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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Nov 01. 2020

After Sunset

여운을 남기는 끝맺음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정신없었던 올 한 해도 벌써 11월이 되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바뀐 것이라고는 코로나19가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 적응한 것뿐인데 계절은 어느덧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 앞에 서있다.


이렇게 겨울의 문턱이 되어 단풍이 든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질 채비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느덧 해도 무척 짧아져서 이제는 6시가 되기도 전인데도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운동을 가는 길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퇴근하기도 전에 해가 넘어 가 있다.


하루 중에 지금 같은 겨울의 문턱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시간은 아마 해질녘일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는 넘어갔고 붉은빛의 여운이 남아 노을을 만드는 그 시간이다.


과학적으로 노을이 생기는 이유, 다시 말해 하늘이 낮에는 푸른색이었다가 해질 녘에는 붉은색으로 변하는 이유는 낮에는 햇빛이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짧아서 파장이 짧은 푸른빛이 산란되면서 하늘이 파란색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햇빛이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길어져 파장이 긴 붉은색 빛만 남아 하늘이 붉은색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2017년 12월 29일 LA 베니스 비치에서 본 노을




난 노을 진 하늘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아침에 하늘을 봤을 때 맑고 반짝반짝한 날이면 저녁에는 과연 오늘은 어떤 노을이 연출될까 무척 기대가 된다. 그런 날은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한강에 가거나 그럴 시간이 없으면 회사 건물 옥상에라도 올라가서 노을 진 하늘을 바라 본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다.


노을이 멋진 날 하늘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어떤 것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런 기분이 불러 일으키는 평소에는 애써 생각하려하지 않았던 모든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기억들까지.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알쓸신잡 2에서 유시민 작가가 노을에 대해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근데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는데 붉은 노을이 남아 있는 거야. 우리 삶의 끝이 저러면 참 좋겠다. 끝나는 건 끝나는 건데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지만 딱 끝나고 나서 약간의 여운이 남잖아요. 잊혀지는 것도 어쩔 수 없지. 근데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내 삶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 동안이라도 내 삶이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여운을 좀 남기면 그게 상당히 괜찮은 끝이 아닐까?"


해가 지고 난 이후에도 한 동안은 빛의 여운이 남아있다. 2020년 6월 22일 한강에서 본 노을.




해가 넘어 가고 밤이 오듯이 어차피 모든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내 삶에도, 내가 하는 일에도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지막 순간은 언젠가는 찾아 오게 마련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여운이나 울림을 주는 사람이었을까? 그러한 여운이나 울림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나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었을까?


맑고 반짝반짝한 날의 해질녘에는 노을도 아름답듯이 그건 결국 내가 얼마나 충실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뒷 모습이 멋진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지금까지 본 노을 중 제일 신기한 노을었던 2016년 8월 3일 몽생미쉘에서 본 보라색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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