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 웬 비둘기 한 마리가 택배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니! 웬 비둘기?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람 문자를 보고 택배를 가지러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비둘기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고 고개만 내 쪽으로 향한 채 눈만 깜빡깜빡했다.
사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는 것이 뭔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문 쪽으로 몰아갔다.
계단을 잘 걸어 내려가던 비둘기가 대문 앞에서 멈춘 채 꼼짝하지 않았다.
가만 두면 가버리겠지...... 비둘기를 그대로 둔 채 들어왔다. 그리고 3시간이 흘렀다.
다시 나가보니 비둘기는 택배가 놓였던 처음 자리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비둘기를 잡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놀라서 날아오른 비둘기가 힘없이 바닥에 툭 내려앉았다.
날개 안쪽에 상처가 보였다.
집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길냥이가 많이 돌아다녔고, 가끔씩 길에서 죽은 비둘기를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고양이에게 공격받고 다친 비둘기가 마침 문이 열려 있던 우리 집으로 피신해 온 것 같았다.
이 작은 불청객에게서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느꼈다.
비둘기는 쉽게 잡혔다.
잡히기를 바라는 느낌이었다. 비둘기를 빈 택배 상자에 넣어 옥상에서 임시보호를 시작했다.
비둘기는 달아나지도 않고 상자에서 머리만 빼꼼하게 내놓은 채 목각 인형처럼 꼼짝 안 했다. 그렇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비둘기는 상자 안에 얌전히 있었다.
비둘기는 내가 주는 대로 아무거나 잘 먹었다. 그런데 매일 내 밥을 기다리는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짠했다.
낮에는 집으로 꾸며준 상자 안에 꼭꼭 숨어 있었고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는 상자 밖으로 나와서 걸어 다니거나 화분 위에 앉아 바람을 쐬기도 했다.
비둘기는 둥지로 여기는 곳은 떠나지 않는다고 들었다. 나는 비둘기가 혹시나 옥상에 눌러앉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비둘기가 날개 짓을 할 때마다 날 수 있는지 확인을 했다. 한 번은 빈 화분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가 화분 안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내가 도와줄 때까지 스스로 빠져나오지를 못해서 실망하기도 했다.
어느덧 2주가 지났다.
그동안 겁먹고 목각 인형처럼 꿈쩍 않던 비둘기가 제법 시끄러운 소리도 내고, 내 손을 부리로 위협하는 행동도 했다.
이렇게 회복의 기미가 보일 때쯤, 임시보호 18일째가 되는 밤에 사건이 일어났다.
옥상은 원래 우리 집 강아지의 놀이터였다. 비둘기가 온 후로 옥상 출입금지 상태였는데 엄마가 깜빡 잊고 옥상에 가고 싶어서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옥상으로 올려 보낸 것이다.
비둘기가 처음 옥상에서 지낼 때, 비둘기를 발견한 강아지가 비둘기를 잡으려고 쫓아다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밤에는 비둘기가 자주 상자 밖에 나와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강아지를 잡기 위해 급하게 옥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쫓아다니는 강아지를 피해 유유히 날고 있는 비둘기의 놀라운 모습을 목격했다. 전처럼 쫓아다니는 강아지를 피해 닭처럼 뛰어야만 했던 겁먹은 비둘기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날아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브라보! 이제 다 나았구나! 기쁨과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 집이 아닌 옆 집의 옥상에 앉아있는 비둘기를 발견했다.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잠시 앉아 있다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감동!
잘 가라! 고양이에게 물리지 말고, 잘 살아!
비둘기는 다시 돌아왔을까?
비둘기가 떠난 지 4일째 되는 날에 다시 돌아왔다.
따뜻한 집과 맛있는 밥을 잊지 못했구나. 집 나가면 고생이지.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숙식은 안 된다!
비둘기는 지금도 가끔씩 와서 옥상에서 쉬었다가 간다. 밥 정이 무섭다고 했던가, 가끔씩 옥상에서 마주치는 비둘기가 무척 반갑다.
이젠 비둘기를 둘리라고 부른다. 1월의 영하의 날씨가 이어질 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생사를 걱정했는데 궁금해하면 또 나타난다. 이젠 둘리의 날개 모양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서 집 근처 전깃줄이나 이웃집에 앉아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