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그 아이가 보고 싶다.

괜찮아?

by 한꽂쌤

새벽에 일어났지만 더 이른 새벽에 문자가 와있다. 새벽 2시


'선생님. 죽고 싶어요'


어쩌면 새벽이 아니다. 그 애는 잠을 자지 못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 애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듯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 아이를 살고 싶지 않게끔 만들고 뜬눈으로 새벽을 보게 만드는 걸까?


문자를 본 순간 너무나도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밤이 깊어져 깜깜한 그 시간처럼 그 아이 마음도 깜깜 했겠지. 혼자 그 어두움 속에서 외롭게 있었겠지. 그 아이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상상을 한다. 한걸음에 달려가 그 아이 얼굴을 보고 몸은 괜찮은지, 다친 데는 없는지, 마음은 어떤지, 이제 좀 어떤지.... 어떤지... 묻고 싶은 게 많다.


그 아이와 나는 오래전에 연결이 되었다. 중학교 때 만난 그 아이는 어리고 수줍음 많은 소녀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숙녀티가 난다. 그 아이가 험난한 사춘기를 겪는 동안 나는 그 아이의 곁에 있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 아이가 울면 울었고 그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덩달아 기뻐서 웃었다.


내 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 아이의 눈을 보고 코를 보고 입을 보았다. 그 애가 머리를 자른 날도 보고, 그 아이가 안경을 벗고 렌즈를 낀 날도 보았다. 그 아이의 옷이 소녀티를 벗은 그날도 나는 함께했고 그 아이가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함께했다. 그 아이와 내가 함께 한 시간만큼 나는 그 아이의 삶 속에 함께 버무려져 갔다. 어떤 날은 잘 버무려지다가도 어떤 날은 뱉어내고 싶을 만큼 엉망인 날도 있었다. 그 아이와 나는 그런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지난번에도 그 아이는 비슷한 문자를 남겼다. 그러나 그때는 나만 제외하고 주변의 소중한 지인들에게 남긴 문자였다. 그 아이가 나만 빼놓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선생님께 미안해서요'


그 말을 듣자마자 펑펑 울었었다. 50분 내내 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본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싶어 물었었다.


'괜찮아?'


괜찮아라고 묻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 여러 가지 의미의 성분분석을 모두 다 마치기라도 한양 그 아이는 옅은 미소만 보여주었다. 그 옅은 미소 속에 비친 그 아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은 항상 불덩이다. 그러나 그 불덩이로 인해 그 아이와 내가 데이면 안되기에 늘 조절해야 한다. 쉽지 않다. 뜨겁지 않게 따뜻한 온도로 유지해야 하는 일이 내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금,,,,,,, 한걸음에 달려가지 못하는 내가 야속하기만 하다.


* 내용은 실제 사례와 다르게 각색한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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