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팥죽이 알려준 행복 — 사랑하는 순간을 가까이

by 은손



“오늘 점심에 저랑 같이 팥죽 드실래요?

나무 사이로 보이는 연두색 건물에 들어오면 됩니다.

12시 30분에 만나요”


자고 일어나니, 사장님께 문자가 한 통 와 있다.


12월 22일 동짓날에 팥죽을 못 먹은 게 영 마음에 걸렸는데, 잘됐다. 사장님과 대화도 기대되는걸. 어쩌다 게스트하우스 시작했는지 꼭 여쭈어 봐야지.



오전 업무를 서둘러 정리한 후, 약속한 시간에 맞춰 달려갔다.



이 공간은 한 때 게스트하우스 카페 겸 식당이었단다. 너무 아늑해서 쿠션을 베고 한숨 자고 싶었다. 양초부터 청치마까지, 소품에 별 통일성은 없지만 조화롭다.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수십 개의 소재로 공간을 채운 걸 보니, 한두 번의 큰 행복보다 소소한 기쁨을 자주 수집하는 성향인가 보다. 이곳저곳에 게스트하우스 시절의 흔적도 남아 있다. 메뉴판, 벽에 적힌 메모, 표선면 핫플레이스 지도까지, 손님을 얼마나 알뜰살뜰히 챙겼는지 알겠다. 공간을 통해서 사장님 인생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장님은 난로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다, 카페 안에는 별다른 난방 장치가 없다. 라디에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난로가 백 번 천 번 더 따뜻하다.



자연스럽게 여기에서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는 훌륭한 배경음이 되어 주었다. 다음 순서는 차. 버튼 하나면 보글보글 다 끓여주는 티팟 주전자도 있는데, 사장님은 굳이 난로에 올렸다. 시간과 정성을 쏟으며 본인의 디저트 타임을 최대로 즐기는 것이다. 마음이 여유롭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타시텔레 시작한 지는 꽤 됐어. 배낭여행자 1세대 중에 여기 안 와본 사람 없지. 지금도 홍대 나가면 사람들이 인사해.” 어쩐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큰손이었구나. 카페와 요가원, 몽골 게르까지 — 한 공간에서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니, 처음 시작했을 때도 지금도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을 것 같다. 제주에 리트릿 마을을 일군 셈이니까. 게스트가 북적거리는 장면을 잠시 상상했다. 이렇게 자유 영혼이 모이는 숙소에서 스태프로 살아봤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사장님이 재배한 귤로 입가심했다. 한 입만 먹었는데 과즙이 팡팡 터진다. 그 자리에서 본가로 한 상자 주문했다. 직접 만든 양초도 팔고, 옷도 만들어 입는다고 하던데, 못 하는 게 뭐지. 그보다 부러운 것은 무엇이든 배우고 시도해 보는 열정이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돈이 따라왔다는 서사도 마음에 쏙 든다. 동화 속 이야기 같지만, 타시텔레에서는 현실이었다. 나도 십 년 뒤 즈음에는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장님과 팥죽 한 그릇 먹었을 뿐인데, 타시텔레 공간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불멍존, 하늘을 보면서 멍 때리는 야외 목욕탕, 먹거리를 기르는 텃밭.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활동이 가득했다. 집에만 있어도 하루가 충만할 것 같다. 사장님이 매일 행복한 비결이 바로 이거였네. 살아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좋아서 살아가는 일상을 만들어 버렸다.



사랑하는 순간을 가까이 두기


이곳 제주에서

이 간단한 진리를

다시 배운다.



[표선면 표류기 : 히피와 강아지와 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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