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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음식에서
더운 김이 빠져나가 듯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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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덜떨어진 귀는 아무 소리나 받아내고

내 촐싹맞은 혀는 감각에만 반응하고

내 흐리멍텅한 눈은 보이는 대로만 바라보니

내, 나를 고쳐써야 할 터인데...


내 버릇된 것들의 고집에

내 나를 비워버리는 쪽이 한결 수월할 듯하니...


더운 음식에서 더운 김이 빠져나가 듯

지난 시간 뜨겁게 달궈진 온기마저 흐르게 두자.


내 정신의 즙을 몽땅 짜버리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정신으로 감당하기 벅찬 세상에 대한 책임 때문이고

내 마음의 요동을 다 빼버리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마음으로 인간군상들을 담기에 역겨울 정도로 버겁기 때문이고

내 지성의 파편들을 모두 뽑아내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지성으로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난해하기 때문이며

내 신념의 줄기들을 온전히 바치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신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꼴불견들 때문이리라.


나는 세상에 위탁된 존재다.

그러니 오늘부로 두손 두발 들고

나를 위탁한 존재로부터

맑은 영혼의 세정을, 세척을,

그렇게 이제

'영혼의 세례식'을 치러야겠다.


이쯤 정리가 되니 더 이상

내 주장, 내 의견 관철시킬 것이 없다.

내 이야기 좀 들어주소 붙잡고 할 말도 없다.

남을 설득할, 거래할, 협상할 그 무엇도 없다.

넘어야 할 산도 없고 발에 채일까 두려운 걸림돌도 없다.


잊고 싶은 기억도, 떠올리고 싶은 그리움도, 만들고 싶은 추억도

불과 어느 시점까지 존재했던 그 모든 것을 내보낸 지금,

다시 찾고 싶지도, 미련두고 싶지도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그 어떤 설명도 할 수가 없다.


애써 설명할 능숙도 없을 뿐더러

설명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성의 기능조차 흘려 보낸지라

거죽만 남은 나는,

이제서야 세례를 마쳤다는 말 외엔 더 할 말이 없다.


내 소리를 거둬내니

세상의 소리도 제 맘대로 날 거쳐 통과할 뿐 내 안에 남지 않고,

더 이상 소통이 소리의 진통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소리는 가야할 곳을 향해 그저 통로로만 날 스친다.


거죽 속의 비워진 곳을

무엇으로 채워넣을지에 대해서도 애쓸 필요는 없겠다.

이대로 비워둘 리 없는,

날 위탁한 주체가 알아서 채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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