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 50분은 꽤 긴 시간이다. 학교현장에서 기존의 문법 번역식 수업을 하는 교사는 이제 거의 없다. 적어도 그런 방식이 이제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수행평가는 콘텐츠 제작과 프로젝트, 토론 수업으로 가득하다.
독해 수업을 단어 정리와 어법부터 시작할지 혹은 배경 지식과 질문으로 시작할지, 실생활 회화(회화와 대화의 차이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위주로 진행하고 뒤에 어법을 최소화해서 다룰지 혹은 문해력을 중심으로 인풋과 아웃풋을 늘리는 일에 집중할지, 무엇이 먼저 오느냐로 현시점에서수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다. 에듀테크가 아무리 발달해도 툴(tool)만 넘쳐나고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주객전도의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화려한 수단이나 겉으로만 달라 보이는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학습자에게 다양성에 대한 비판과 포용을 배우게 할 수 있을까의 문제 아닐까?
얼마 전 노라 크루크의 그래픽 노블 <전쟁이 나고 말았다>를 읽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보내온 두 편의 시각 기록물이다. 목격자로서의 K와 D의 사적인 기록이지만 어떤 미디어에서도 접하지 못한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통해 전쟁의 여파를 여실히 전해주고 있었다.
영미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18세기, 19세기를 넘어 20세기까지의 영국과 미국의 세계사적 위치부터 이야기해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영국, 미국과 영향을 주고받는 국가들의 이야기도 나누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영어보다 세계사를 먼저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의 '세계 없는 머리'가 떠올라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질문:
- 전쟁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어떤 잔해를 남길까?
- 가족과의 관계, 문화적 소속감은 예전과 얼마나 다를까?
- 죄책감, 희생, 배상, 앙갚음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바뀔까?
- 우리는 과연 전쟁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K: 코펜하겐에 왔다. 이곳은 조용하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 시내로 나가 장을 보는데, 갑자기 미사일이 떨어져 죽는다고 상상해 보라. 이게 바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매일같이 두려워하는 일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쏠 미사일을 얼마나 더 늘어 세워두고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러시아를 연구한 전문가, 기관, 싱크 탱크가 얼마나 될까? 수백? 수천? 그런데도 그들 대부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경악했다. 대다수의 전문가가 러시아의 식민주의를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맹점이다.
D: 아내와 나는 이민 계획을 의논 중이다. 아내는 자기가 아이들을 데리고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내가 먼저 라트비아에서 노동 허가를 받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당분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학교에 아이들이 다녔으면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정치 선전을 가르칠까 봐 우리 모두 걱정이 된다. 러시아 정부는 애국심에 관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운 수업으로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