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임용준비생 시절 내게 잠이란 '시간 낭비'이고 목표를 방해하는 '장애물' 그러니까 게으름의 상징 그 자체였다. 걱정도 고민도 많은 성격이라 불면증으로 3-4시간을 침대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도 잦았다.
잠은 대체로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은 집중력이 형편없고 정신이 몽롱해 쉽게 우울해졌다. 자꾸 단 걸 찾았다. 충동적으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판단력이 흐려졌다. 어쩌다 낮잠을 1-2시간 자거나 카페인을 오후 늦게 섭취한 날에는 불면에 시달렸다. 최근까지도 달리기를 좀 쉬면 다시 불면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식이었다.
달리기나 산책 같은 적당한 유산소 운동이 수면 개선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잠들기 직전에 지나치게 격렬한 운동을 해서 뇌신경이 과도한 긴장이나 흥분을 할 정도만 아니라면.
개인적으로는 밤 9시 전후에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드는 패턴이 가장 좋다. 저녁을 먹은 날도 그즈음엔 어느 정도 소화가 되어 있고 다 달린 후 씻고 잠들기에도 너무 이르거나 늦지 않은 시간이다. 제대로 달렸다면 샤워 직후에 잠이 몰려오기 마련.
달리기를 하면 몸의 대사가 촉진되어 혈액순환, 심폐기능 등이 좋아진다는 연구를 봤다. 최근엔 평일에 5-6km를 뛰고, 주말에만 10-13km 정도를 짝꿍과 함께 뛰고 있는데 1시간~1시간 30분 정도 달리고 나면 안색, 탄력 있는 몸, 긍정적인 태도, 수면의 질에 모두 손색이 없다.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되, 심박수가 140-160 사이가 되면 가장 좋다고 본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뛸 수 있는 정도.
학교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제대로 하든 안 하든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릴 적 내가 보였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쉬는 시간엔 쿠션 위에 얼굴을 묻고 미친 듯이 잠에 빠져들었었다. 수면도 훈련이다. 잠을 무의식적으로 참는 건 자기 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정상적인 흐름을 억제하는 훈련부터 하는 셈이다. 수면 습관이 나쁠수록 효과적으로 학습에 집중할 가능성도 규칙적으로 운동할 가능성도 적어진다. 달리는(running) 사람, 단련하는(learning) 사람 모두에게 '잘 잔 느낌'이 필요하다. 잘 잔 느낌은 잘 산 느낌과 흡사하다.
지난주 불면에 시달리며 밤낮이 바뀌어서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목요일 즈음 다음 주까지 이어질 컨디션이 끔찍해서 모든 일정을 다 미루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밤 8-9시경이었던 것 같다. 그간의 수면 부족 탓에 순식간에 잠들었고 깨어보니 아침. 나는 내 눈앞의 삶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사라지고 피곤이 다 풀려 있었다.
그동안 피로감을 염려해서 격일로 뛰거나 주 3회를 넘기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어차피 불면으로 피곤할 거라면 당분간은 매일 뛰어보자. 열심히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자기 위해서! 꿀잠을 자고 나면 눈 뜬 현실도 꿀현실일 거라고, 요즘 나는 잘 자는 러너를 꿈꾼다.
그래, 맞아. 당신은 삶에 대해 당신의 똑똑한 말들로
그 의미를 숙고하고 곱씹으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우린 그저 삶을 살아가지.
아!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그런데 왜 그걸 알아내려고 그 많은 시간을 쓰는 건지.
당신은 야단법석을 떨고, 우린 살지.
「잘 가렴, 여우야」, 메리 올리버