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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id

나 자신을 인정해 주기

by 바다의별

해외에서 입장권이나 교통카드를 인식할 때, Invalid 또는 Not valid라고 뜨면 굉장히 난감하다. '유효하지 않다'는 건 말 그대로 기간이 만료되거나 이용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하루 종일 자신이 유효함을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 버스나 지하철에 탑승할 때 유효한 탑승권이나 카드를 인식하고, 회사에 출근할 때는 유효한 사원증을 제시해야 한다.


해외여행을 갈 때면 valid passport (유효한 여권)이 언제나 필수적이고, 은행 업무를 볼 때는 valid identification (유효한 신분증)이 필수적이며, 회원제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는 valid password (유효한 비밀번호) 또한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유효성은 한 번 증명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신용카드에는 만료일이 존재하고, 신분증도 언제나 갱신주기가 다가온다.


끊임없이 외적인 기준에 따라 자신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입증하며 살다 보면, 스스로를 자꾸만 점검하게 된다.


나는 과연 유효한 사람인가?

내 생각이나 감정이 정당한 걸까?

나라는 존재는 가치가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세상에 딱 한 가지, 항상 valid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Your feelings are valid. (너의 감정은 유효해/정당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내면의 것들에 대해서도 valid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여권이나 신분증, 비밀번호와 같은 것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효가 될 테지만, 내 감정만큼은 그 어떤 만료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valid라는 단어는 라틴어 validus에서 왔다. validus는 '강하다', '건강하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단단히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valid 상태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타인이 재단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특정 상황에서 상대가 느끼는 감정에 반드시 동의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고, 그 사실만큼은 인정해 줄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감정의 물결도 다르게 흐를 테니까.


적어도 내가 느끼는 감정만큼은, 검표원이나 기계의 확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 사실을 알면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하게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 방식으로, 단단히 존재할 수 있다고. 지금 내 마음이, 나를 충분히 증명한다고.



관련 단어들

valid: 유효한, 정당한

invalid: 무효의, 쓸 수 없는

validate: 입증하다, 정당화하다

expire: 만료되다

revoke: 취소하다, 무효로 하다

renew: 갱신하다

extend: 연장하다

restore: 복원하다

worthy: 가치 있는 (Everyone is worthy of love.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

affirm: 확인하다, 인정하다 (She affirmed her feelings.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했다.)

acknowledge: 인정하다, 받아들이다 (I acknowledged my fears. 나는 나의 두려움을 인정했다.)

샌프란시스코 뮤어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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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