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육아. 화내지 않는 부모가 아이를 살린다.

조금 더 관대한 부모가 되기로 했습니다.

by 다니엘라


요즘 우리 부부의 육아 화두는
‘화내지 않음’이다.

우리 부부는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육아를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여기서 화내지 않음이란,

아이들과 지내며
1. 짜증을 동반한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2. 아이가 잘못했을 때 화내지 않아도 그 잘못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시킬 수 있기 때문에 화를 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3. 부모가 피곤할 때는 참을성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그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부모의 피로감으로 인한 습관적 화내기를 중단한다.
3. 위험한 행동은 눈빛을 보고 단호하게 말하되 ‘버럭’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4. 아이의 말도 안 되는 ‘반복적인’ 요구에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왜 안되는지 알기 쉬운 말로 풀어주면 된다.


남편이 먼저 제안을 해 주었다.
아이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잘못했을 땐
화를 내지 않아도 아이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고,
아이의 요구를 거절할 때도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아이를 덜 다그치겠다는 결심을 내보였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아이들과 지낼 때의 심플한 기준이다.
(물론 아이들과 지낼 때는 언제나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되어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이다.ㅠㅠ그 부분만 조심하면, 일은 쉬워진다.)

우리 부부가 이런 결심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 첫째 아이를 보면,
야단을 맞아도 너무 맞는다.
조금만 뒤로 지나가서 바라봐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건 없었는데...
하며 미안한 마음이 퐁퐁 솟아난다.


여덟 살 첫째 아들, 그리고 네 살 둘째 아들
이렇게 두 아이를 ‘육아적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면
두 아이에 대한 온도차가 극명하다.

여덟 살 첫째 아이는 아직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는 첫째 형이다.
네 살 둘째 아이는 벌써 선교원에 가는 네 살 꼬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는 둘째 아기다.

그러다 보니
첫째는 우리가 처음 키워보는 여덟 살이라-
기준이 높을 대로 높아져 있고,
둘째는 이미 키워본 네 살이라-
네 살 때는 충분히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이해하며 아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네 살짜리는 혼날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첫째는 모든 면에서 아이에게도 처음, 우리 부부에게도 처음이라 야단을 치는 일이 자꾸만 발생한다.

조금만 다그쳐도 아이는 금세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에게 실망한 표정을 내보인다.
아직 여덟 살 밖에 안된 어린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다.
태어난 지 고작 6년 반 밖에 되지 않은 우리 꼬마에게,
너무 크고 높은 기준을 제시하며 거기에 발맞춰 주기를 강요했다.

아직은 성장하며 배워가고 있는 나이인데,
기다릴 여유가 없는 엄마 덕에 아이는 많이도 시달렸을 터였다.


코로나 사태로
아이가 3개월 이상을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둘째는 선교원생이라 열흘 전부터 일상 비슷한 것을 되찾았다.
하지만 첫째는 하루에 한 시간 짜리 태권도 학원에 다녀오는 것이 외부 활동의 전부이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엄마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생기 발랄한 아들을-
천진난만한 꼬마를-
점점 시들게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정해 놓은 틀에서의 모범생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아이를 많이도 다그쳤다.

완벽을 추구하며 아이에게 엄격한 잣대를 내밀었다.
내가 그러는 줄도 모른 채
아이의 호랑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남편의 ‘화내지 않기’ 프로젝트를 받아들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아이를 깨우고, 살려낼 수 있는 건
부모의 칭찬과 인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 냈다.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부모도 인간이다.
‘전혀’라는 말이 붙는 순간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화를 내지 않는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양육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화내지 않고도,
지혜를 구해서 아이를 더 잘 양육해 보겠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내 아이가 생동감이 넘치고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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