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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손내밥 Feb 26. 2024

세상에서 제일 쉬운 미역국 끓이기

휘리릭 미역국을 끓여보자



결혼 후 한 달 만에 남편 생일이 있었다.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였을 때 먹는 것과 만드는 것의 극한 간격을 느꼈다. 


시어머니가 가져다주신 미역은 커다랗고 넓적한 까만 널빤지 같았다. 미역을 불리기 위해 적당히 잘라야만 했다. ‘적당히’라는 양도 모르겠지만 너무 딱딱해서 부러뜨리기도 어려웠다. 미역을 힘껏 꺾었다.

“딱!”

플라스틱이 부러지듯 충격이 느껴지면서 큰 소리가 났다. 내가 깜짝 놀라는 동안 미역의 파편들이 여기저기로 산산이 날아갔다. 


미역 덩어리와 파편을 대야에 담가 불렸다. 한 시간 후 미역은 액체 괴물처럼 커져서 대야를 꽉 채웠다. 미역의 양이 많아진다는 걸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놀라웠다.

불린 미역은 찢어진 행주처럼 너불거렸다. 먹기 좋게 썰어야 하는데 미역이 미끈거려서 잘 썰리지 않았다. 얼마나 작게 잘라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 달라붙기 좋아하는 젖은 미역 조각들은  도마, 칼, 그릇, 내 손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미역과의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그 이후로도 미역을 불릴 때면 이것의 양이 얼마나 늘어날지에 대해 양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미역마다 커지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어난 미역을 끓이면 양은 더 늘어난다. 


하지만 미역국을 안 끓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가족 생일만큼은 꼭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생일 대표 음식이 미역국이니까. 


나는 쉽게 미역국을 끓여 내고 싶었다. 그것도 맛있는 미역국을.


세상에 수없이 많은 미역국이 있지만 나는 '휘리릭 미역국'을 만든다. 

휘리릭 미역국은 육수를 낼 필요도 없고 다른 재료를 추가하지 않는다. 미역에서 우러나오는 맛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미역국이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미역국은 물에 미역을 넣고 끓이면 된다. 


휘리릭 미역국 만들기


1. 미역을 불린다.

2.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살짝 볶는다.(생략 가능)

3. 물을 붓고 끓인다.(약 5분~10분)

4. 간을 한다.(다진 마늘만 넣고 파는 넣지 않는다.)


‘자른 미역’을 사면 미역 손질에 대한 번거로움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자른 미역을 불리면 먹기에 좋은 크기로 커지기 때문에 손에 달라붙는 미역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미역은 한 줌만 불리면 세 가족이 먹기에 적당하다.

‘너무 적지 않나?’라는 생각에 미역의 양을 늘리면 미역이 항상 남는다. 


휘리릭 끓이는 미역국은 참기름에 볶는 게 좋다. 볶을 때 미역 냄새가 날아가고 참기름 향이 미역에 배어서 국이 고소해진다.


끓이는 시간은 선호도에 따라 다르게 한다. 

안젤라는 십분 이하로 끓인 휘리릭 미역국을 좋아한다. 휘리릭 미역국은 국물이 맑고 미역은 초록빛이다. 미역이 쫄깃하게 씹힌다. 맛은 신선하고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살아있다.


미역국 마니아인 시어머님은 푹푹 미역국을 좋아한다. 어머님에게 휘리릭 미역국은 미역국이 아니다. 푹푹 미역국은 많은 양의 미역을 넣고 한 시간 이상 끓여 낸다. 미역 상태에 따라 두 시간 이상도 끓인다. 국물이 졸아들면 물을 추가하면서 끓인다. 국물의 색은 뽀얗게 되고 미역은 새까맣게 짙어진다. 국에서는 바다의 깊고 풍부한 맛이 난다. 국물과 어우러진 미역은 흐물흐물해져서 목구멍으로 후루룩 넘어간다. 밥맛이 없는 날 푹푹 미역국 한 사발 마시면 기운이 퍼뜩 난다. 


나는 두 가지 미역국을 다 좋아한다. 같은 미역 다른 국이다. 


미역국의 간은 자기가 선호하는 조미료로 하면 된다. 나는 까나리 액젓을 쓰는데 액젓을 싫어하는 사람은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해도 된다. 된장으로 간을 할 수도 있다. 간에 따라 미역국은 또 다른 맛이 난다. 

특별하게 먹고 싶은 날엔 들깻가루나 콩가루를 넣는다. 부족한 영양소도 보충해 주고 색다른 맛이 난다. 


산후조리를 할 때 미역국 덕을 톡톡히 봤다. 분만 전후로 변비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미역국이 변비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역국을 많이~ 먹었다. 산후조리에도 좋고 모유 수유에도 좋고 변비까지 좋다니 일석삼조 아닌가. 안 먹을 이유가 없잖아!

미역국을 열심히 먹은 지 이틀 만에 변비에서 벗어났다. 그때의 행복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역국은 우리나라 사람에겐 특별하다. 산후조리에도 먹고 생일마다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아이들은 미역국을 잘 먹는다. 산모들이 미역국을 먹으면서 산후조리와 수유를 하기 때문에 아기들에게도 익숙할게다.


고려 시대부터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다는 유래가 있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는 부모는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먹는다고 한다. 

나도 결혼 후 내 생일에 미역국을 먹을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나를 낳고 미역국을 먹은 엄마, 또 내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여주신 엄마 생각에 뭉클해진다. 


맛도 좋고 영양도 보충하고 엄마 생각까지 나게 하는 미역국을 먹고 싶은데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싶다면 

휘리릭 미역국을 끓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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