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몸, 용서 그리고 사랑
위빳사나는 죽음의 기술, 즉 평화롭고 조화롭게 죽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삶의 기술을 배움에 따라 죽음의 기술까지도 배웁니다. 삶의 기술이란 지금 이 순간의 주인이 되는 방법,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상카라를 만들어내지 않는 방법,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지금 현재가 좋으면 현재의 산물인 미래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좋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고엔카의 위빳사나 10일 코스, SN 고엔카, 65p
‘위빳사나 명상’을 알려준 건 교보문고였다. 책을 구매하다가 하단에 뜬 추천 도서 목록 중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이란 책을 발견했다. 명상이란 단어를 제외하고는 외계어처럼 생소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홀린 듯 책 소개를 읽다가 도서관에 가서 빌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도 근처 도서관에서 바로 대출이 가능했다.
지난해 하반기 은둔 모드로 자발적인 고독의 시간을 보냈다. 최대한 집에 머물며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겉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말하지 않으면 같이 사는 사람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내밀한 변화였다. 다시 방황하며 혼란스러웠고, 가끔은 답답했고 때로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삶을 살아오며 쌓인 감으로 어렴풋한 짐작은 했다.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때가 되었다는 걸. 다만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다.
그 과정에서 무의식과 친해지기 위해 꿈을 해석하고 나름대로 명상을 꾸준히 하고 산책하고 필라테스를 하며 몸을 돌보았다. 절망하거나 자책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나를 들여다보는 훈련을 했다. 꼭 해결해야 할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여러 각도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시간을 보냈다. 점진적으로 평온해졌다. 삶이 행복했고 그걸 누구에게 확인받거나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어졌다. 아니, 이전에 내가 얼마나 타인에게 존재를 이해받고자 애써왔는지 더 깊이 있게 인정하게 되었다.
많은 책을 읽었다. 네빌 고다드와 람타의 책은 많은 위로와 사랑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나만의 철학과 세계관이 있었다. 그것을 다른 이에게 증명하거나 설득하는 데 이번 생을 낭비할 생각은 없다. 맞냐, 틀리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마음에 드는 새로운 관점을 찾아 삶으로 끌고 들어와 직접 실험하며 나와의 적합성을 따져봤다. 내가 좋으면 그게 맞는 거였고 마음이 불편하면 철회했다. 대략 그렇게 모인 철학의 느낌은 20대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찬 동시에 실천적이고 유연하며 훨씬 낭만적이었다.
대부분의 나날, 안정되고 평온했음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거기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여전히 주기적으로 기분의 고저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기분에 영향을 받았다. 그 파도가 가라앉지 않고 지속되어 다시 평온하고 침착한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애를 먹는 날도 생겼다. 비슷한 책만 읽었기 때문일까? 더 이상 책을 읽어도 소용없어 보였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수행법을 직접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싶었다. 이 정체기를 넘어설 수 있도록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고 싶었다.
위빳사나 책에 나오는 이론은 생소한 용어를 제외하면 꽤 익숙했다. 그러나 한 문장이 나를 명상 코스로 이끌었다. ‘지식을 아무리 익혀도 경험으로 몸소 체험한 지식이 아니면 지혜가 될 수 없다.’ 말로 할 수 없으니 직접 경험해야만 한다고. 직관이 발동했다. 여기 가면 분명 내게 필요한 무언가 그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 꼭 가야 한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행 코스 날짜를 확인했다. 마음 같아서 당장 참여하고 싶었지만, 몇 달 여유롭게 기다려야 했다. 5/11~5/22일 10일 코스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이 날짜다! 11에서 22로 딱 떨어지는 숫자와 개인적인 일정을 고려하면 최적의 기간이었다.
역시나 예감대로 그 코스를 신청한 다음 날 바로 참가가 확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렇게 삶의 초대에 이끌려 위빳사나 10일 코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위빳사나 명상에서 배운 건 첫째 몸이었다. 위빳사나 명상에서 가장 괴로웠던 건 식단도 지루함도 중독도 아닌 바로 자세였다. 명상하기 위해 앉아있는 자세가 나를 극심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인정해야 했다. 내가 살아온 나날이었다. 지금 몸의 모습은 내가 만들었다. 누굴 원망하거나 탓할 거 없었고,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책하거나 책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었다.
몸, 네가 나의 주인은 아니다. 네가 단지 편안하거나 좋은 감각을 느낀다는 근거로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다. 때로 너의 불편한 감각을 무시하고 너에게 지금처럼 참으라 견뎌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잘 돌보고 사랑해야 했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무리가 되지 않도록 쉬고 너의 건강을 돌보고 지속해서 에너지를 내며 살 수 있도록 관리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 미안해. 앞으로는 너에게 관심을 지니고 너의 고마움을 느끼며 너와 함께 잘 살도록 노력할게. 그러니 너도 지금처럼 나를 도와줘. 당장 지금 너는 삐뚤어지고 비틀려서 오래 앉아있기도 고통스럽지만, 조금씩 바로잡아 나가고 더 건강해지면 통증 없이도 균형 잡힌 자세를 만들 수 있겠지.
넷째 날 산책을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몸이 미세한 감각을 느끼다 보니 내가 미처 몰랐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온몸 세포 하나하나는 이제껏 항상 거기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내가 절망하며 울고 삶을 저주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덩그러니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날조차. 온몸 세포들은 이유도 방법도 묻지 않고 내게 원하는 것 없이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왔다. 한 번 쉬지 않고 당연하단 듯이.
그들은 사는 방법밖에 모른다. 그들은 내게 자격을 묻지 않았고 보상도 인정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살았다. 그저 살뿐이다. 그저 매 순간 내가 울든 웃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최선을 매 순간 다해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 누구도 감히 이 삶을 하찮거나 쓸모없다고 말할 수 없다.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몸은 매 순간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다. 몸에게 고마웠다. 기쁨에 눈물이 흘렀다. 나의 전율에도 몸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제 할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두 번째 배움은 기다림이었다. 나는 충분히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성격이 급했다. 모든 상황에서 성격이 급한 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인내심이 강했다. 주변 환경에 적응해서 문맥과 사태를 파악하고 있을 때, 이성적으로 기다림의 이유가 합리적이고 납득이 되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가령 은행 창구 줄이나 병원 대기 줄이 길어도 괜찮았고, 친구가 사정이 생겨 늦는다고 미리 연락해 준다면 한 치의 불만 없이 평온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돌발상황이 생기거나 미처 원인 파악을 하지 못했을 때,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가슴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원인을 알아도 어차피 해결할 수 없거나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상황 자체를 파악하고 있는 것과 모른 채로 있어야 하는 건 내게 천지 차이였다.
생활에 있어서,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는 빨리 그곳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빨리 단숨에 파악하고 싶어 했다. 낯선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내 몸은 불안하고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나를 채근했다. 이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한 편으로 나는 줄곧 낙담하곤 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아는 즉시 그것을 그만둘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수영을 배우겠다고 결심하고도 수영장에서 힘을 빼지 못해 물을 잔뜩 먹고 컥컥거리자, 스트레스를 더 받으며 수영을 다닐 수는 없지 않으냐고, 그러니 수영은 내게 맞지 않는다고 열흘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더 연습하거나 시도할 생각도 없이 구기라면 무조건 못한다면서 거리를 두었다. 사람들을 만났는데 조금이라도 어색한 기운이 감돌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역시 단체생활 체질이 아니라며 두 번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운전 역시 마찬가지였고 영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게 조금이라도 불편감을 느끼게 하는 모든 일은 시도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은 채 원래 못 한다고 선을 그은 후 바로 포기했다. 어쩌면 난 낙담의 역사를 살고 있는 겁쟁이였다.
‘좋아. 내겐 낙담하는 상카라가 있어. 나는 이걸 이번 생에 풀 거야. 무언가 낙담하더라도 그 사실로 인해 또다시 낙담하는 굴레에 빠지지 않을 거야.’ 미소를 짓고 즐거운 마음으로 명상했다. 어떤 일을 잘 못해도 나 자신을 또 그 일로 혐오하지 말자. 그 사실에 저항하지 말자. 그저 하자. 피할 수 없다면, 필요하다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하자. 기다리자. 시간을 주자. 여유를 갖자. 모든 건 과정이다. 모든 건 기다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자.
세 번째 배움은 낯익은 상처에 관한 용서였다.
6일 차 산책하며 불현듯 내가 엄마 아빠를 용서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엄마 아빠가 나를 용서해야 한다고 뒤집힌 관점으로 과거를 보게 되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내게 깊고 진한 그림자를 남긴 엄마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했다.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도 반대로 날 이해해 주지 못하는 그들에게 억울함을 느꼈고,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도 그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상처에 흉터가 남은 듯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표면적 사건과 도덕적 기준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누가 맞고 틀리냐’는 사건의 본질이 아니었다. 모든 경험은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내가 허용하고 끌어들이고 창조한 일이었다. 한 걸음 뒤로 가 이 사건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되짚어 진짜 본질을 생각해 보면 모든 게 과거 내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엄마 아빠가 날 상처 입힌 게 아니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 엄마 아빠 둘의 관계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내게 혐오스러운 감각을 선사했기 때문에 엄마 아빠의 관계를 내 입맛에 맞게 통제하고 바로잡으려고 했다. 그게 실패했기 때문에 상처로 남았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그들의 관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었는데 거기 끼어들어서 내 맘대로 통제하려 했다. 나는 아무런 자격도 그럴 만한 권리도 없는데 단지 속상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단편적인 이유로 그들의 앞길을 막고 울면서 내 선택을 강요했다. 엄마 아빠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였고, 어리석고 무지해서 용서받아야 할 사람도 나였다.
그동안 나의 무의식에 새겨진 선입견과 호불호에 따라 반응하며 혼자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제멋대로 상처받고 누군가를 경계하고 판단하고 미워했다. 세상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입맛대로 통제하고 바꾸려고 했던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오롯이 나였다. 나 하나였다.
하루하루 배움을 얻었고 위빳사나를 만나며 뜻밖의 선물을 많이 받았다.
저녁 명상을 하는 도중 깊고 안정적인 기쁨이 온몸을 휘감는 순간이 있었다. 그 기쁨과 사랑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다. 내가 알고, 기억하고, 만났던 모든 인연들과 말이다. 한 명씩 그들의 이름과, 얼굴, 존재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이 사랑과 평화가 그들에게 전해지길. 어디서도 행복하고 평화롭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며 감사함을 전했다. 친구, 가족, 여행에서 스쳐 간 사람, 기억에 남는 모든 사람, 직장 동료들, 심지어 과거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행복과 안녕을 빌 수 있었다.
그전까지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그들을 원망하거나 탓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잘 지내거나 행복하길 굳이 빌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진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 특히 내가 만난 지금 여기까지 있게 해 준 스쳐 간 모든 인연들에게 진심을 다해 행복과 안녕, 사랑을 빌어주고 싶었다.
새로운 목표 의식도 생겼다.
이번 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몇 번인지 어쩌면 몇천 번, 몇만 번일지 모를 수 없이 많은 삶을 살아온 나의 영혼 혹은 존재의 것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가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린 이제까지 너무나 깊은 원한과 아픔 고통을 겪고 상카라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저 태어나고 잊고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지금 여기 위빳사나를 하고 상카라와 대면하게 한 건 아마 이제껏 많은 ‘내’가 조금씩 공덕을 쌓고 고통을 대면하고 지혜를 쌓은 덕분이겠지. 고마워. 내 삶들. 이건 우리의 삶이야. 그리고 이번 생에 반드시 할 수 있는 최대한 이 상카라를 용해할 거야. 더 이상 고통 속에, 아픔 속에, 어둠 속에, 원한 속에 나를, 그리고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가장 좋은 마음과 상태로 가장 평온하게 죽음을 향해 가자. 최대한 가볍게 최대한 많은 상카라를 용해하면서. 나를 믿어줘. 나는 너희를 모두 사랑해. 다음 생의 나에겐 가장 가볍고 평온한 나를 선물할게.
고엔카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제 첫발을 내밀었다. 여전히 너무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기쁨에 도취해 있고 자극에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버려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의 담마를 쌓을 거다. 그것이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펼쳐지든 기쁜 마음으로 혐오 없이 좌절 없이 인내심을 지니고 여유롭게 한 발 한 발 걸어 나갈 거다. 이제 내게 모든 고통은 기쁨이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새로 수행할 과제를 알게 해주는 마중물이 되어줄 테니.
소울 넘버가 22라 믿는 나는 22번 방에서 첫 위빳사나 명상 10일 코스를 만료했다. 삶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기쁘고 설렌다. 만나고 스쳐온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 여기까지 이끌어준 모든 내 삶의 내용에 감사한다. 감사한다. 감사한다. 감사한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조화롭기를, 자유롭기를, 해탈하기를. 바와뚜 삿바 망갈랑.
(2022년 7월 위빳사나 명상 수행 일지 중 발췌)
스물두 번의 여름은 스팀잇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