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富럽지 않게, 나 富끄럽지 않게 41화

by 설다람

"초율 잘 지내니?"

"어, 라선 언니 저야 잘 지내죠. 언니는?"

"그게 상담 좀 받을 수 있을까."

"비즈니스 관련이면, 컨설팅비 받아야 하는데."

장난스럽게 초율이 말했다.

"얼마 정도 해? 2개년 치 재무제표 분석을 의뢰하려고. 상담은 그걸 바탕으로 받고 싶어."

"어...갑자기? 어느 회사를요?"

느닷없는 요청에 초율의 대답이 반박자 늦게 나왔다.

"NK 부동산. 이직 제안이 왔는데 조금 꺼림칙해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NK 계열사라고 해도 언제라도 망할 수 있는 거잖아."

"그건 무슨 회사든 그렇죠."

"그래서 비용은 어떻게 돼?"

"흐음, 그냥 해줄게요. 기업 공부한다는 셈 치고."

"아냐, 네가 이런 일을 직업으로 하기 위해 투자한 돈과 시간이 있는데 함부로 그냥 받을 수 없어. 알려줘. 보내줄게."

라선은 단호하게 말했다.

친구네 식당에 가서 음식값을 계산하지 않고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사 친구에게 수술을 받고 나서 치료비를 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답을 더 하면 더 했지. 그러나 사람들은 유난히도 조언하는 것으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의 말은 무료로 갈취하려고 든다.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보통 시간당 100 받아요. 그런데 이건 사전 검토 자료도 꽤 되니, 50은 더 들 것 같아요."

생각했던 것보다 셌다. 훨씬, 훨씬. 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물기둥처럼 뿜어 올랐지만, 티 내지 않았다. 사람이 그래도 한 말이 있는데...

"그래 계좌로 보내줄게."

"고마워요, 아는 사람 중에 밥이 아니라, 진짜 컨설팅비 준 사람 언니뿐이에요!"

"아냐, 나야 믿고 부탁할 사람 있어서 다행이지."

진심을 말하면서도 피 같은 돈이 나간다는 생각에, 심장이 꽉 짜지는 것 같았다. 남은 생이 달린 선택일 텐데, 신중해서 나쁠 건 없었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라선과 눈이 마주친 고론은 과잉 미소를 지었다.

"라선, 좋은 아침!"

"어, 아, 네. 좋은 아침이에요. 고론."

어색한 인사 덕분에 라선도 어색하게 인사했다. 고론이 가끔 나사 빠진 모습을 보여주기에, 그나마 덜 인위적으로 보였다.

업무를 시작하자.

라선은 현재 임장고고의 UX를 조금 더 최적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기능은 갖춰졌고, 사용자들의 불만도 없지만, 사용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감을 발굴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게 이것이라고 보여주어야 한다. 언제나,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것이라도, 개선의 여지는 있었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보다 조금 더 비싼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몇 가지 아이디어와 몇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가, 휴지통에 던졌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지워지지 않는 미열이 머리를 맴돌고 있었다. 정신의 초점을 모으기 위해 타이머를 켰다. 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타이머를 작동하고 4분 49초가 되었을 때, 알림이 왔다. 웨일이 보낸 알림이었다. 내용을 읽은 라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웨일과 허니맨이 기다리고 있었다. 라선이 먼저 도착했고, 뒤이어 노트북을 든 세안나가 문을 닫고 들어왔다. 소집된 사람은 회사 내부에서 지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일종의 주주총회였다.

"지난 포럼에서 저희의 존재를 빅테크와 투자사, 언론에 각인시켰어요. M&A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혼자 내릴 결정은 아니니까, 공유 차 불렀어요."

지금 넥스노트가 팔린다면, 라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최소한 300억 원에 매각한다는 조건에 한해서. 웨일이야, 지분이 많으니 100억으로 평가받아도, 부족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라선에게는 100억에서 떨어질 몫은 오리엔탈펠리체드래곤힐을 매수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지금처럼 이른 시기에 제 값을 받을 수 있을까.

"난 찬성, 지금보다 더 커지면, 어디에서도 함부로 사갈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은데. 백방이 부자고고 인수할 때도, 꽤 힘들어다면서요. 지금 백방이 인수에 나설 리 만무하고, 그럼 아필이 유일한데, 아필은 백방보다 여유롭지 않을 것 같아."

세안나가 회의적으로 찬성했다.

"투자사도 접촉 중에 있어요."

나쁜 예감이 들었다.

"사모펀드는 아니죠?"

라선이 물었다.

"따로 제외하진 않았어요."

사모펀드에게는 매각 차익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인수의 제1목적이다. 이건 제 값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인원이 감축되고, 조직문화는 뒤틀릴 것이다. 백방이 넥스테이트를 인수한 건 양반처럼 느껴질 정도로 혹독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소배와 반호를 데려온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짓을 당하게 둔다고? 안 된다고 막고 싶었지만, 자신도 이미 NK 부동산과 넥스노트를 저울질하는 중이었다. 소영웅심을 발휘하기엔 가슴이 찔렸다. 진짜로 이곳을 뜰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발언 하나하나가 위선의 제스처로 기억될 수 있다. 라선은 입을 다물었다.

"뭐, 값만 제대로 쳐주면 어디든 상관없지."

세안나는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약은 곳은 제외하죠. 뒤통수는 하나니까."

웨일을 보며, 허니맨이 말했다.

"물론이에요. 그럼 다른 사항이 생기면 또 공유할게요. 이상 다른 논의 사항 있을까요?"

"없습니다."

세안나가 노트북을 닫았다. 허니맨도 양손을 백기처럼 들었다.

"팔리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잘 나가고 있어야 해요."

한 번 더 웨일이 당부했다.

회의는 짧게 끝났다.

1초 지켰던 집중력이 다시 혼란스럽게 엉켰다.

메롱한 기분으로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 배를 채우기 위해 도시락을 들고 라운지로 갔다. 라운지에는 소배와 반호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넥스테이트에서 익숙했던 풍경이 이곳에서도 재생되고 있었다. 오늘의 다른 점은 헬렌이었다. 냉장고 안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잔반을 없애기 위해 도시락을 싸 온 헬렌은 반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들 말이 없는 터라, 음식물 씹는 소리 말고는 조용했다.

적막을 깬 건, 반호였다.

"이번에 대출 조회 UX 만들면서 느낀 건데, 라선이 정말 NDS(Nexnote Design System) 네이밍을 잘한 것 같아요. 명확해서, 헷갈릴 일이 없어요. 고론이 오늘 라선 칭찬을 그렇게 하더라고요. 새삼 다시 배웠어요."

못 살아. 고론...

"작업은 반호랑 소배가 다 했죠."

어정쩡하게 라선이 웃었다.

"네이밍 규칙 없으면 시작도 못했어요."

소배가 반호의 칭찬을 거들었다.

"아, NDS 네이밍을 라선이 했었어요?"

시금치를 젓가락으로 들면서 헬렌이 물었다.

"네, 넥스테이트에서 라선이 주도해서 완성했어요."

"그냥 넥스테이트에 원래부터 있는 걸 옮겨다 온 건 줄 알았는데. 라선이 가서 만든 거였군요. 자랑 좀 하지, 라선, 이제 알았잖아요."

"별 것도 아닌 걸요."

"별 것 아니긴, 역시 금의환향한 이유가 다 있었네요."

헬렌이 사람 좋게 웃었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스팟라이트를 받은 라선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라선은 도시락을 통을 씻어다 책상 선반 위에 두고 말렸다. 그 옆에는 토월이 퇴사할 때 선물로 주었던 세 장의 카드가 있었다. 첫 번째 카드에 그려진 백룡이 구름을 안고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퇴사하는 중에는 마음이 이래저래 꼬여 있어 뜻을 물을 생각도 없었는데. 지금은 무엇이라도 확실한 게 있었으면 했다.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무속을 판다던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 걸 믿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퇴근 때가 되어서 라선은 홍두깨에 펴 발려진 기분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기운을 내게 해줄 위로음식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판매대를 한 바퀴 돌았다. 적절한 가격에 적절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적절한 소비를 해야 한다. 충동 소비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세 바퀴를 더 돌았다. 마침내 라선이 선택한 위로 음식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이었다. 참았다는 만족감으로 속이 조금 찼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 그게 마음이 편했다.

가벼운 주머니로 집에 도착했을 때, 초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하루종일 봤어요. 덕분에 공부 한 번 제대로 했네요."

"근무 시간에 그래도 돼?"

"기업 가치 분석하는 게 일이니, 논 건 아니죠."

초율이 월급 루팡처럼 장난스럽게 말했다.

"NK 부동산, NK의 아픈 손가락이던데요."

"아파?"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라선은 설명을 들었다.

"성장성이 보이지 않는데, 자기 동생이 가지고 있으니, 마지못해 내버려 두고 있는 모양이에요. 지난 1년 동안 영업이익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고, 매출 자체도 줄어들고 있는데, 내부적으로 체질 개선은 전혀 진행 안 되었어요. NK의 플랫폼 안에 있다는 이점으로 초기 시장은 빠르게 석권했지만 백방이나, 아필 같은 후발 주자에게 밀려나가, 광고에서 나오던 수익이 거의 반토막 났어요. 운영 자금이 부족해서 단기 차입금을 늘렸지만, 혁신적인 전환이 없는 이상, 자본만 갉아먹을 거예요. 앱 시장에서 부자고고와 3위를 다투고 있는데, 그마저도 완전히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요. 새로 치고 올라오는 회사가 있거든요."

"어디?"

"언니네 회사요."

초율의 대답에 특유의 밝은 미소가 섞여 있었다.

고등학교 운동회 때 샀던 포켓단 티셔츠에 목을 집어넣은 라선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이 상황에서 이심찬이 라선을 기용하려는 게 진심에서 나온 선택이라면, 그건 내부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뜻일 테다. 그러나 고론이 말한 대로 이번 제안이 진심이 아니라 계략에서 나온 것이라면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근로 계약서 상 전무의 임기는 1년이었다. 넥스노트로 넘어올 때 이용만 하고 버려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엔 진짜 팽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을 넥스노트에서 빼내오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 있다. 역량이 뛰어난 후배를 짓밟으려는 것처럼, 넥스노트를 깔아뭉개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건 NK 부동산이 다시 초기의 지배력을 회복하는 것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설마 그 정도도 모르는 걸까.

"조금 더 찾아보니, NK 부동산을 NK 인베스트먼츠에 흡수시킬 수도 있다는 조각 정보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계륵일 거예요. 다들 자산 관리에 뛰어들고 있는 중에, 부동산을 빼고 갈 수도 없는데, 가지고 있는 패는 최약체이니."

NK 회장도 꽤 골 아프겠네. 로스터에 빈칸이라도 있으면 새로운 로켓몬이라도 잡을 텐데.

침몰하는 배를 따라 사망의 골짜기로 갈 뻔한 라선은 초율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남 걱정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인 '재벌 회장님' 걱정이었다.

"고마워, 초율 하마터면 물귀신 될 뻔했어. 너무 좋은 기회처럼 보이긴 하더라. 헛물 제대로 켰네"

"아니에요, 그 정도 제안을 아무나 받지 않죠. 언니가 어느 정도 네임드라는 뜻이에요!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잡으세요. 마스터볼로!"

초율이 로켓몬 트레이너처럼 외쳤다.

"꼭 그럴게!"

라선도 힘차게 대답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마스터볼로 내가 잡혀야 하는 거 아닌가. 저녁을 간단히 노네임드 시리얼로 대신하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던 라선은 포켓단 티를 입고 있는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포켓단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언제나 시합 중에 다 죽어갈 정도로 로켓몬을 부리다가, 생생한 녀석으로 선수 교체를 시키는 악랄한 녀석이었다. 비겁하지만 언제나 승리로 이끄는 방식이었다.

순간 라선은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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