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5.
"어떻게 선생님 말이 안 들릴 수가 있어?"
이건 질문이 아니었다. 내 말이 맞다는 부르짖음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럴 수 있다'이다. 얼마든지.
"S야." 몇 번을 부르는데도 화면에 정수리만 약간 보인 채 반응이 없었다. 이성을 잃은 나에게 J가 말했다. "선생님, 렉 걸리면 선생님 말이 끊기던데 그런 거 아닐까요?" Y는 재빨리 S에게 톡을 보냈다. 'S야, 선생님이 부르시는데 안 들리니?' 제정신을 차렸을 땐 나의 추한 모습이 스물 다섯 집에 고스란히 화면으로 전송된 후였다. 흔들리던 나를 잡아준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이었다.
우리 학교는 여름방학을 마치고 2학기부터 100% 줌 수업으로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내가 오늘 아이를 의심했던 이유는 어제 옆 반 선생님 말씀 때문이었다. "글쎄, 오늘 수업하다가 우리 반 애 하나가 게임하다가 딱 걸렸잖아. 게임 소리가 다 들리더라고. 그때부터 애들 전부 마이크 켜라고 하고 수업했잖아." 속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어느 틈에 슬그머니 자리 잡은 그 말. 오늘 수업하는 동안 어딘가에 들어있던 그 말이 나도 모르게 불신하는 말과 행동으로 튀어나왔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안 하던 짓을 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질색하는 걸 알면서도 제비뽑기로 불쑥발표를 시켰다. 아이들에게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건 다른 짓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발표에 잘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6학년 아이들에겐 잔인한 방법이다. 정답을 손에 쥔 나는 또 얼마나 맞는 대답을 기다리면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을까.
국어시간에 교과서 지문을 읽고 질문을 만드는 활동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지목하여 묻고 답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발표하도록 시켰는데 평소에도 화면에 정수리만 불성실하게 비치던 몇 명이 대답은 커녕 질문 만들기도 못했다. 흐름이 끊겨 몇 분이 지체되다가 결국 한 페이지를 제대로 못 나간 채 수업이 끝났다. "오늘은 5교시, 행복한 수요일이네. 얘들아, 수고했어. 내일 만나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마무리를 했다.
줌 수업은 어렵다. 기계를 매체로 만난다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수업 도중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도 몰라 늘 불안하고 아이들 집에서 울려 퍼질 내 말과 수업 자질은 매일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다. 수업 전에 나는 책 속의 문장들을 적어 둔 것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것도 모자라서 컴퓨터 화면 아래쪽에 아예 써서 붙여 놓았다.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라.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라. 소신껏 수업을 이끌어 나가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내 말과 행동은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아이들과 나를 연결하는 것은 줌이 아니다. 믿음, 그것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