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과 그림자 Sep 16. 2024

<크리스마스 파티>

7. 현우의 어린 시절

미솔은 오랜만에 집으로 내려온 현우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차렸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횡성한우 등심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큰 접시에 가지런히 놓았다. 새송이 버섯 세 개를 납작하게 편으로 썬 후 구워 고기 접시에 곁들였다. 종지에 참기름, 소금, 후추를 섞어 기름장을 만들어 접시 옆에 두었다.

 현우가 좋아하는 잡채와 호박전을 식탁에 놓았다. 그리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양지로 맛을 낸 된장찌개에 깍둑썰기한 두부와 어슷하게 썬 청양고추를 넣었다. 미솔은 찌개가 한소끔 끓기를 기다리며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 

미솔은 모델일을 하며, 대학생활을 바쁘게 보내는 아들이 자랑스럽고도 안타까웠다. 어쩌다 보는 아들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니 행복했다.


 현우와 미솔, 현우의 아버지 준혁은 오랜만에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현우가 사 온 레드 와인도 곁들이며 긴 시간 동안 저녁을 먹었다.


“레드 와인에 고기는 어울리는데 된장찌개는 좀 이상하지?”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미솔은 입을 삐죽거리며 되받아쳤다.


“식사에 와인 곁들이는 건데 뭐 어때요? 없어서 못 먹지. 그럼 제가 다 마실게요.”


미솔은 친정아버지를 돌보고 온 후 저녁상까지 차려서, 기쁜 마음과는 달리 몸은 지쳐서 어지러웠다. 식탁 의자에 앉을 때 머리가 핑 돌고 이 침침했다.


“당신 부모님들은 내 아빠랑 비슷한 나이인데도 어쩜 그렇게 건강하셔?

두 분은 건강하게 잘 사시니까 더 바랄 게 없어.. 우리 아빠는 정말 손이 많이 가.

정리 정돈은 그렇게 철저히 하는 분이 식사는 왜 제대로 챙길 줄을 몰라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나 몰라.”

미솔은 피로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고 나서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


준혁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평소대로  말했다.


“우리 집안은 장수하는 대신 자손이 귀하잖아. 우리 부모님은 하나씩 태어나던 자식이 둘이나 태어나서 형이 죽었다고 생각하셔.”


아버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현우를 보면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상냥했던 형이 환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열 살짜리가 크면 얼마나 크고 잘 생기면 얼마나 잘 생겼을까?”

미솔은 어떤 때는 의문스러워하며 질문하기도 했다.


현우는 어릴 때, 아버지의 네 살 많은 형이 어린 아버지를 껴안고 술 취한 할아버지가 모는 경운기를 피하려는 모습을 상상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아버지의 형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로 바뀌면서 자신이 경운기에 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싹하면서도 슬퍼 눈물이 났었다.


아버지는 현우가 형이랑 닮아서인지 현우에게  태어나서 고맙다고 자주 말했다.

특히 부서에서 회식하고 술에 취해서 온 날에는 현우에게 매우 사랑한다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


“현우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


아버지는 울면서 현우를 안고 기도하듯이 속삭였다. 마치 형이 자신을 안았던 것처럼...

현우는 부모님의 애틋하고 각별한 감정이 담긴 눈빛에 익숙했다.

아버지는 집에 오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았다 현우는 아버지의 시선과 같은 시선을 받은 때가 있었다. 애정이 담긴 눈빛들...

선우 작가와 진서의 눈빛이었다.


                                                                                *


현우는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뛰어놀았고, 포켓몬스터를 좋아했다.

키는 반에서 제일 컸다. 그래서 항상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로 취급받았다. 현우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꾸 나이보다 큰 아이로 취급하는데 익숙해졌다. 현우는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최대한 말수를 줄여 의젓해 보이려고 했다. 사실 현우는 12월생이라 반아이들 중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생일이 빠른 똘똘한 반아이들에 비해서 수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낮았다.

현우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얼굴이 작았다. 외모 때문에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눈에 띄었다.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현우에게 자주 질문을 했다. 현우는 한 번은 질문에 대답 못해서 인물값 못한다는 비난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현우는 망신을 안 당하려고 최대한 조용하게 있었다. 특히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학교에 간 후에 말이 없고 얌전해진 현우에 대해서 미솔은 고민이 무척 많았다.

외동아들이 공부에 크게 흥미를 못 느끼고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현우의 미래를 생각하면 미솔은  답답하고 불안했다. 그렇다고 현우는 반항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미솔은 현우가 고등학고 1학년 되었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다녔다.


"제 밥그릇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제 갈 길 찾아가더라고요."

대부분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이런 말을 하며 미솔을 안심시켜 주었다.


현우는 어머니가 습관처럼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는 모습에 점점 무감각해졌다. 어머니가 자신을 걱정하다 아프거나 쓰러질까 무서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솔은 말로만 걱정된다고 할 뿐이었다. 현우를 야단치거나 닦달하지 하지 않았다.


미솔은 현우가 자신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여러 번 느꼈다. 현우는 미솔이 뭐라고 말해도 건성으로 네네 대답만 했다. 현우는 지적받은 것을 고치지 않았다. 언제인가 미솔이 현우에게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글을 써 보라고 했다. 현우는 하겠다고 말만 할 뿐 한 달이 되어도 써 오지 않았다.


미솔은 자신이 막연한 주문을 했다고 생각이 들어 현우에게 종합장을 사주었다. 줄이 없는 스프링 연습장이었는데 세로로 넘기게 되어 있었다. 현우는 종합장을 좋아해서 의사, 선생님, 공무원 등 수시로 꿈을 바꿔 적어 놓았다.

어느 순간부터 글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금방 금방 종합장 한 권을 다 썼다.

미솔은 그런 현우에게 불만은 있었지만, 야단치지도 않았다. 수시로 바뀌는 마음을 부모가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종합장을 여러 권 그리면서, 현우의 그림 실력은 점점 늘어갔다.

미솔의 걱정이 멈춘 것은 현우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중간고사가 끝났을 쯤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현우가 미술을 전공하면 어떻겠냐고 미솔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현우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미솔에게 칭찬을 많이 했다.

현우가 다녔던 학교에는 미술반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미술반은 꽤 전통이 깊고 진학률도 높은 편이었다.

 현우는 그 당시 진로에 대해 별 고민도 없었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막연하게 대학은 어떻게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술 선생님의 제안은 현우에게 미술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구체적인 희망을 갖게 했다.


 현우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처럼 원주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되기로 장래 희망을 정했었다. 어릴 때 종합장에서 하고 싶은 꿈들을 쓰고 그리다 얻은 결론이었다. 지방직 공무원이 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학년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이 진로 계획에 대해 물었을 때, 생각대로 대답했다.

담임 선생님은 황당해하며 현우에게 팩트 폭격을 했다. 아마도 현우를 자극해서 더 공부를 열심히 시키려고 그랬으리라. 선생님은 현우같이 악착함이 없는 학생의 심리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충고했다.


"시청 공무원이 애 이름이니? 노력을 해야지, 노력을.

지금 성적으로는 어림없어. 딱 중간이네. 앞으로도 15등, 뒤로도 15등.

공무원이 되려면 2, 3등은 해야지. 어떻게 할 거니? 공부 계획은 있어?"


현우는 공무원이 되는 꿈을 담임 선생님과 상담 후 바로 접었다. 뭔가 꿈꾸는 게 어리석어 보였기 때문이다.

한 번씩 마음속의 꿈이 있던 자리가 비어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다.


“꿈이란 게 그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우는 다시 다른 꿈을 꾸려해도 잘되지 않았다. 수학 때문에 마음에 꿈이 있던 자리를 채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현우는 공부를 하기는 했다. 영어나 언어, 사회, 역사 쪽 공부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하지만, 수학은 아무리 공부를 하려고 해도 공부 자체가 되지 않았다. 현우는  숫자 계산은 밝았는데, 그게 다였다.

현우는 수학을 공부할 때는 거의 집합만 공부했다. 제일 쉽고 공부하기가 수월해서였다. 2차 방정식으로만 넘어가도 교과서를 펼쳐 보기가 싫었다. 현우는 결국 수학을 반영하지 않는 학과를 입시에서 지원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래서, 미술 선생이 구원의 손길을 펼쳤을 때, 현우는 손을 꽉 잡았다.


                                                                                *


미술 선생은 1학년 학생들의 과제물들 중 현우의 작품에 확 시선이 잡혔다. 색감이 훌륭했다. 현우는 번트 엄버와 울트라 마린 색과 두 색을 혼합해서 만든 짙은 그레이를 그라이데이션 해서 산들과 산의 선들을 표현했다. 미술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색들이었다. 미술 선생님은 현우를 엄청 칭찬했다. 그녀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선생이었고, 학생들에 대한 편애가 심했다. 한번 잘 보이면 1년이 편하지만 밉보이면 그녀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행인 것은 미술 교과가 1학년 때만 편성되었다. 미대를  진학할 학생들 빼고는 학년이 올라가서는 그녀와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러나 현우에게 미술선생님은 정말 감사한 분이었다.


현우는 더 이상 공부도 못하면서 꿈까지 없는 학생이 아니었다. 미술로 취업해서 돈벌이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미솔도 아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현우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기만 하면, 미래가 불투명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미솔은 미술 선생님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 미솔은 미술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공부로 진학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현우가 외동아들이라서 충분히 감당할 만했다. 지방 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이 빠듯하지만, 미솔이 부업을 하면 되었다.


 현우는 미술반에 들어가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그릴 대상을 관찰해야 했다. 대상이 놓인 배경도 꼼꼼히 살펴봐야 했다. 그 공간을 비치는 빛과 빛이 비치는 형상에서 생기는 어둠도 관찰해야 했다. 현우는 대부분 의미 없이 사라지던 자신의 시간들이 통조림처럼 가공되어 그림들로 남아 있는 것을 경험했다. 뿌듯함과 자존감이 현우의 마음에서 자라났다. 현우는 더 이상 꿈이 없는 진공 상태의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심히 노력하는 현우의 그림 실력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


"축하해. 현우야, 서울에 있는 K대학에 합격했어. 우리 미술반은 원주시의 자랑이야."


미술 선생님은 미술반 학생들이 서울에 있는 미술대학에 5명이나 합격했을 때,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매년 한두 명만 서울로 보냈던 미술반에 경사가 난 것이다.

현우가 합격했던 해, K미대의 입시 문제가 우연히 미술 선생님이 다뤘던 주제와 일치했었다. [고양잇과 동물과 필기도구]란 주제였는데, 미술 선생님은 고양잇과 동물들을 유난히 좋아해 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고양잇과 동물들 습작을 반복적으로 연습시켰었다. 미술 선생님은 혹시 같은 학교에서 입시를 볼 때 비슷한 그림을 그릴 것을 대비했다. 미술반 학생들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단서들을 찾아내는 작업까지 병행했었다. 미술반원들은 입시 시험장에서 각자 다양한 고양잇과 동물들을 연필, 볼펜, 만년필, 붓, 마우스, 노트북 컴퓨터 자판 등의 필기도구들과 연결시켜 기가 막히게 그려냈다. 정말 운이 좋았다.


 현우는 만년필에 잉크가 새어 나와 사자로 변신하는 이미지를 그렸다. 그가 좋아하는 울트라 마린 색을 잉크색으로 깔고, 생생하게 사자로 변하는 그림을 그렸다. 현우의 그림은 열정적인 미술선생님의 2년에 걸친 무수한 반복 훈련과 연상 훈련의 결과로 매우 훌륭했다. 합격생 한 명의 아버지는 원주 중앙로에 미술반 합격생 전원의 이름들이 담긴 대입합격 축하 플래카드까지 매달았다. 입시요강 때문에 다른 미대들에 지원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이루어낸 쾌거였다.


                                                                                      *


시외버스를 타고 동서울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현우는 어머니와 지하철을 타고 K대 입구역에서 내렸다.

서울은 매우 번화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머니랑 합격한 대학 주변을 돌아볼 때, 현우는 수능 공부하느라 외운 "점입가경"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학교는  마음에 들었다. 대학 안에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현우와 미솔은 호수를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호수의 물빛이 에메랄드 빛으로 보였던 것은 행복감 때문이었을까? 현우는 학교를 다니면서는 호수의 물빛이 처음처럼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남회색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현우는 호수 주변 벤치에 앉아 어머니와 서울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솔은 학비는 보내줄 수는 있지만, 생활비까지 지원하기에는 좀 빠듯하다고 했다. 미솔은 친구가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외할머니께서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그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이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돌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우는 어머니가 무리해서 병이 날까 봐 두려워 아르바이트는 그만두라고 말하면서 , 생활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현우는 어른이란 만사에 돈을 계산해야 하는 존재라는 현실에 한 대 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다. 피터팬이 왜 영원히 네버랜드에 머물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3월이 돼서 새 학기를 시작하자마자 현우는 의외로 쉽게 아르바이트자리를 구했다.

새로 일하는 장소는 학교 뒷문 쪽에 있는 [아프리칸] 카페였다. 카페주인은 외모가 멋진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야 손님이 한 명이라도 더 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현우는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카페의 유리창에 붙어 있는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K대생 우대"란 글도 눈에 쏙 들어왔다. 현우는 면접을 보자마자 일하게 되었다.


현우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3일 뒤,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봄날, 꽃샘추위로 얼굴에 닿는 바람이 차갑고 손이 시린 날, 카페 문이 열리며 깡마르고 머리가 긴, 크고 맑은 눈이 반짝이는 손님이 들어왔다.

이전 06화 <크리스마스 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