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달리, 언제 달려들지 감이 안 잡힌다. 그래서 긴장하게 된다. 물론 반가워서 달려든다는 건 잘 안다. 그래도 나는 슈퍼 내향인이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건 반칙이지.
예전에 들개가 엉덩이를 문 적도 있다. 등산복 덕분에 다치진 않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강아지를 보면 뒷걸음질 치는 겁쟁이다.
그런데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타시텔레에는 덩치가 산만한 반려견이 있다. 털은 시커멓고, 목소리는 우렁찬 데다, 키는 내 무릎까지 온다. 심지어 농장 안팎을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반 즈음 야생 같은 존재다. 그 말인즉슨,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다는 뜻이다. 아, 인생이여. 이런 복병까지 만날 줄이야.
사건은 사장님과 팥죽을 먹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난로에 몸을 녹이면서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날씨가 워낙 살벌하게 추워서 난로 옆 자리가 아니면 죽음뿐이었다. 문제는 그 집 강아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딱 봐도 난로 근처에 누울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애지중지하는 강아지인데 무섭다고 피하는 것도 꼴불견일 테고, 그렇다고 태연한 척을 하기에는 땀이 흐른다. 집에 가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신호를 보냈다, ‘나한테 오지마.’
갑자기 종아리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의 간절한 메시지가 끝끝내 전달되지 못한 모양이다. 녀석은 내 다리에 몸을 기대어 난로의 온기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
가만, 난로를 빼앗긴 것 같은데.
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건 강아지일까 난로일까.
사장님도 있는데 왜 하필 나에게 누운 거냐고.
잠시만, 내 허벅지까지 침범했다. 아니, 거기에 턱은 왜 올리는 거야, 왜, 왜.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그래도 나를 턱받이로 쓴 건 너무하네. 동물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본다던데, 혹시 너에게 합격점 받은 걸까? 돌아가는 길에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오는 모습에 마음이 말랑말랑했다.
다음날 점심이 되었다. 근처 한식 뷔페에 가볼 참이다. 운동화 끈을 단디 묶고 길을 나서는데, 어디에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 녀석이었다. “넌 어디로 가니?” 하고 톡 쏘듯이 물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때로는 앞에서, 때로는 뒤에서, 그렇게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것도 식당 입구에서 가만히. 미안한 마음에 편의점에서 최고급 간식을 사 먹였다. 고양이 쫓아내라고 난리를 피우다가 집사가 된 아버지 영상을 본 적 있는데, 내가 그렇게 될 줄이야.
저녁 시간에도 녀석은 날 따라왔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내가 어딘가 들어가면 입구에 앉아서 고이 기다린다. 따라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나. 그런데 나 다음 순서로 오는 손님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이 강아지 여기 왜 있어. 혹시 무는 건 아니겠지. 무섭게 생겼어.” 화가 치밀었다. 저렇게 얌전한 녀석이 뭘 잘못했다고 호들갑을 떨어.
더는 못 참겠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고생한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함께 동네를 산책했다.
그는 어디에서든지 숙소를 찾아간다. 네이버가 알려주는 길 대신에 그만 아는 샛길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대부분 가로등이 없는 한적한 골목이었지만, 덕분에 달빛을 따라서 걸을 수 있었다. 햇살처럼 밝은 달빛 아래, 앞서가는 강아지와 그 뒤를 따라가는 나. 하늘에서 본다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겠지.
녀석과 세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함께 걷고 싶다.
나, 드디어 반려동물의 행복을 알았네?
[표선면 표류기 : 히피와 강아지와 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