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족여행이 금지되었다
비누가 우리 집으로 온후 첫 번째 설명절이 되어 늘 다니는 친절한 의사 선생님의 병원에 비누를 맡겼다.
4개월이 된 비누가 너무 어리니 연휴 동안에 비누를 집으로 데리고 가신다고 했다. 꽉 찬 2박 3일이었다.
먹던 사료를 챙겨 비누를 맡기고 나오는데 뭔가 익숙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날은 피곤함에도 온 가족이 비누가 보고 싶은 마음에 집을 들르지도 않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마음이 급했다.
뽈뽈뽈 선생님을 따라다니던 강아지는 우르르 들어간 가족들을 낯선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혹시 그새 우리를 잊었나?’
의사 선생님이 난감한 듯 입을 여셨다.
“비누가 3일 동안 밥을 한 번도 안 먹고, 물만 마시고 소변만 보고 똥도 싸지 않았어요 “
“헉! 왜 그랬을까요? “
“아픈 건 아니고, 그런 애들이 어쩌다 있어요.”
집에 데려와 밥을 주니 허겁지겁 밥을 먹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더니 깡충깡충 토끼처럼 뛰며 가족들을 따라다니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우리 비누는 어쩌다 있는 그런 애들의 하나였고, 비누를 두고 뒤돌아 나오며 내가 느낀 그 마음은 익숙한 미안함이었다.
어린 강아지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누는 설마 다른 집으로 보내졌다고 생각했을까?
다음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비누는 또 3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또다시 설이 다가왔다.
“비누가 밥 안 먹었죠?” 웃으면 내가 먼저 말했고, 의사 선생님은 웃음으로 답을 했다.
1년이 지났지만 비누는 여전히 3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았고, 선생님을 따라다니지 않고 문 앞에서 가족을 기다렸다.
익숙한 미안함의 고민에 빠졌고, 시댁에서 주관하시던 제사를 우리 집으로 나 스스로 가져왔다.
어머님이 점점 연세가 드시니 언젠가 나의 일이 될 거라 생각했기에 거부감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그날이 온 것이다.
비누가 가족이 된 지 1년 만에..
“설마 강아지 때문이라고? 말도 안 돼!”
모두들 그렇게 말했지만 나에겐 너무나 중요하고 합당한 이유로 말이 되었다.
“위의 대표 사진은 우리 집에서 첫 명절을 치르던 날 비누가 친지 여러분의 관심이 무서워서 아빠의 넥타이를 부여잡고 떨어지지 않은 채 눈물까지 그렁그렁 했던 웃긴 사진이다*
간혹 1박 2일 정도의 여행을 갔고, 비누는 맡겨졌다.
보통의 맡겨진 강아지들은 간호사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병원 내를 돌아다니며 잘 지내는 반면 어쩌다 있는 그런 강아지였던 비누는 늘 진료실 의사 선생님의 의자에 함께 앉아 있었다.
여전히 밥을 안 먹고 똥도 안 싸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의 껌딱지로 붙어있었다.
민폐 강아지 비누는 계속 맡겨졌더라면 아마도 어깨너머로 의술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호텔링을 찾아보며 고민을 했지만 사회성이 좋지 못한 강아지를 맡기긴 어려웠다.
물론 좋은 곳도 많겠지만 아무리 좋은 곳을 발견해도 우린 멀리 갈 수가 없으니 걱정이 많은 나는 말을 못 하는 강아지를 맡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막상 일이 생기면 개값을 치르면 그만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고 나니 더 걱정이 되었다.
그 무렵 우리에게 비누는 점점 개가 아닌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거의 집에 있는 사람이어서 비누는 혼자 있는 훈련이 전혀 안되었으며 데려온 시기가 점점 겨울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산책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우리 강아지 비누는 강아지로서의 사회성이 전혀 키워지지 못했고, 어떤 땐 자기가 사람인듯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가 길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에게 관심이 없고, 피하며 싫어하기까지 하니 산책은 더더욱 꺼려졌다.
“그럼 어디든 함께 다니지?”
결정적인 문제는 자동차 타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했고, 가더라도 강아지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비누가 맡겨지거나 미용을 갈 때면 차를 타고 갔다. 차를 타면 가족들과 헤어지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던 걸까?
차를 타면 비누의 작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부들부들 떨며 쉰소리 같은 앓는 소리를 낸다.
미용을 갈 때면 걸어가는 방법을 택하지만 날씨가 안 좋은 날은 어쩔 수 없이 차를 타야만 한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병원에 가거나 미용을 갈 때마다 걱정이 된다.
강아지를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은 모든 반려인들이 희망하지만 많은 반려인이 이루지 못하는 꿈일 뿐이다.
한참 지난 후에야 산책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그 이후부터 산책을 하게 되었으니 꾸준히 산책을 한 것은 비누 견생의 반정도도 안되었으며 사회성을 키우지 못하고 이미 다 성장한 강아지 비누의 산책길은 늘 힘들었다.
다른 강아지도 싫어했고, 다른 사람도 싫어했다.
비누는 모든 것에 긴장을 하고 무서워했다.
어린 시절에 강아지로서의 사회성을 키워줘야 하는 것은 필수이고, 사람의 몫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한 산책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지나치지 않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내 강아지는 인형이 아닌 생명체이며 내가 없는 시간에도 행복한 강아지이길 바란다면 반드시 산책과 사회성을 키우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어릴 때 해야 할 일을 귀찮거나 몰라서 하지 않으면 더 큰 걱정거리가 되어 반려생활이 힘들어진다.
좋은 의사 선생님이다 보니 그 병원엔 하루종일 환자견들이 넘친다.
나이가 들면서 징징거리기까지 하는 껌딱지 비누를 받아주시지만 너무 미안했다.
어쩔 수 없다.
우리 집 강아지 비누의 사회성을 키워주지 못한 우리는 그렇게 오래전에 가족 여행이 금지되었다.
코로나 시국인 때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갑작스럽게 비누를 의사 선생님께 맡기며 걱정의 말을 많이 하고 서둘러 나섰다.
첫날 저녁 8시쯤 이미 진료가 끝난 시간일 텐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놀라서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는데 어느새 정신이 없었을 남편도 옆에 와서 내용을 듣고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우리 비누한테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비누가 밥을 잘 먹었고, 밤에 제가 집으로 데려갈 테니 걱정 마시고 상을 잘 치르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나의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하신 선생님의 배려였다.
14년이 지나며 비누도 늙고, 나도 늙었으며 젊은 의사 선생님도 흰머리가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늙어가며 의리가 생긴 것 같았다.
몇 년 전 큰아이의 대학졸업 기념으로 짧은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우리 비누는 의사 선생님의 껌딱지가 되었다. 올해 막내의 졸업식을 다녀온 후 큰아이가 말한다.
내가 비누를 볼 테니 셋이서 어디라도 다녀와”
“글쎄....”
해외여행을 가려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 나갔다가 비누가 걱정되어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의 꿈 얘기다.
바꾸어 보자. 자식을 맡기고, 맘 편히 해외여행을 갈 순 없다.
오래전 아픈 엄마의 저녁 식사와 약을 챙기고 문을 잠그고 나올 때 마음이 미안하고 불안했다.
요즘은 노견이 된 비누를 두고 멀리 가는 일이 썩 내키지가 않는다.
그사이 비누는 가족이 되고, 자식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강아지가 분리불안이 아니고,
키우는 사람이 분리불안인 것 같다
문제는 사람이고,
개는 훌륭하다”
* 언제나 반려생활의 에티켓을 지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