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좋은 기억이라는 번뇌

그냥 저냥 요가수트라

by 최필준

Smrti 기억

오늘은 오랜만에 술을 마셨습니다.

좋은 고기를 샀고요. 향탄도 쓰고 그릴도 썼습니다. 저도 나름 고기 굽는데 진심인 편이라 기술도 보탰고요. 좋은 사람들도 있었고, 좋아하는 와일드 터키도 있었습니다.

분명 좋은 추억이 되겠죠.

친애하는 인씨가 진토닉도 줬습니다. 고마웠지만 한입만 마셨습니다. 진토닉은 저에게는 지나치게 좋은 기억이라 한입만 마셨습니다.

맛이 없어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냥 지나치게 좋았던 기억이 이제는 지나치고 싶은 기억이 되어 그런거니 이해하십시오.

기억이라는게 그렇습니다. 좋았던 기억이 반전되기도 하고, 지금 나의 상태에 따라 기억이 변하기도 합니다.

저에게 제일 안좋았던 기억은 고등학교 때입니다. 수학여행 이었을겁니다. 전교생 앞에서 노래를 했습니다. 알리샤 키스의 if i ain't got you를 불렀습니다.

저는 미리 키를 세개만 낮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통 남성의 성대로는 소화가 불가능한 노래입니다. 하지만 반주가 시작되고 키가 바뀌지 않은걸 느꼈습니다. 낮춰 달라고 다시 요청했는데 그냥 하라는겁니다. 하.. 진짜 법이 없었으면 했습니디.

결국 무대는 개판이 났고, 빡친 저는 도중에 그냥 퇴장해버렸고, 적반하장으로 사회자는 제 욕을 해댔고, 저는 한달 동안 후드를 뒤집어쓰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별명은 some people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나름 유명한 딴따라였습니다. 고등학교때 저랑 노래방을 가기 위해 비용을 전부 지불한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꼭 그런건 아닌데, 그냥 그렇게 말해주는 고마운 친구였습니다.그 친구가 좋아하던 노래라서 잘 부르고 싶었는데 참 슬펐습니다.

그 뒤로 무대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무서웠으니까요.

그런데 전역하고 대학교에 가니 무대에서 발표를 하라는 겁니다. 교양과목 강당 무대에 섰는데 손과 발이 덜덜 떨렸습니다. 뒤로는 기억도 안납니다.

고등학교때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발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름 극복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발표관련 도서를 다 꺼내서 읽었습니다. 연습도 하고, 조별과제 발표는 다 맡아서 한 것 같습니다. 발표는 어찌저찌 해결이 됐습니다.

근데 무대에서 노래는 부를수 있을까? 그래서 대학교 4학년이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취직이고 뭐고 모르겠고 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쨌든 무대에 섰고, 다시 극도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때 제가 무대공포를 이기가 위해 한 노력이 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전 팔굽혀 펴기 100개, 그리고 호흡 고르기.

지금은 발표도 노래도 별로 떨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 어릴적 기억이 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불편한 기억은 극복하면 기술이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조금 힘들고 불편합니다.

다행히 저는 그 때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기술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진토닉은 못 마십니다.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기억만큼 지나치게 좋았던 기억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진토닉 한잔을 다 마시는 날이 오면 우리도 한 잔 하십시다.

If i ain't g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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