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기지
마음공부를 하는 중에 가장 많이 다뤄지는 이슈 중의 하나가 정서적 안정감에 대한 이슈일 것이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인간 기본 욕구이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인 삶을 안정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정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타인이 주는 걸까? 환경이 주는 걸까? 아마도 안정감의 근본은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조현병(정신분열병, schizophrenia) 환자를 4년여 동안 집단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데이케어 센터에 머무를 수 있는 수준의 환자들이었는데 그들의 특징 중 하나가 불안이다. 집단상담시간을 진행하다 보면 어떤 날은 별 탈 없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참여자 중 한 두 명이 혼자서 중얼거리거나 환청을 듣고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약물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경우이므로 심한 증상은 일어나지 않지만 발병하여 진단에 이르리까지 해당하는 환자의 경우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고, CCTV나 그 외 다른 장비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착각에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확보하지 못한 불안의 단적인 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외부환경과의 연결을 원하기도 하지만 지독히 차단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왜냐면 인간은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확보할 때 안정감을 느끼고 그 안정감을 베이스로 하여 자신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출산을 하고 8개월 동안 아기를 돌보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연아 씨가 있다.
"도대체 내 시간이 없어요. 너무 우울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하루만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어요"
"한 시간만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자고 싶어요"
그녀는 온통 하루의 시간을 아기를 돌보는데 할애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먹지도 입지도 자지도 못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 시대에는 육아를 도와줄만한 가족들이 주변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독박 육아, 부부만이 감당하게 되는 육아는 스트레스를 피해 갈 수 없게 된다.
사람은 안정감이 있어야 일이든 공부든 목표하는 바를 향해 갈 수 있다. 불안감이 휩싸이다 보면 몰입감도 떨어지고 스스로 자신을 외딴곳으로 밀어 넣기 바쁘다. 이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요즘 들어 가상세계가 대세다. 잘은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흐름도 안정감 결핍의 결과로 보인다. 자신이 느끼기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공간 확보의 욕구가 절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방어적 공간(defensive space)에 머물 때 정서적 안정감을 가진다. 외부 자극으로부터의 보호를 통해 자신의 심리도 보호될 수 있다는 심리가 가상공간 세계의 인기를 부추기고 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말이 많은 경우가 있다. 뭔가 더 설명해야 할 것 같고, 더 말을 해야 자신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불필요한 언어들로 본질을 흐리는 경우이다. 이러한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은 주제의 흐름을 잡을 탈 수 없고 초점을 잃게 되어 귀를 닫게 된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불안해서 말을 많이 할 수도 있지만 공격성의 억압으로 인한 원인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방어기제가 나타나게 되어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이치다.
요즘은 SNS 대화를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문자에 나타나는 단어 하나, 점 하나, 이모티콘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경우가 많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말한 거 맞나?
내 말을 오해한 걸까?
예리한 건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불안은 지나친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특징은 자신에게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친 자극에 반응하다 보면 심리적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불안한 마음이 많은 사람들은 대인관계, 연애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안정감을 주는 대상과 있을 때 자신을 편히 드러내고 함께 있고 싶게 마련인데 불안한 대상으로부터 오는 묘한 불편감은 관계를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사람들마다 느끼는 불안은 차이가 있다.
친구 수빈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근데 영은이랑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요
수빈이랑 함께 있을 때는 공격성이 불필요하겠지만 영은이와 함께 있을 때 유난히 공격성에 대한 투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수빈이와 함께 있으면 자신을 공격하는 역동을 일으키지 않아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하게 드러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영은이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게 하는 역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된다.
자기 내면에 건강한 자기 감이 균형을 잡고 있다면 그 누구와 함께 있어도 방어할 이유는 없다. 상대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공격당하고 위협당하며 손상당할까 봐 과잉방어태세를 갖추고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있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면 끊임없이 투사는 되풀이된다. 인간관계에서 되풀이되는 긴장감은 관계의 질을 떨어뜨리고 지속적인 관계를 단절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불안한 사람들은 에너지 소진이 많다. 주변 환경, 지인, 친구 등 자신에게 안전 기지를 제공해주는 대상이 있다면 좋다. 에너지가 끝없이 방출되기 때문에 배터리를 충전하듯 자주 충전해두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는 주양육자가 안전 기지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나 취미생활도 이에 해당한다. 때로는 애완동물을 키우거나 식물을 키우거나 운동을 하는 것도 자신의 불안을 낮출 수 있는 안전 기지에 해당된다.
누구나 사람은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약함으로 인해 자신이 위태로울 거라는 지나친 염려는 놓아도 좋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그다지 다른 사람의 내면에 대해 지나친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만이 아는 약점에 휘둘릴 뿐이다. 그러니 지나친 경계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안전 기지가 되는 그 무엇을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