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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30. 2021

종법 제도의 기본 정신

한국 전통문화의 저변에 흐르는 기본 원리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①  부자 상속을 위한 시스템 |


아주 먼 옛날에는 훌륭한 성인을 왕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왕의 내면은 덕이 깊은 성인과 같고, 외양은 능력이 출중한 패왕과도 같았다고 한다. 이른바 내성외왕설(內聖外王)이다. 그리고 왕은 혈연보다는 덕과 능력이 출중한 자에게 다음 왕위를 넘겼다고 한다. 기록상의 이야기라 사실인지 바람이었던 건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갑골을 통해 실체가 확인되는 상나라만 해도 전성기까지는 ‘형제, 숙부, 조카’ 등 다양한 경로로 왕위가 전해졌다. 심지어 왕후와 대신을 배출한 부족으로 왕위가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나라에 이르면 부자 세습이 정착되면서, 통치자와의 부계 혈연관계가 머냐 가까우냐를 기준으로 굳건한 신분제도를 만들고 대대로 세습하려는 종법이 만들어졌다. 

종법 질서란 쉽게 말하자면 ‘천하를 한 집안이 다스리는 것’이다. 주나라 무왕은 하늘이 자기를 선택했다고 선언했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렇게 주나라 천자는 천명을 받은 하늘의 대행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천하는 모두 천자의 소유물이 됐다. 천자는 갑자기 넓어진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친인척을 제후와 대신으로 임명하여 나라 전체를 다스렸다. 이때 천자와의 혈연적인 멀고 가까움을 따져 신분을 정해 가는 방법이 종법이다. 나아가 그와 관련된 예법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풍속과 문화를 종법의 틀에 맞추려 하였다.

종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었다. 첫째, 신분과 재산의 상속은 남성에게만 해당했다. 

둘째, ‘적과 서’를 구분했다. 올바른 종통(宗統)을 ‘적’(嫡)이라 하고 비종통을 ‘서’(庶)라 한다. 그래서 종통 아내는 정실부인인 적처(嫡妻)라 하고, 비종통 아내는 첩(妾)이라 부르며 아내가 아닌 소유물로 보았다. 정실부인이 낳은 아들은 적자(嫡子)라 하고 첩이 낳은 아들은 서자(庶子)라 하는데 신분이 한 단계 낮아졌다. 상나라에는 이러한 적서의 구분이 없었지만, 주나라는 사람의 신분과 서열을 혈연을 기준으로 세세히 나누었다. 종법은 상속을 위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상속에는 신분과 재산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분란을 만들지 않으려면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신분을 철저히 구분해야 했다. 

셋째, 가장은 집안의 왕이었다. 그래서 가장을 가군(家君)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가장은 집안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는데 가장의 지위는 적장자만 계승할 수 있었다. 적장자(嫡長子)란 정실부인이 낳은 적자들 중 장남을 말한다. 

그래서 천자의 적장자는 천자가 되고 다른 아들들은 제후가 됐다. 다시 제후의 적장자는 제후가 되고 다른 아들들은 공경대부가 됐다. 이런 식으로 천자의 친인척과 소수의 공신만이 통치계급이나 귀족이 되었다. 천자와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자들은 무지렁이 백성이 되었다. 즉, 통치자의 부계적 혈연관계로 굳건한 신분제도를 만드는 것이 종법이란 것이다. 그래서 부계 혈통을 순수하게 지키고 확실히 하기 위해 여성의 생활과 성은 더욱 통제되었다. 이 때문에 주나라의 여인들은 정치와 사회생활이 금지되고, 외간 남자와의 만남도 금지되었으며, 결혼 역시 선택할 수 없었다.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었고, 학문도 할 수 없었으며, 아들을 낳아 시어머니가 되기 전까지는 자기주장을 할 수 없었다. 주나라에서 여성이란 남자에게 종속되어 남자 가문의 대를 잇고, 남편을 내조하며, 시부모를 봉양하고, 조상의 제사를 받들기 위한 존재일 뿐이었다.           


| ②  여성은 시댁 제사를 모시기 위한 존재  |


주나라의 훌륭한 여성상은, 집 안에서 쉼 없이 살림과 가내수공업을 하고, 시부모를 잘 모시며, 아들 쑥쑥 낳고, 제사 잘 모시는 여성이었다. 때문에 주나라에서 결혼이란 남녀 간의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다. 그저 남자 집안에서 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일일 뿐이었다. 그래서 애당초 딸은 시집가 버릴 남의 자식으로 여겨졌고, 딸이 시집을 가는 날 친정 부모는 ‘이제 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훈계했다.           



| ③ 제사를 통해 종법 사상 재생산하기 |


이러한 종법 제도에서 유독 중요시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였다. 그 이유는 대략 이러했다.

종법 안에서 모든 역할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하늘에 대한 제사는 천자(天子)만이 지내며, 집안의 제사는 종자(宗子)만이 지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단순한 규칙이 종법의 원리를 단단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제사를 주관하는 종자가 누군지, 어떤 대상을 제사하며 자신과는 어떤 관계인지, 그 안에서 자신의 신분과 서열은 어떤 위치인지, 그래서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한 번에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극적인 퍼포먼스가 바로 제사였다. 그리고 뒤에서 참관하는 사람들에게도 ‘서열의 관계도’는 한눈에 전해졌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람 간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이 있으며, 가깝고 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배우고 익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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