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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Dec 29. 2023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을까?

그러니 마음을 닫지 말라고

예전엔 알레를 만나면 다시 알레와 사랑에 빠질까 두려웠다. 현실을 다 무시하고 무작정 그와 함께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까 두려웠다.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그를 차단했다. 다시 알레에게 연락을 한 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그의 마음이 어떠하든 내가 다치거나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그러면서도 다시 그를 만난다는 게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역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삶이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었다.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알레와 시험해 볼 건, 사연이 있는 남녀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친구 관계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이 다르며,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은 사람을 통제하거나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평정심을 지키며 사랑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어제 우리가 나눈 대화의 8할은 알레 차지였다. 그 대화를 하며 느낀 건 그가 영원히 날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게 내가 그를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없던 진짜 이유였다. 




어쩌면 알레와 만난 지 너무 오래되어 나도 모르게 알레와 나의 관계, 또 알레의 의미를 멋대로 미화시키고 변주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숙명의 연인이나 잊지 못할 위대한 사랑, 로맨스 장르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확신했다. 시간이 지나도 알레는 날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진짜 내 모습과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닐 테니까. 알레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절망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갑자기 알레를 만나러 가기 싫어졌다.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만나면 분명 기가 빨리고, 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는 그를 매 순간 확인할 텐데, Astin을 걱정시키고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며 알레를 굳이 만나러 가야 하나? 이게 맞나?


나를 달랬다. 이건 그저 너의 방식이야. 너의 호불호와 기호에 따른 판단일 뿐이야. 가서 있는 그대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 그의 버전으로 우리 이야기를 다시 들어야 해. 나의 환상이나 멋대로의 통제가 빠진 적어도 그의 입장이 반영된 이야기를 말이야. 그리고 똑바로 바라봐야 해. 그와 함께 있는 너와 그를. 


아마 실패할 거야. 하지만 그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도 있지.’ 미소 지으며 기꺼이 받아들여야 해. 왜냐하면 앞으로 남은 인생에 네가 해야 할 일과 배워야 할 과제가 그것이니까.


일요일엔 영화 컨택트를 다시 봤다. 외계인과의 소통보다 힘든 건 다른 이해관계가 얽힌 지구인들과의 소통이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굳이 날 이해하려 하지 않는 너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역시 포기해야 하겠지? 너에게 이해받기를.




그다음 날 오전 8시 M을 만나기로 한 아침이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알레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스텔라 좋은 아침이야. 내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이건 내가 받아 본 최고로 특별한 선물이야. 그 덕에 우리 이야기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난 언제나 너처럼 특별한 사람을 내 인생에 만난 걸 감사하게 생각할 거야. 너는 언제나 내게 영감을 줘.

 

-너 괜찮니? 무슨 일 있어? 너 알레 맞아? 계정 도용당한 거 아니야? 하하하.


나의 실없는 농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알레의 메시지는 이어졌다.


-나는 괜찮아. 그저 생각한 거야. 네가 말했던 거 기억나니? 그때 나는 네가 해준 일에 대해서 별로 감사하지 않았어. 네 말이 맞아. 그때의 난 정말 이기적이었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했지. 너의 희생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어. 

너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거의 죽을 뻔한 사고가 났어. 그때 가장 슬펐던 건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 그렇지만 삶과 신이 두 번째 기회를 줬어. 그래서 지금 진심을 말하는 거야. 너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야. 그리고 진짜이지. 



-알레... 세상에! 네가 사라졌을 때 네가 괜찮길 바랐지만, 왠지 네가 아프거나 뭔가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그냥 감이지만. 그럼에도 너를 위해 많이 기도했어. 네가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진심으로 말이지. 지금은 어때? 정말로 괜찮니?


-지금은 정말로 괜찮아.


-나는 너의 절친한 친구야. 우리의 관계는 진실되고 진짜야. 우리가 연인이든 남자친구 여자친구이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잠깐 기다려 줄래? 컴퓨터에 있는 사진을 보내주고 싶어.




시간이 지나서 알레는 내게 몇 장의 사진을 보냈다. 그 사진에는 피를 흘리며 병원에 누워 있는 알레가 있었다. 


-... 세상에 맙소사! 무슨 일이야?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났어. 몸 안에 피가 고였어. 내 배가 피로 가득 찼어.


-언제?


-1년 전쯤


-그래서 아무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구나. 이제 알겠다.


-그때, 네 생각을 했어. 병원에서 너 말고 다른 사람은 보고 싶지 않았어. 그렇지만 난 살아남았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무 말하지 마.


-다시 살아줘서 고마워.


-지금 우린 이렇게 다시 말하고 있지.


-이건... 기적이네.


-너를 보기 전에 세상을 뜨고 싶지 않았어. 두 달 동안 휠체어 신세를 졌어. 그런데 난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너 괜찮니?


-오... 세상에… 죽음조차도 널 오토바이에서 떼어놓지 못했구나. 몸조심해 알레. 나는 이미 비행기 표를 예매했어. 적어도 너를 볼 기회는 줘야지. 


-그럼. 하하하. 고마워. 좋은 건 너의 모든 것이 괜찮다는 거야. 그게 날 행복하게 해. 


-난 지금 행복하고 앞으로도 항상 행복할 테니 그럼 너도 계속 행복하겠다.


-나 지금 나가봐야 해. 


-그래 다음에 이야기하자.



어떻게 넌 나의 마음을 알고 지금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우리 관계는 진짜라고. 죽음 앞에서 넌 내 생각을 했다고. 그러니 마음을 닫지 말라고.


어쩌면 넌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이해받지 못해도 마음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다고 내게 알려주는 그런 기적 같은 소중한 존재야. 





스물두 번의 여름은 스팀잇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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