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클림트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참 우연한 기회였다. 과거 우리나라 사회와 정치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혁명,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무렵, 혁명의 모티브가 베토벤의 삶을 통해 볼 수 있어서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다. 고전주의 시대에 그 전까지 음악가에 대한 평가와 대우는 왕과 귀족들을 위한 보조적 역할에 불과했다. 하지만 베토벤을 통해 음악가의 위치가 한 단계 격상되었고 음악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한 인간이 시련과 어려움을 부딪혀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큰 감동과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한 인간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같은 정신을 공유한 화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클림트였다. 클림트가 그렸던 “베토벤 프리즈”라는 작품을 통해 큰 감동을 받고 클림트라는 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존의 체재에 반대하는 새로운 물결이 시대적 대세였던 근대의 유럽에서 정치나 사회문제뿐 아니라 철학과 예술에 있어서도 기존의 구세력에 반대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당시 회화 사조를 거부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인식의 변화를 이끈 빈 분리파 운동과 클림트가 빈 분리파의 수장임을 보면서 그의 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알게 된 작품이 “키스”였다.
키스라는 작품을 과학교사의 눈으로 볼 때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일단 키스라는 작품을 그리는 시대와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 세기말 비엔나라는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비엔나라는 도시는 다양한 학문들이 생성되고 각계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교류하고 소통하던 때였다. 그래서 다른 영역의 학문들을 서로 공유하고 영향을 받아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 융합적 환경이 구축되었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사람들의 히스테리 증상의 원인을 성적 욕망에 있다고 보았다. 성적 욕망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을 때 불안 증상이 나타나고 이런 영향이 신체에까지 나타났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는 성적 욕망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런 부분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체계화시켰고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새롭게 개척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클림트였다. 그 당시만 해도 미술에서 인간의 욕망을 회화로 표현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클림트는 당시 생각했던 프레임을 뛰어넘어 과감하게 작품 안에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그 작품들을 보면서 영향을 받고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그 시작이 프로이트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키스라는 작품에서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옷에 있는 문양이다. 남자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옷에 있는 문양을 잘 보면 나에게 익숙한 모양을 볼 수 있다. 바로 사람의 “세포” 모양이다. 남자의 정자를 표현한 긴 사각형 모양, 여자의 난자를 표현한 동그란 모양이 실제로 20세기 초 당시에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한 세포생물학,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상피세포 모양을 클림트가 알고 있었다고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당시 화가들의 사조였던 빛에 따라 변화는 인상의 주관적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집중했을 때 클림트는 장식의 화려함을 세포생물학의 지식을 참고하여 표현했다는 점이 새롭게 와 닿았다.
또 한 사람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과학을 개척한 에릭 캔델이다. 기억에 대한 분자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은 ‘통찰의 시대’라는 책을 통해 미술 작품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인간의 뇌를 치밀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자신의 고향, 비엔나를 중심으로 꽃 피운 화가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을 분석하고 신경과학과 연결시켰다. 미술작품을 통해 경험하는 감동이 어디서 오는지 신경과학적 분석은 참 새롭고 재미있었다. 추상 미술은 왜 성공했는가? 생각해보면, 감상자들의 감정을 흔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뇌과학의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바라본다. 학습은 ‘신경회로의 연결 부위의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기억을 형성한다고 본다. 즉 기억은 뉴런과 뉴런의 연결점인 시냅스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미술 작품을 통한 시각정보는 이전 기억을 통해 대상을 지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화가가 제공하는 이미지를 형태, 색, 빛으로 환원하고 감상자는 자신이 가진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상자들마다 독특한 경험을 근거로 다양한 해석과 생각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에릭 캔델은 과학과 인문/예술 분야를 융합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렇듯 미술작품을 통해 미술과 심리학의 만남, 미술과 세포생물학의 만남, 미술과 뇌과학의 만남을 보면서 키스라는 작품을 다양한 측면에서 느낄 수 있어서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대가 갈수록 전문화되고 분업화되면서 점점 자기 영역 안에 갇혀버린 현대사회에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고 영향을 주고받아 발전했던 세기말 비엔나의 환경이 부럽기도 하다.
요즘 학교에서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올해 연세대 면접형 질문에 창의융합형 인재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활동과 노력을 했는지, 앞으로 대학에 진학해서 어떤 노력을 계획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교사로서 학생들을 앞으로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혹시 그 해답이 '클림트의 키스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