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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May 09. 2023

EP.17 숨 쉬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어?

- 마스크와 클라이밍

내가 운동을 처음 시작한 건 2022년 2월. 코로나가 전 세계를 무섭게 잠식할 그 시점이었다. 마스크 없이는 어디를 나갈 수도 없고 웬만하면 실외 활동을 자제하던 시절. 왜 하필 나는 그 시점에 운동을 시작한 것일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이 운동에 대한 기초 상식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시작한 나였기에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KF94 마스크를 쓰고 갔다. 사실 처음에는 이 마스크가 내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었다. 숨이 차기 전에 홀드에서 떨어지니 마스크는 그냥 내 쌩얼을 가리기 위한 용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실력이 늘고 운동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마스크가 걸리적거리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다 보면 호흡이 거칠어지는데 마스크 때문에 호흡이 되지 않아 도대체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운동 중간 마스크를 던져 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것만 벗으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고수는 장비 발을 탓하지 않지만 운동을 못하는 초보의 마음엔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정부 규정상 마스크 없이는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마스크는 나의 안전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전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가 아니던가? 나만 코로나에 걸리면 다행이지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민폐를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문화 시민이었다. 그렇기에 운동을 하면서 혼절을 할 것 같을 때에도 KF94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S야,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왜요?”

“마스크 때문에. 숨을 못 쉬겠어.”

“어? 언니 여태 94 마스크 끼고 운동했어요? 전 그래서 비말마스크 끼고 운동해요.”

“아...”     


S의 말을 듣고 암장 사람들을 둘러보니 94 마스크를 끼고 운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비말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사실임에 틀림없고 이로써 나의 무식함은 또 한 번 증명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마스크를 착용하고 운동하는지 확인만 했더라면 덜 고생했을 텐데.. 나는 왜 다른 사람들이 마스크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냐?      


그렇게 다음날 나는 비말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와! 이런 신세계가 있는데 나만 몰랐다니 비말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하니 신기하게도 쉬어지지 않던 호흡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잘되니 안 되던 동작이 될 것 같고 완등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팍팍 들기 시작했다. 나 갑자기 운동 엄청 잘하게 되는 것 아니야? 응. 아니야.     


비말 마스크의 효력은 딱 일주일뿐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누군가 말했었다지. 나는 누구보다 완벽한 인간의 D.N.A를 장착한 사람. 그러므로 나는 누구보다 비말 마스크에 빠르게 적응했고 운동이 잘 될 것 같은 기분 역시 금방 사그라들었음은 물론 호흡은 다시 쉬기 힘들어졌다. 아 야속한 마스크여..     


거기다 더 슬퍼진 일은 이제 더는 KF94 마스크를 끼고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과거의 나는 어떻게 이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했었을 것이었던가? 실수라도 KF94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가게 되면 그날 운동은 거의 공쳤다고 보면 될 정도로 나는 운동을 하지 못했다. 왜 사람이 성장하지 못하고 퇴화하는가? 나라는 인간 참으로 신기하다.     


그렇게 마스크와 운동을 한지도 어느덧 일 년이 넘은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19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전같이 무서운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 마스크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닌 권고사항! 아직도 집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만 더 이상 운동을 할 때는 마스크를 끼지 않는다.      


처음 마스크를 벗고 운동한 그날 내 코와 입에 이렇게 많은 숨이 들어올 수 있음에 놀랐다. 숨이 이렇게 잘 쉬어지는 거였다니.. 하지만 이번엔 운동이 더 잘 되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미 경험해 봐서 알잖아? 이것도 적응되면 다 똑같아진다는 거?     


그리고 더더욱 놀랐던 건 암장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렇다. 운동을 시작한 직후부터 계속 마스크를 쓰고 운동했기에 나는 암장 사람들과 일주일에 다섯 번을 보고도 그 얼굴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눈만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살아오다가 직접 마주한 얼굴들은 한동안 꽤나 나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아마 그들도 그랬겠지?     


이제 다시는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하지도 못할 것 같다. 마스크를 끼고 운동을 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닌 내 몸을 혹사시키는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코로나19 같은 괴팍한 전염병이 다시 돌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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