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주 3일은 반드시 출근하세요”
대표의 말이 끝나자마자 군밤 한 대라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망했다. 어차피 주 5일 출근하고 있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할 수밖에 없는 건 천지 차이다.
언제든 원하는 곳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부로 내 꿈이 다 날아갔다.
안 돼, 이렇게 기회를 날려 버릴 순 없어.
막차라도 타자.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낮에는 출근해야 하니 놀 시간도 없다. 그래도 오름을 보면서 일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생전 처음 낯선 도시에서 보내는 워케이션,
어쩌면 휴가보다 더 짜릿할 수도?
여행 경력 초창기에는 도시 중심에 있는 숙소를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매력 지수가 전부다. 숙소 덕분에 예상치 못한 동네를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타시텔레도 기대된다. ‘당신의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 지기를’ 의미의 티베트식 이름이라니, 어떤 사람이 운영하고 있을까. 안 그래도 히피 사이에서는 유명한 숙소라던데. 주소가 표선, 뭐였더라?
하필이면 여행 하루 전, 폭설이 쏟아져 버렸다.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백이면 백, 눈이 쌓여서 거기까지 절대 못 간다고 난리다.
장롱면허를 빨리 탈출하든가 해야지, 나 원 참.
하는 수 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원래대로라면 창 밖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오늘은 검은색뿐이다. 어둑어둑해서 안 보이는 걸까. 아니면 애초에 볼 게 없는 걸까. 어쨌든 거의 다 와간다. 버스 정류장부터 숙소까지는 택시를 불렀다.
“아가씨,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숙소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 주소 맞아요?”
택시 아저씨 목소리에 겨우 일어났다. 그나저나 차 전조등에 비친 저 나무, 실화인가. 주소는 맞는데, 숙소가 온 데 간 데 없다. 나 혹시 사기당한 건가.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불안해 죽겠다. 일단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간판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면 샛길이 나와요.
쭉 들어오세요.
첫 번째 건물이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다행이다, 잘 찾아왔네.
기사 아저씨도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훌훌 사라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아니, 혼자일까.
달과 별, 나무를 벗 삼아서 걷고 있는걸.
제주에서는 야밤에 걸어도 이상하리만치 편하다.
사장님은 숙소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접 뜬 빨간색 털모자, 허리까지 내려온 긴 황톳빛 뽀글 머리, 칭칭 감은 하늘색 목도리까지, 얼핏 봐도 패션에 관심이 많다. 근심 걱정 하나도 없는 저 평온한 얼굴. 본인 세계관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흐른다.
“눈길에 고생 많았어요.
일단 푹 쉬세요.
숙소는 내일 더 자세히 안내해 줄게요.”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 숙소 체크인을 해냈다. 짐도 팽개친 채, 이불부터 덮고 누웠다. 방은 따뜻했고,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표선면 표류기 : 히피와 강아지와 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