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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을 아는 사슴 Jul 26. 2023

바른자세 맑은정신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미생'에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 내 알고리즘에 걸리는 순간에는 몇 번이고 이를 되감아봤다. 대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면서 화면 속 인물은 몇 번이고 계단을 타오른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싶은 몸은 자신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몸은 한 단어로 'compact'라고 해야겠다. 작은 것에 많은 것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 나의 몸이면 좋겠다. 내가 자기 관리의 지침으로 여기는 모델 한혜진이 어느 방송에서 열을 띄며 말했다. '세상 아무것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어요. 일도, 사랑도, 사람도 상황도. 근데 내 맘대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내 몸이에요'라고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증명하는 그의 모습을 한참이고 곱씹어 봤다. 학생을 지나 어른이 되면 자유로운 영혼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 컸는데 알아서 하라고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질 것만 같았는데, 그의 말대로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버스 시간표도 제 맘대로 고, 일터에서의 돌발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하려는 말과 행동이 쉽게 곡해되어 타인에게 전해진다. 나에게 내 맘대로 되는 것은 글을 쓰는 내 손뿐이라 생각하는 날들도 있었다. 몸을 만드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여러 인물의 말을 들을 때는 그것에 삶의 본질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나는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을 만드는 것의 순기능을 넘어 당위성을 말하는 이들을 우러러 왔다.



우러러본 것과 그것을 실체로 옮기는 것까지는 당연히 큰 괴리가 따랐다. 노동을 하러 집 밖에 나가고, 짧은 노동 사이에 노동을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모든 음식을 액체인 듯 후루룩 삼켜버리고, 오로지 더 빠르거나 효율적인 노동만을 위한 일부의 근육들만이 발달해 왔다. 긴 노동이 끝난 후에는 스스로를 위안하는 척 눈에 보이는 아무 음식이나 집어 들었다. 이는 전혀 내 몸을 존중하지 않은 선택들의 연속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내 몸의 순간적 존중만을 위한 선택들이었다. 그런 선택들을 한 날에는 자는 내내 배가 푹푹 쑤셨다. 나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날엔 등이 아파서 엎드려 겨우 잠을 잤다면, 나쁜 음식으로 입안으로 꾸겨 넣은 날엔 배가 아파서 새우처럼 옆으로 잠을 겨우 잤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며 난 아주 조금이라도 변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기적이고 당연하게도 난 내가 가장 중요한 놈이었다. 누가 보면 지독하다 할 만큼 나는 내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내가 망가지는 꼴을 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애였다. 돌이켜보면 그런 마음으로 지난날들을 견뎌온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나의 몸과 마음을 상처 입힐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네가 감히?...'라고 한 번 두 눈을 깊게 감고, '나도 선민이가 기분 안 상하게 하려고 얼마나 조심조심하면서 잘 다뤄주려고 하는데 네까짓 게??' 하는 것이었다.



나부터 나를 잘 다뤄주려고 요즘에는 f45라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functional 45라고 딱 45분 동안만 고강도 운동을 하는 것이다. 나도 이런 운동은 처음이지만 크로스핏과 그룹 PT 사이의 어딘가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것도 f45로 몸을 만들며 일상이 활기차 보이는 두 명의 사람들을 우러러보다가 나름 거금을 투척하고 이끌리듯 등록한 운동이다. 정적이는 요가나 필라테스로만 몸을 다듬다가 이렇게나 동적인 운동을 시작하니 비로소 내 심장이 이렇게나 빨리 뛸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괴상하게 생긴 몇 개의 바벨을 들고 옆으로 펼쳤다 아래로 떨궜다 위로 쳐들었다를 반복한다. 3명이서 팀이 되어 양손을 마주 잡고 스쾃과 런지를 100개씩 하는 날에는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져 악착같이 맞잡고 숫자를 센다. 허공에 놓여 있는 로프에 발을 걸고 턱걸이를 한 개도 못하며 발만 허우적대는 내가 좀 많이 쪽팔려서 바로 다음날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몇 번의 사이클을 돌고 다시 만난 로프에서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턱걸이를 하는 내가 너무 대견해서 미치겠다. 그곳에는 괴물같이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다들 이런 힘을 숨기고 직장 생활을 조용히 하는 걸까? 이런 게 바로 슈퍼히어로가 아닐까? 하며 난 그들의 일상을 의심한다.

45분이 끝났다는 휘슬이 울리면 난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팀원에게 말한다. "와 토할 것 같고 엄마 보고 싶어요...."

그러면 그들도 백 퍼센트의 확률로 헐떡거리며 개처럼 물을 마시는 나에게 여유롭게 말한다. "수고하셨어요. 같이 하니까 저도 더 힘나요"

그 모습이 너무 부럽고 멋있어서 나는 가끔 팬미팅 모드로 한 마디 더 거든다. "너무 멋지세요... 팔뚝 좀 만져봐도 되나요"




앞으로도 compact 한 모습을 위해 더 나아가고 싶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머리도 생각도 뭐든지 다 compact 한 사람. 명징하게 직조한 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려면 꾸준히 근육도 키우고 마음도 깊여야겠지. 두고두고 사람들의 좋은 영향을 마구마구 흡수해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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