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서 무사히 아기집의 착공을 확인했다. 자궁외임신이 아니라는 뜻이었고, 현 시점으로서는 무사히 임신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의사가 출산예정일을 말해주자 뿌앵 하고 눈물이 터졌다. 임신테스트기를 처음 해봤을 때도 눈물은 나지 않았는데. 일주일간 내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마음을 졸인 모양이었다. 질질 흐르는 눈물에 스스로도 당황하고 있으니 의사는 티슈를 뽑아 건네면서 "임신하면 원래 눈물 많아져요. 호르몬 때문에 그래, 호르몬." 했다. 그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래, 이것도 임신 증상일지 모른다…
진료를 마치자 병원에서는 '건강보험 임신·출산 진료비 지급 신청서'라는 서류를 하나 발급해줬다. a.k.a. 임신확인서. 이 서류를 거주 지역 보건소에 내면 엽산과 같은 각종 필수 영양제 등을 챙겨준다고 했다. 이게 전산에 등록이 되면 나는 국가가 공인한 임산부다. 정부24에 로그인만 하면 이미 내가 임산부라는 걸 정부도 알고 있다. 임신 출산 과정에서 요긴하게 쓰일 국민행복카드 지원금(바우처) 100만원 같은 걸 한꺼번에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마패'도 받았다. '임산부 먼저'라고 적혀 있는 분홍색 표식, 지하철 등에서 임산부들의 가방에 달려 있던 그것이었다. 남편은 이것만 있으면 이제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줄 거라며 "우리도 마패가 생겼네!" 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모르는 하룻강아지였지. 실상은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나 홀로 눈치게임이 시작됐다.
일단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는 경우가 잘 없다. 면접이라도 보고 온 건지 기본 정장을 갖춰입은 젊은 여자가 안쓰럽게 꾸벅꾸벅 졸고 있고, 웬 아저씨가 앉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고 있고, 짐을 한보따리 든 아줌마가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고… 그런 식이다.
임신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임산부 배려석을 노약자석 ver2. 정도로 생각했다. 배려라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며, 임산부 배려석 자리를 미리 비워둔다면야 참 좋겠지만 아니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하루 한 번씩 '유산'을 검색해보는 임신 초기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누가 가방으로 배라도 치면 분노가 치솟았고, "임신 초기 임산부는 겉으로 보기에 티가 나지 않으니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달라"는 방송이 나와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1cm도 안 되는 세포가 몸에 자리 잡았을 뿐인데 체력은 평소 60% 수준으로 깎여서(몸을 조심하느라 그럴 수도 있다) 식은땀이 자주 흐르고 배도 수시로 당겼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임산부 배려석 얘기가 나오면 "나는 임산부가 나타나면 비켜줄 생각으로 앉는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참이 되려면 그는 마치 불침번처럼 전방을 주시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내 경험상 그런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못 봤다.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있거나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임산부 뱃지를 달고 앞에 서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비켜달라고 말을 하면 될 거 아니냐"고도 한다. 그 말을 하기 전에 인터넷 뉴스 검색창에 '임산부 배려석 폭행'을 검색해보기를. 놀랍게도 임산부 배려석 문제로 임산부를 때리는 사건이 심심치않게 일어난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자고 있는(혹은 자는 척하는) 사람을 깨워서 비키라는 말을 하는 건 이쪽에서도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그러느니 그냥 다른 자리를 노리는 거고, 그러다 보면 임산부 배려석이 유명무실하다는 생각이 들고, 저출생 인구절벽 기사마다 달리는 나라 걱정하는 댓글들이 우습게 느껴지는 거고… 복잡한 심경이 된 채 임산부는 지하철을 떠난다.
무엇보다 "애는 니가 좋아서 낳는 건데 왜 남의 배려까지 원하느냐"는 댓글도 있는 걸 생각하면, 그냥 말을 말자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이기를, 사회 구성원이기를 포기하기 시작하면 '노인이 되는 건 그냥 당신이 늙은 건데 왜 각종 배려를 바라느냐'는 각자도생 논리에 다다를 수밖에 없고, 그런 각자도생 사회에서 당신이라고 배려가 필요한 순간이 없을까.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어느 면에서는 약자가 된다.
'됐다 그래'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나와 함께 지하철을 같이 타면 '마패'가 달린 내 가방을 뺏어들고 뚜벅뚜벅 임산부 배려석으로 걸어가곤 한다. 거기 앉은 사람이 자고 있든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든 "저기 혹시," 하고 마패를 들이민다. 그러면 이제까지는 다행히 시비 걸리지 않고 다들 자리를 내어줬다. 그는 "원래 암행어사 출두할 때 어사는 뒤에 있고 방자가 앞장서서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는 법이다"고 하는데, 그러면 나는 '내가 너무 수동적인가. 아이를 지키는 건 일차적으로 내 책임인데.' 하는 생각에마저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생각 많은 임산부란…
물론 이런 임산부를 뭉클하게 하는 순간도 있다. 예컨대 임산부 배려석에서 누군가 자고 있어서 체념하고 서 있는 내게 어느 교복 입은 학생이 "여기 자리 비었어요!" 빈 자리를 찾아서 막 손을 흔들 때. 임산부 배려석이 아닌 자리에 앉아 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아고, 힘들겠네" 하며 선뜻 자리를 양보해줄 때. 그런 순간에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고맙다. 그냥 다리가 편해서가 아니라, 나의 약해짐이 약점이 되지 않는 순간이 세상에 있다는 안도감에.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을 다음에는 꼭 쫓아내야지' 하는 결의보다는 '이 다음에 나도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야지' 하는 결심이다. 가끔 방자 육모방망이도 좀 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