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나이 예순 — 인생 2막에 도전해도 될까?

by 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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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밖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해야지. 개성이 담긴 카페에 가고 싶다. 서울에서 귀촌한 사람 대부분 공간도 멋들어지게 만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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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면 카페 맛집 추천’ 키워드는 검색해 보지 않았다. 내 직감대로 새로운 보물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쓰는 방법, 네이버 지도를 확대했다가 줄이면서 나만의 잇 아이템을 찾아본다.



모드락 572, 내 픽은 바로 너. 방문자 리뷰가 50여 개뿐이지만, 어차피 지방에서는 별 의미 없다는 사실을 터득한 지 오래다. 타시텔레에서 10여분 거리였다. 오늘도 큰 강아지와 함께 길을 나섰다.





저기에 보이는 연노랑색 건물이 맞나. 색감은 좋은데, 간판 폰트가 애매하다. 세련된 외관과 어울리지 않는 글씨체 때문에 어딘가 조악해 보였다. 과연 제대로 고른 걸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나무 문을 밀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귀에서 따라라라란 러브하우스 배경 음악이 들렸다. 마치 산장처럼 아늑했던 내부. 로스팅 기계에 각종 도구만 보아도 분명 커피에 진심인 사람이다. 벽에는 사진과 예술 작품이 걸려 있다. 오늘도 찍기에 성공했다는 안도감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수고했다, 나야.



인기가 많을 법도 한데, 왜 손님이 나밖에 없지? 덕분에 사장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곳에서 산 지 얼마나 오래되었다고 했더라. 서울에서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가정을 위해서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혼자 제주 여행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표선면에 카페를 열게 되었다. 커피 판매는 물론이고, 시인을 모시고 낭독 이벤트에 라이브 공연까지 기획했다니, 사장님이 얼마나 문화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심지어 천장의 벽화도 직접 그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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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강아지 때문에 고민이 많다. 외국에 사는 딸을 만나러 가려고 해도 강아지 때문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동네 반려견 유치원을 찾아 헤매다가 직접 창업을 결심했다. “예순이 넘었는데 새 꿈을 가져도 될까?” 스스로 수없이 의심했지만, 반려견 유치원장이 된 모습을 상상하면 힘이 난다고. 지금도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새삼 부러웠다.


사장님처럼 열정이 넘치는 어른이 되어야지.


모드락 572 사장님과 타시텔레 사장님은 한 번 빠져들면 물고 뜯고 질릴 때까지 판다는 공통점이 있다. 커피가 좋아서 일본에서 직접 배워온다거나, 명상이 좋아서 수련 공간까지 만들어 버리는 식이다. 본인이 감당 가능한 선도 안다. 모드락 572 사장님은 카페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원두를 납품하거나 팔면서 커피 내주는 정도가 적당하단다. 타시텔레 사장님 역시 사건 사고가 많은 게스트하우스보다 독채 펜션이 본인에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의 바운더리를 아는 것, 행복의 또 다른 비밀이었다.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나.”


겨우 몇 시간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나에게도 사장님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되었나 보다. 심지어 엄마에게 선물할 겸 원두를 사겠다고 했더니, 아무렇지 않게 절반 가격에 내주었다. 저녁도 사주고 싶은데, 속이 안 좋아서 커피 패키지로 대신한다는 말과 함께. 우연히 들린 가게에서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줄이야. 역시 여행 운빨 하나는 기가 막히다. 사장님은 건강하실까? 정말 반려견 유치원을 시작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꼭, 다시 갈 테다.



[표선면 표류기 : 히피와 강아지와 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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