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먀니 Oct 14. 2024

김철수

 철수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입학 첫날.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느닷없이 지우개 따먹기를 하자며 말을 걸어오던 게 그 애에 관한 첫 기억이다. 실력과 자신감이 비례하진 않았다. 내가 지우개를 몽땅 따갔으므로 한동안은 필기할 때 무척 신중해야 했을 거다. 


 딱 봐도 크고 까맣고 손놀림이 서툴렀다.  어쩔 수 없이 지우개가 쪼들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매번 “한 판만 더”를 외치던 지우개 호구와 여태까지 친구로 지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떤 우정은 그토록 사행성 짙게 시작되기도 했다. 


 처음 전원이 이뤄졌을 당시엔 그래서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철수는 내가 가는 모 대학 병원에서 11년째 주차 요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처음부터 주차 쪽이었던 건 아니고,  원래는 보안 용역이었으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어찌어찌 주차장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한다. 법정 근로 시간을 준수하게 된 대신 월급이 팍 줄었다며 정작 당사자는 몹시 슬퍼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우린 계속 만나게 됐다. 더 이상 따먹을 지우개가 없어진 지금도. 교실에서 병원으로 장소만 옮겨서.


 다니는 병원 주차장에 친구가 일해서 좋은 점을 꼽자면 첫째. 주차가 쉽다. 당연한 말이어도 자리 찾기 힘든 대학 병원 주차장에선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왜 인스타 툰 중에 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주인공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유명한 짤이 있는데, 딱 그거 같다.


 “내가 아직 신입 선녀라 로또 일등 같은 큰 소원은 무리지만. 어딜 가든 주차 자리 한 칸은 꼭 있기를….” 


 비록 선녀는 아니지만, 내 진료일엔 덩달아 철수의 톡도 바빠진다. 당일 입출차 대수부터 시작해 혼잡 상황에 대비한 실시간 대처 안내까지. 내게 병원 주차장 정보를 계속해서 전송하기 위함이다. 대놓고 자리를 맡아주지만 못할 뿐 완전 인간 맵핵이 따로 없다. 어디 그뿐인가. 덕분에 무사히 주차를 마친 내가 차에서 내리면 어디선가 휙 하고 나타나 외래 병동까지 척척 데려다준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난 염증성 장질환 센터 앞에 서 있다. 임무를 마친 철수가 쿨하게 뒤돌아서며 말한다.


  “끝나면 연락해라.”


 이 사적인 원스톱 서비스를 가리켜 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거기 병원 병원장도 아마 오빠처럼 의전은 못 받을 거야.”


 난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다니는 병원에 친구가 있어 좋은 점, 둘째. 심심하지 않다. 아무리 다녀도 병원이란 장소는 어쩔 수 없이 소진되기 마련. 진료가 끝난 뒤엔 철수의 교대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충전의 짧은 티타임을 갖는다. 병원 안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수상할 만큼 사람도 적고 한적해서 맘 놓고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우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각자 할 일을 하며 드문드문 공동의 대화를 이어간다. 


 “아, 요즘 좌약은 좀 잘 넣냐?”


 퍼뜩 떠올랐다는 듯한 철수의 물음에 내가 대답한다. 


 “어. 난… 좌약 마스터가 됐단다. 이제 맘만 먹으면 항문에 네 머리도 넣을 수 있어.”

 “…헛소리 좀 하지 마.”

 “진짠데. 보여줘?”

 “….” 


 철수는 침묵함으로써 내 위험한 초대를 에둘러 거절한다. 영악한 놈. 그 밖에도 안부를 빙자한 여러 바보 같은 행위와 말장난들이 우릴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간다. 어쩔 땐 우정의 ‘우’가 ‘벗 우友’가 아닌 ‘어리석을 우愚’자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우리 대화 수준은 여전히 중학교 교실에 머물러 있다.  


 슬슬 교대 시간이 다가오자 철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고하란 인사를 건넨 뒤 나도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막간의 회동을 끝내고 각자의 생활로 흩어지는 우리 얼굴엔 어쩐지 희미한 미소가 묻어있다. 알아채는 순간 화들짝 놀라 떼어버릴 겨울철 보푸라기 같은 미소다.


 좋은 점, 세 번째. 세계에 안착하게 된다. 난치병 질환자가 되고 가장 막막했던 점은 시한과 기능에 대한 손실이었다. 낫지 않는 병을 고작 억제하기 위해 평생 병원엘 다녀야 한다니. 그땐 사람들이 건네는 흔한 “쾌차하세요.”란 인사에도 타격감이 들었다. 쾌차 못 해요. 쾌차할 수 없다는데요. 병원이란 내게 사어, 침잠, 선고 같은 낱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와중에 철수가 내게 강제로 떠먹여 준 TMI들은 정말 말 그대로 몰라도 그만인 것들뿐이었다.  가령 내원객도 돈만 내면 직원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는 팁이라든가 외래 병동에서 원내 카페까지의 최단 거리 이동 루트. 어느 원외 약국 약이 제일 싱싱하고 안 싱싱한가에 관한 개인적 견해들. 아니, 약국이 무슨 활어집도 아니고. 평소 약이라곤 소화제밖에 안 먹는 애가 무슨 근거로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나 싶었다. 그럼 싱싱한 약국의 약은 약이 막 펄떡펄떡 뛰어다니니? 내가 비꼬려고 묻자 철수는 그렇다고 했다. … 이거 약 하나?


 그렇게 때론 어이없어하고 때론 솔깃해하며 “김철수”란 대명사와 함께 총 세 번의 계절을 났다. 그는 여전히 지우는 데 소질이 없고 따라서 그의 세계는 무자비할 만큼 볼륨감으로만 가득하다. 덕분에 나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병원엔 피와 병과 주삿바늘만 있는 게 아니라고. 작은 특혜과 평화로운 카페와 약이 펄떡펄떡 싱싱한 카페도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세계는 단정보단 덧칠과 데생이라는 걸. 결과적으론 철수의 오지랖들이 나를 한 세계에 안착시켰다.


 「오늘 중식 고등어 묵은지 조림임.」


 돌아온 검사 날. 현관을 나서기 전부터 철수의 톡이 와 있었다. 오늘 직원 식당 식단으로 내 최애 메뉴가 나왔으니 밥 먹지 말고 오라는 메시지였다. 피검사 당일은 원래 공복인데… 바보. 우리 우정은 상대에 대한 얼마간의 배려와 무지로 이루어져 있다. 


  검사 결과에 대한 걱정보단 고등어조림에 대한 설렘을 안고 가볍게 현관을 나선다. 그렇게 생선 비린내와 피 비린내와 깨끗한 교류 사이에서 오늘 하루도 점차 무르익어갈 전망이다.   


본문에 언급된 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