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을 엉겁결에 만들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숙제라서. 숙제했더니 브런치에 가입되었고, 숙제로 브런치북을 발간한 사람이 바로 나다.
타고나길 계획 없이 사는 걸 즐겼다.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못할까 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남이 뭐라 하든 영향받지 않는 타입(이고 싶은 걸 수도)인 반면에 약속이나 배려, 책임 같은 단어를 철통같이 방어한다. 브런치에서 보내온 ‘브런치북 발행은 독자와의 약속입니다.‘의 ’약속‘이라는 말에 멈칫하는 이유다. 다만 기다리는 독자는 있을 리 만무해서 약속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다.(그래도 브런치북 펑크는 죄송합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라는 말을 길게 하는 중입니다.)
글쓰기도 운동과 같아서 매일 근육 어쩌고…. 에서는 찔끔 나의 게으름을 질책해 보기도 하지만 나도 매일매일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는 분들이 부럽다. 지난주 발행을 못 했다. 그래서 한 문장이라도 써보려고, 혼잣말하는 셈 치고 오늘 딸이 전세 계약한 일을 끄적여본다.
독립한 딸 둘이 함께 원룸의 꼭대기 층, 주인 세대에 살고 있었는데, 최근 원룸 건물이 통째 팔렸다. 계약기간이 12월 말인데 조금 일찍 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집을 구하러 다녔다. 전세가 많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회사 근처로 가려니, 현재보다 집은 작아지는데 돈은 더 보태야 하고 대출도 더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 내어 집을 보러 다니더니 드디어 전세금만 빼고 나머지는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고, 오늘 계약한다고 해서 부동산에 함께 다녀왔다.
대학 다닐 때 집을 구하러 다니면 자연친화적인 환경이 좋다고 했었다. 새소리 들리는 집이 좋다며 산 아래 집을 구했었던 것은 부모의 경제사정을 고려해서 월세가 저렴한 곳을 구하려고 했었나 보다. 스스로 보증금을 감당하자 자꾸 중심가로 나가고 있다.
2018년에 지었는데 3~4년 정도로 보일 만큼 깨끗했다. 부동산에서는 그 이유로 관리 직원들의 성실함을 들었다. 1층과 지하 1층은 상가가 있고 2층부터 아파트인 도시형 생활주택의 투룸이었다. 지하 3층부터는 주차장도 있어서 1실 1대가 가능했다. 방 2개에 작은 드레스룸도 있고 거실과 아일랜드식 주방도 있으니, 규모는 작지만 구조가 훌륭했다. 집은 대출도 하나도 없었고, 임대 사업 등록이 되어 있어서 보증보험도 일부지만 가입해 주니 전세금 떼이는 염려는 조금 덜었다. 하지만 보증금이 너무 비싸서 이게 말이 되는가 싶고 집 없는 젊은이들 힘들겠다 싶다. 우리 아이들 포함해서.
큰딸은 대학 입학 때부터 혼자 살아서 웬만한 일 처리를 스스로 해왔다. 오늘 보니 야무지게 궁금한 거, 이해 안 되는 거는 꼼꼼하게 물어보고, 설명을 자세히 듣고 요구사항을 말했다. 대출이 안 나올 경우를 대비하여 계약해지 조건을 명시하고, 보증 보험의 일부와 전체의 차이에 관하여 묻고, 임대인(연세가 많음)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어떤 처리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임대인의 주민등록증도 확인하고 서류도 꼼꼼히 살피고 계약을 완료했다.
나는 결혼하고 부동산이나 보험 관련 일 처리는 남편이 알아서 했다. 워낙 남편이 철두철미한 성격이라 내가 거들 손도 없거니와 필요치 않았다. 딸이 취업하고 첫 번째 임대할 때까지는 아빠가 처리해 줬고 그 후로는 혼자서 하더니 이제 제법 계약자답다. 오늘은 남편이 약속이 있어서 같이 못 갔으나 큰딸은 혼자서도 잘 해냈다. 그 모습을 보니 든든했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하나 믿고 허술하게 해도 되는 일이 없다. 몇 년 전 대한민국을 휩쓴 전세사기는 더욱 불신이 깊어지게 했다. 따져보고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사기당하고 손해 보는 세상, 망하는 세상이라 어렵다. 나 같이 잘 따지지 못하고 대놓고 의심하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은 마음 놓고 숨쉬기도 힘이 드는 세상이다.
계약을 마치고 간단히 만두와 김밥으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씩씩한 딸은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지만 집으로 가는 뒷모습을 보는 엄마 마음은 걱정이 반이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