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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때 받는 특별한 선물은?

by 새벽별

오래전 남편의 유학 시절, 영국에서 살던 때였다. 덴마크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처음으로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덴마크에 가게 되었다. 생신날 아침, 남편이 정원으로 나가보자고 했다. 아, 이른 아침의 정원에는 맑고 푸른 7월의 하늘 아래, 붉은색 덴마크 국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큰 국기를 가까이 보니 신기했다.


'오늘이 생신이신데, 무슨 공휴일과 겹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대부분 나라처럼 덴마크에서도 생일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하며 즐겁게 보낸다. 특히 성인이 되는 열여덟 살과 서른 살, 마흔 살처럼 새로운 연령대가 시작되는 생일은 더욱 성대하게 축하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환갑이나 고희, 팔순 잔치와 비슷하지만, 덴마크에서는 젊은 사람들도 크게 파티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아마도 그 나이대가 갖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일은 여전히 특별하기에 의미 있는 선물을 받는다. 바로 '단네브로(Dannebrog)'라 불리는 덴마크 국기를, 가족들이 깃대에 게양해 주는 풍습이다. 빨간색 바탕에 흰색의 스칸디나비아 십자가가 그려진 단네브로는 '덴마크의 힘'을 상징한다. 주인공이 일어나기 전에 가족들이 깃대에 국기를 올리며 축하의 의미를 전한다.


시어머니 생신에도 시어버지가 국기를 달거나 우리가 방문하면 남편과 함께 게양한다. 딸이 자라면서 시아버지를 도와 축하하는 마음으로 함께 국기를 올리거나 내리기도 한다. 단네브로는 일반적인 태극기보다 크기 때문에 내릴 때는 조심히 내려 정성스럽게 접는다.


국경일을 제외하고 단네브로를 꼭 생일에만 거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졸업식이나, 결혼식, 또는 부모님의 금혼식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도 게양된다. 그리고 장례식 때는 조기로 달아 고인을 추모한다. 한국에서 국경일에만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과 달리, 덴마크에서는 이렇게 가족의 특별한 날에도 국기를 달아 그날을 더욱 빛내준다.


덴마크 주택 정원에는 대개 국기 게양대가 설치되어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누군가의 정원에 단네브로가 펄럭이면, 그 집에 기쁜 일이 있거나 혹은 장례식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축하 테이블에도 단네브로는 꼭 등장한다. 생일 케이크나 디저트 위에 작은 종이 국기를 꽂아 장식하기도 한다. 또한 생일 카드나 크리스마스 카드에 국기 스티커를 붙여 보내기도 한다.


<남편 생일에 시어머니가 만든 크림 케이크, 중앙에 작은 단네브로를 꽂았다>

덴마크인들은 종종 자신의 국가를 농담 삼아 '디스'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덴마크는 작은 나라라 길을 잃는 경우는 없어요. 그냥 한쪽 끝에서 반대쪽까지 쭉 걸어가면 돼요" 또는 발음이 어려운 덴마크어를 비꼬면서 "덴마크어는 목이 아플 때 내는 소리로 만든 거예요."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유머 뒤에는 단네브로를 통해 표현되는 순수한 자부심과 진심 어린 애국심이 있어, 더 깊은 감동을 준다. 그렇다고 자국의 문화만 우월하다고 생각해 타민족을 배척하는 '국수주의'나 '극단적 민족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게양하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릴 적에는 국경일마다 아버지가 대문 옆에 태극기를 꽂았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날이 삼일절이나 광복절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한국인의 애국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겠지만, 그 표현 방식은 많이 달라진 듯하다.


내가 태어난 날, 내가 태어난 땅에 국기를 게양한다는 것은, 나의 뿌리를 깊이 묻는 상징적 행위 같다. 한국에서도 특별한 날에 이런 선물을 받는 풍습이 있다면, 그날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경일에도 게양되지 않는 태극기를 생각하면, 그런 바람은 그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칠 것 같다. 그럼에도 태극기가 단네브로처럼 우리의 삶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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