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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 TO가 없는데, 전무를 들이신다고요? 그것도 외부 인사를?"
NK 부동산 인사팀장이 놀라 물었다.
"걱정 마, 전무 임기 1년 동안만 굴리고, 해고시킬 거야. 그동안 넥스노트를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지게 만들고."
이심찬은 한 사람 인생과 한 기업의 운명을 망치는 일을 휴지통에 종이 뭉치를 던지는 것처럼 말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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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몸에 땀이 나고, 머리가 어질어질거렸다. 큰일이 닥치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밤잠을 설쳤고, 어정쩡한 정신으로 출근했다. 점심이 되기 전, 리사인드 계정으로 이직 제안서가 도착했다. NK 부동산이었다.
연봉은 현재에서 30%가 높았다. 성과급을 포함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리텐션이 몇으로 유지되고 있죠, 라선?
'이직하면 오리엔탈펠리체드래곤힐을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30% 단축된다. 옮기지 않아야 할 이유가-'
"라선?"
웨일이 탁자를 쳤고, 라선이 현실로 떨어졌다.
"아, 죄송해요. 머리에 열이 나서..."
"가서 좀 쉬어요. 자주 열나는 머리잖아요."
세안나가 걱정 같이 않은 걱정을 해줬다.
"괜찮아요. 뭘 물어보셨죠?"
"리텐션 비율이요."
"현재 70%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CC(carrying capacity)가 커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지나치게 이상적이네요. 다들 너무 낙관적으로 보지 말고, 항상 더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해요."
웨일은 모두에게 주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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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이 스카웃 제의를 받았어."
"어디로부터?"
뜻밖에 소식에 허니맨이 물었다.
"NK 부동산, 부대표 이심찬이 직접 컨택했어. 프롭테크 포럼에서"
"어떻게 안 거야?"
"둘이 수상해서 엿들었어."
웨일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프라이버시 침해로 신고 당해"
"이심찬이 우리 직원 괴롭힐까 봐 들은 거야. 질 나쁘다는 소문 있잖아."
이게 배려인가, 오지랖인가, 허니맨은 헷갈렸다.
"20%는 더 불렀겠지."
"라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은 내부에 없어."
"그게 문제야. 성장이 아니라, 유지를 하기 위해서라도 라선이 필요해. 적어도 매각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판다고?
허니맨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잘 되고 있으니, 팔아야지. 잘 안 되고 있을 땐 누구도 사지 않을 거고, 조금 더 몸집이 커졌을 땐 살 수 있을 만큼 자금이 많은 곳을 찾기 어려울 거야. 우리가 넥스노트를 인수한 이유가 더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였잖아, 슬슬 움직여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핵심 인력인 라선까지 이탈하게 되면, 리스크는 더 커진다. 라선의 업계 평판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헤드헌터들에게서 들었다. 누가, 얼마나, 주목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라선의 이직을 무언의 '신호'로 여길 수 있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네."
허니맨이 웨일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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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본다고 합격하는 게 아니다. 김칫국을 마시는지도 모른다. 일단 가보자. 그럼 더 알게 되겠지.
NK 부동산은 NK 사옥인 블루 팩토리 안에 있었다. 1층은 시민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라선은 춤추는 책들의 도시에 도착한 도마뱀처럼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엘리베이터로 갔다. 약속 장소는 3층이었다.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아래로 NK 직원들이 보였다. IT 계열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대기업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여유롭게 웃고 있는 직원들을 보자, 라선은 주눅이 들었다.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자기소개서만 5번 떨어진 곳이었다. 비록 계열사이긴 해도 NK 부동산도 NK는 NK였다.
면접 장소에 도착해, 메일을 보냈던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곧 담당자가 나와 회의실로 함께 들어갔다.
"부대표님한테 들었습니다. 아주 유능하시다고요. 커리어를 테크니컬 라이터로 시작하셨네요."
"네, "
순간 라선은 테크니컬 라이터 경력을 괜히 적었나 생각했나. 쉽게 잘리는 직무라는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그새 잊고 있었다.
"반갑네요. 저도 테크니컬 라이터였어요. 지금은 인사 담당자지만. 조직적으로 글 쓰는 건 어딜 가나 도움이 되죠. 특히 NK에서는 라이터 대우가 업계 최상이죠."
IT 회사에서 전문 테크니컬 라이팅 팀을 운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회사 중에 하나가 NK였다. NK에 몇 번이나 지원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NK 부동산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마침맞게 담당자가 테크니컬 라이터 출신이었다. 게다가 지금 제안받은 자리는 라이팅 실무자가 아니라, 상위 관리직이었다. 라선은 다른 역량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어제 연습했던 예상 질문과 예상 답변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차분하게 대답하자.
"좋아요. 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네?"
"합격하셨어요."
인사 담당자가 미소지었다.
"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면접에서 한 대답은 3번의 '네'가 전부였다. '네'가 무슨 여우누이의 세 가지 주머니도 아니고, 요술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진행이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심찬이 들어왔다.
"이렇게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분을 임원으로 모시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혹시나 다른 회사에 뺏기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거든요."
넉살 좋게 심찬이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심찬은 라선의 말을 자르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오신 김에 둘러 보고 가시겠어요. 회사 라운지에서 화이트 생강 쿠키도 드셔보세요. 지금 시즌 메뉴로 팔고 있어요."
도무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얼떨결에 심찬을 따라 라운지로 간 라선은 필리펑카의 군것질 공장에 온 어린애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심찬이 화이트 생강 쿠키를 주었고, 라선은 쿠키를 입에 넣었다.
지나치게 달았다.
조건도, 쿠키도.
심찬이 주문한 커피를 받고 빨대를 물었을 때, 재빨리 라선이 말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오늘은 그냥 면접을 보러 온 거라서."
급한 마음에 실언이 튀어나왔다. 어느 회사도 간보러 면접을 본 지원자를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심찬은 언짢은 기색이 없었다.
"네, 그렇지만 자리를 언제까지나 비워둘 순 없어서 이번 주 중으로는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죄책감마저 들 정도로, 심찬이 정중하게 말했다.
라선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로 갔다.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라선을 불렀다.
"라선, 너 아프다며, 오늘 연차 아니었어?"
"고론? 그게 볼 일이 있어서요. 언니야말로 왜 여기 있어요?"
"나는 그냥...그런데 너 설마..."
고론이 수상하게 라선을 바라보았다.
"이직...하려고?"
라선도 수상하게 고른을 바라보았다.
"설마, 언니도 이직...하려고?"
"아냐, 아냐 난 절대 넥스노트 안 나가. 아버지가 오라 그래도, 버틸 거야. 내가 얼마나 캐릭터 공들였는데. 어떻게 나가!"
"아버지?"
고론은 순간 당황하더니,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버지들은 항상 대기업 다니라고 하시잖아! 하하하."
고롭답지 않게 지나치게 쾌활한 웃음소리를 냈다. 라선은 이곳에서 마주친 사람이 고론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흉기를 든다고 해도 고론은 무해한 존재일 것이다.
"그렇죠. 대기업 좋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라선 산책할래, 여기 산책로 되게 좋아."
어색하게 어그러진 자신의 기분을 눈치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냥 산책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산책 제안은 고마웠다. 요새통 밤중에 오한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쉼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블루 팩토리 옆에는 러닝 트랙과 자전거 도로가 함께 조성된 산책로가 있었다. 도로를 따라 서있는 나무들이 바람을 맞고 아직 남아 있는 낙엽을 떨어뜨렸다.
"너랑 웨일이 포럼에 간 날, 심찬이가 널 봤다고 했어. 널 엄청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그래서 걱정 됐어. 정말 이직하려고 온 거 아니지?"
고론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심찬이? 부대표님이랑 친하세요?"
고론은 또 입을 막았다.
"그냥 어릴 때 본 사이. 친한 건 아니고. 애가 고집도 세고, 영악한 구석이 있어서, 멀리 해야 해야 한다고, 들었어. 그러니 너도 조심해. 걔가 보기엔 멀쩡해도 속에는 구렁이, 여우, 낙타, 조랑말 다 들어있어."
구렁이와 여우까지는 이해되었지만, 낙타와 조랑말은 왜 들어가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고론이 이렇게까지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건 처음 보았다. 매번 틱틱거리는 세안나도 힙하고 멋지다면서 거의 흠모했다.
"사실, 오늘 면접 보러 온 거 맞아요. 부대표님이 먼저 보자고 하셨거든요."
"그래? 그래도 걸리는데..."
고론은 진심으로 라선을 걱정했다.
"구름다리도 두드려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회사 상황이라든가."
"검색해 보니, 나쁜 곳은 아닌 것 같던데요. NK 계열사에 잡플랜잇(JOB plan !t) 평점도 3.9예요."
"그건 그냥 후기고, 내 말은 재무제표나 그런 걸 보라는 뜻이었어."
"비상장 기업인데, 공시한 게 있어요?"
"NK 부동산은 작은 아버지네가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20이상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어서, 의무 공시 대상이야. 다 특수 관계인이거든."
라선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고론이 경영 전문 지식을 말하고 있는 것과 NK 부동산 소유주를 '작은 아버지네'라고 부른 것에.
"고론, 언니 NK의 딸이에요?"
고론은 이번에 라선의 입을 막았다.
"꺅, 안 돼. 어디 가서 말하지 마. 라선. 안 그래도 오늘 아빠한테 남의 사업장에서 행패 부리지 말고, NK에서 일하라고 했단 말이야. 물론 행패는 오늘 면접에서 부렸어. 아까 말했듯이 나 넥스노트 나갈 생각 없으니까!"
마지막 말을 거의 외치듯 고론이 말했다. 물론 고론의 기준에서 '외침'이었다.
"걱정 마세요. 저 회사에 친구 없어요. 일 얘기 말곤 안 하잖아요."
"그래, 고마워."
고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꼭 알아봐!"
"감사해요. 내일 봐요!"
라선은 산책을 끝내고 고론과 헤어져
고론의 말대로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었다. 이직은 마음 가는 대로, 느낌 오는 대로 정할 문제가 아니니.
그런데 재무제표라, 그런 걸 지금 당장 공부해서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바둑판같은 숫자를 볼 생각에 라선은 어지러웠다. 그때 라선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재무제표를 잘 볼 수밖에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