며 말한다.
“커피로 제사 지내?”
우리는 와니와 쿄코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커피를 즐기는 방법은 다르지만 처음부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30년을 넘게 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를 찾았다.
우리는 한 목소리로 말한다.
“커피는 못 끊어!”
* 참고로 저는 커피에 관한 전문가도 아니며 배움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커피가 좋아서 좋아하는 맛을 찾아갑니다 *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과 살다 보니 어쩌다 커피생활자>
나카가와 와니/나카가와 쿄코 지음
* 와니의 코멘트 *
‘커피의 목소리를 듣는 ‘건 커피와의 대화를 의미해. 사람과 사람 사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한 일(커피를 내린 일)에 대해 커피는 확실하게 대답을 해주지. 그걸 제대로 보고 반복하는 거야. 이게 습관이 될 정도로 경험을 쌓다 보면 어느새 커피가 가르쳐줘. “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 “라고.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과 살다 보니 어쩌다 커피생활자 중에서.. pg. 66
무지몽매 (無知蒙昧)
명사.
아는 것이 없고 사리에 어두움.
예) 그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우는 방법에 대한 천생의 무지몽매가 그를 절망케 했다. 출처 <<박완서, 오만과 몽상>>
출처. 표준국어 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