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보는 자리가 움직인 것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것,
바라보기에 나에게로 들어오는 것.
풍경이라 불리는, 내 눈에 들어온 모든 공간에
나를 세워두는 것을 우리는 관조라고 한다.
멀리, 넓게, 다 담아보려는 의지로
시선을 한 곳이 아닌, 허공에 머무르게 하는 작용.
관조의 작용은
보는데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데 볼 수 있는 마력을 생성시킨다.
눈에는 산이 담기지만
관조의 눈에는 삶이 담기고
눈에는 하늘이 담기지만
관조의 눈에는 세상이 담기는,
관조의 눈은 바로 심상(心象)이다.
감각으로 보는 현상이며 이전 경험이 형상화되는 작용이다.
바삐 움직이던 다리와 집착했던 시선을 멈추는 행위는
마음의 시력으로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나의 심상(心象)을 열어준다.
이렇게
심상(心象)은 심상(心想, 마음의 생각)으로 진화된다.
보는데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일체(一體)의 경험은
나와 세상이 하나됨을 의미하며
비로소 나를 중심에 두고 우주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일체(一切)의 작용이다.
이것이
초.연.(超然)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