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할 수 있는 경험이 백 가지라면

by 은손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제주 여행이 딱 그랬다. 아무 계획도 안 짰는데, 매일 잔잔한 이벤트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어떤 날은 눈이 내리고, 어떤 날은 숙소 사장님과 밥을 먹었다. 또 어떤 날에는 강아지와 함께 놀았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막상 서울에서 살아본 적 없는 그런 하루였다. 농원에서 귤을 따먹는다거나, 하늘을 보면서 오리온자리를 찾아본다거나, 눈을 뽀득뽀득 밟아본다거나.


액티비티, 맛집, 함께 할 친구는 없지만, 행복을 가득 충전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이 충만했다. 다시 생각해도 매 순간이 소중한 나날이었다.





아직도 겨울이 되면 그날이 생각난다.


눈이 내리면 장갑차가 빠르게 치우는 것만 보면서 살았는데, 며칠 동안 새하얀 상태는 처음 보니까. 난로에 주전자가 끓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를 마시는 재미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 강아지나 예뻐하지 않는 깐깐쟁이 내가, 개에게 간이며 쓸개며 다 내어주기도 했었다.


나이를 이렇게까지 먹었는데, 아직도 ‘처음’ 경험할 것이 남았다는 게 신기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선물해 봐야지. 세상에 할 수 있는 경험이 백 가지라면, 적어도 절반은 해봐야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다.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도 점점 또렷해지겠지. 물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주에서 만났던 사장님을 떠올려 본다.


몇 년 안에는

그들만치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새로움을 찾아 헤맨다.



[표선면 표류기 : 히피와 강아지와 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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