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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을 아는 사슴 Jul 26. 2023

with ~ ING

1.

여름이 찾아오고 내가 가장 자주 하는 행동은 밤에 운동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신체를 단련해야 한다는 압박 아닌 강박이 생겨서 하루에 한 번 이상 바깥을 의무적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낮에 집에서 자주 먹고 자주 휴식하며 에너지를 비축한 후 밤에 에너지를 발산해 내는 식이다.

이번 여름은 여느 여름과는 다르다. 코로나라는 존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한 여름밤은 가만히 서 있어도 찰나 같은 바람을 가끔씩만 만나게 되는 때이다. 선풍기를 틀고 널찍한 옷차림으로 누워도 더워서 잠이 잘 오지 않는 때이기도 하다. 심하게 피로하기도 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열대야라고 부르는 날들 말이다. 그런 때에도 나를 포함한 이들은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린 채 열심히 걷고 달린다. 실제로 집 앞 공원에는 코로나의 공포가 무색하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만의 속도로 묵묵히 동그라미 코스를 돌고 있었다.

자취방으로 내려온 오늘은 오랜만에 코스 없는 여름밤의 운동을 하고자 했다. 나이키 러닝 클럽 어플을 켜고 3 2 1 시작! 소리에 맞춰 만과 호기롭게 거리에 나섰다. 우리는 지금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 엄연히 운동을 하러 나온 것이므로, 손가락만 살짝 걸친 채로 우리는 각자의 거리를 유지하고 걷기로 한다. 야외 운동에서 팔짱이나, 어깨가 붙어있거나, 신경이 쓰일 만큼 사적이고 중요한 이야기는 금물이다. 우리는 정직하고 일정하게 걷고자 했다. 지나치게 꾸물대거나 진을 치고 쉬었다간 나이키 선생님이 GPS로 추적하는 나의 움직임이 한 점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당히 어둡지만 위험하지는 않고, 인적은 드물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길을 찾아 걸었다. 거리의 술 집은 여전히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그 안은 텅 비어있었고, 유흥을 즐기러 왔을 거리의 사람들도 어딘가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 걸어 다니고 있었다.

시원한 자취방 에어컨 밑에서 정수리를 얼려가며 앉아있다가, 후덥지근한 밤공기를 덥석 물어버린 살짝 경솔한 내가 말했다.


" 저기까지만 걷고 그다음에 뛰자! "


만은 처음엔 당황스러운 듯 보이더니 이내 "그래볼까" 하고 묵묵히 내 걸음을 따라왔다.

거리를 휘저으며 힘차게 걷다 보니 만과 나의 숨이 금방 차올랐다. 이제 슬슬 뛰자고 한 저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도저히 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위에 지쳐 긴팔 티셔츠를 겨드랑이까지 걷어 올리고 이젠 바지까지 주춤대며 걷어 올리는 날 보며 만이 말한다.


" 너 지금 냇가 가는 사람 같아. 근데 진짜 달릴 수 있어? 지금 날씨에 그게 가능해?"


" 말도 안 되지?.. 그치?... 걷는 게 어디야. 못 달려 못 달려"


이 대화를 나누던 여름밤은 여전히 31도. 체감 기온은 36도였다.

저번 달까지만 해도 일회용 마스크를 끼고 다니던 나는 다시 코로나가 심각해졌다는 소식에 kf80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전보다 숨이 2배, 3배로 빨리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뛰기로 한 저기 아래. 그러니까 저기 아래 박물관 광장에 도착해서도 우리는 뛸 수 없었다. 아예 박물관 근처도 갈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박물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도 완전히 통제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많이 흔들리긴 했지만 달리기를 하려는 나의  마음과 의지 따위는 상관도 없었다.

마치 너무 달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사람들처럼, 그리고 목적 달성을 실패한 드림팀 멤버들처럼 만과 나는 밤 10시에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둘은 애꿎은 마스크 겉면만 만지작만지작거렸다.


" 진짜 이 시대가 언제쯤 끝날까. 내가 올해 2월에 마스크 사려고 줄 서서 기다린 적 있었잖아. 방학인데 아침 일찍 일어나가지고. 결국 내 앞에서 끊겨서 마스크 사지도 못했던 그때. 그날 난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다? 근데 그 추웠던 때는 그럭저럭 마스크가 꽤 괜찮았어. 이게 은근 따뜻하기도 하고, 남 시선도 덜 느껴지고.. 근데 여름은 너무 힘든 것 같아. 땀 차고, 숨 막히고, 기운도 다 떨어진다니까." 이미 마스크와 이번 여름을 거의 다 보낸 내가 만에게 묻는다.


" 어떤 영국 전문가가 말하는데 안 끝날 거래. 우리는 계속 이 존재와 함께 살아가야 할 거래." 만이 나를 쑤신다.


" 말도 안 돼. 나도 들었는데 네 입으로 들으니까 더 충격적이야. 평생 마스크 쓰고 생활해야 하면 나 진짜 간호사 못할 것 같은데? 집에서 하는 일이 잘 될 거야. 프리랜서가 최고의 직업군이 될 거야.. "


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살짝 웃으며 말한다. "그러게. 이슬아 작가님 같은 사람 50명은 더 생기겠다."


만과 나의 이야기는 하찮은 인간 2명 이하는 고해성사로 끝난다. 우린 지금 지독한 형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그 형벌은 너무 거대하고 가혹하지만 딱 우리가 잘못한 만큼이라고. 정확한 각자의 죄목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그래서 누군가의 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한다. 우리 둘은 하찮아서 별 도움은 안 될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뭐라도 해보기를 다짐하며 그날의 운동은 끝이 났다.

한 여름밤의 숨이 이제는 마스크 속의 숨으로 줄어들었다. 운동을 하다 숨이 차면 뜨거운 세상 속의 공기라도 들이마실 수 있었는데, 이제는 고작 내 마스크 안의 작은 숨만이 내 입속을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그럴 땐 문득 서러웠다. 이건 마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기분이었다. 지구와 인간 사이에 말이다.  너무 내가 나만 아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사람들만 아니까, 지구가 참다못해 너도 당해봐라 하는 것 같았다.


" 그렇게 너만 생각하고 싶으면 딱 너만큼의 숨만 쉬고, 딱 너만큼의 걸음만 걷고, 딱 너만큼만 살아! 나한테 빌붙지 좀 말고!"


지구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딱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지구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입을 꾹 다물 것 같았다.


2.

2020년 올해 초인 1월 내 생일 즈음부터 마스크를 꼈다 / 그 겨울에 한 시간 동안 마스크 구매 줄도 기다려봤다 / 기다려도 못 사는 마스크는 사람들을 쉽게 싸우게도 만들었다

이때는 새벽에 드문 깨어서 확진자를 확인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 일곱 밤 중 한 밤 꼴로 꿈에 최악의 상황이 나오곤 했었다 / 그때면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곧 2월 예정이었던 병원 실습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 마스크는 5부 제라는 이름으로 2장에 3000원씩 살 수 있었다 / 꼬박꼬박 수요일엔 약국에 들러 주민증을 내밀고 마스크를 샀다

3월이 되고 1학기가 시작했지만 학교를 갈 수 없었다 / 집에서 사이버 강의를 듣고 카톡을 두들기며 팀플을 했다 / 처음 보는 교수님과 매일 잠옷 차림으로 만나며 전공을 배웠다

다른 유행병처럼 곧 사라질 것이라고 조금만 참자고 생각했다 / 경로와 원인을 알아내고 금방 치료법과 백신이 보급될 것 같았다 / 이 유행병은 종종 가십이 되어 웃음거리가 되고 차별도 되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 /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다고 했건만 역시 잘못된 정보 같았다

태양을 맞이하며 나의 마스크는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 KF가 붙은 것들은 죄다 숨이 막혀 부담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 가끔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 이 시대를 한탄하고 몇몇을 씹었다

점점 집 안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 집에서 운동하고 기타 치고 밥 해 먹고 등등 여러 가지를 해냈다

하지만 집 안이냐 밖이냐를 선택하라면 당장 뛰쳐나갈 것 같았다 / 누군가가 뼈 빠지게 노력해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암울한 상태로 6개월이 지나고 점점 생활 반경에 제한이 생겼다 / 지인은 누군가의 집에서만 만났고 오자마자 손발을 빡빡 씻겼다

배달 음식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축하하고 위로하고 격려했다 / 물론 그 시간 속에서도 꽤 자주 웃었고 즐거운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 고려해야 할 요소가 여러 개 늘어났다 / 그건 이제 시간 돈 여유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 되었다


중요한 것의 수가 너무 늘어난다면 우리는 곧 멀어질 것 같았다 / 안 멀어지려면 아이러니하게 지금은 멀어져야 한다고 했다


너무너무 사랑해서 너무너무 헤어진다는 말이 이제 이해가 갔다.


3.

위의 두 글을 쓴 지 2년이 지났다. 코로나19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보다 공격적으로 변했다. 내 미래가 어떠지도 모르고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이토록 문학적인 감상을 남겼다. 그전까지는 먼발치에서 바이러스의 종말만을 간절히 기도했으며 지금도 물론 형체도 없는 이 바이러스 녀석을 앞장서서 부수지는 못하지만, 바로 그 옆에서 커지지 않게 하고 있다. 주사약 '렘데시베르'를 놓기 위해 환자 팔을 걷어올리거나, 인상을 듬뿍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라게브리오'라는 알약을 12시간 간격으로 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순수한 내 의지는 아니다. 자원해서 코로나 병동에 가고 싶다고 한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의지가 없었다고 해서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2년 사이에 나도 코로나에 걸리고 자가격리를 1주간 한 경험이 있지만, 나 같은 청년이 걸린 유행병 정도로는 대학병원 입원까지 할 수 없었다. 지역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의 코로나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만' 걸린 사람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도' 걸린 사람인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다시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치명적이지만 누구에게는 무탈한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노화와 면역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이 바이러스의 근원지와 확산자에 대해 비난을 꽂고 있을 시간에, 분명히 그 같은 시간에, 누군가는 파란 가운과 페이스 쉴드와 헤어캡과 N95 마스크, 그리고 두 겹의 장갑을 장전하고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간다.

만지고 있지만 제대로 만질 수 없고, 맡고 있지만 제대로 맡을 수 없고, 보고 있지만 제대로 볼 수 없는 방 안에서 에서 문 밖의 사람은 문 안의 사람을 최대한 나아지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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