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상한가요?"
"다른 사람들은 어때요?"
"정상인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지요?"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남기 위해 약해진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이다. 타인과 비슷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 또한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나에게 눈금 자를 대며 물을 때가 있기에 그 마음에 대답한다.
"피해도 도망쳐도 정상! 이대로도 괜찮아요. 00님이 괜찮으면 괜찮은 거예요."
우리 뇌는 예측하지 못하거나 위험한 순간에 우리를 지키기 위해 죽은 척하기, 피하거나 도망치기, 받아들이기, 맞서 싸우기, 협상과 조율하기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약해진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죽은 척하거나 피하고 도망치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 순간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 방법 그대로도 괜찮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면 스스로 다른 방법을 선택할 용기를 내어야 한다. 그 순간은 난처하고 두렵고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편안하고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나를 지키며 사는 방법을.
요즘 나는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나에게 묻는다.
"네가 원하는 것은 뭐야? 네 생각은 어때?"라고. 그러면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가 줄어든다. 어차피 내가 책임지면 되기에.
[미운오리 새끼] 동화를 다시 읽어본다.
어느 연못가에 살고 있던 엄마 오리가 알을 품었고 그 알에서 오리가 태어나는데 한 오리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오리들과 달리 크고 색도 달랐던 오리는 그 무리에 소속되기 위해 다른 오리들을 따라 헤엄도 치고 비슷해지려고 노력했지만 힘들 뿐 똑같아질 수 없었다.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던 오리는 결국 그 무리에서 나와 자신을 받아주는 무리를 찾아 방황하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내처 지다가 결국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백조무리를 만나 받아들여진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도 저 모습으로 살고 있다. 누군가와 같아야 연결되고 소속될 수 있기에 그들과 같아지려고 끊임없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소속되고 함께하고 싶어서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야 세상이 정해놓은 안전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아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속감, 연결됨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없으면 소속과 연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있고 나와 먼저 연결되고 타인과 연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와 연결되지 못하고 타인과의 연결만 쫓아 산다면 상대가 나와의 연결을 거부하면 나는 무너질 수도 있다. 때문에 나로 사는 나만의 정체성을 확립한 후에 타인과의 연결이 우리가 원하는 건강한 연결일 것이다.
(국악동요. 모두 다 꽃이야 )-작사작곡-류형선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모두 다 꽃이야]라는 국악동요 가사다. 수많은 꽃들, 색도 다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고 피는 장소도 피는 시기도 다 다르지만 우리는 꽃이라 부른다. 개나리에게 장미가 되라고 하지 않고 백합에게 들꽃이 되라고 하지 않으면서 서로 그대로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서로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
나무님들
풀잎 같은 나무도 나무고
아름드리 소나무도 나무잖아요.
그냥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려합니다.
살다가 풀잎 같은 나를 만나면 오늘은 ' 힘들었나 보다' 라며 더 쉬게 해 주고
아름드리나무처럼 든든한 나를 만나면 '고맙다 수고했다'라고 말하며
그 순간을 즐기게 해주려 합니다.
피하고 도망치고 있는 나를 만나면
무의식이 어린 너로 안내했구나 라며
그 아이를 달래주려 합니다.
피해도 도망쳐도
어떤 모습이어도 정상이라고 괜찮다고 말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혹시 지나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저인가 보다 생각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